아이들하고 마당에서 앵두를 따서 먹습니다. 아이들하고 우리 도서관 둘레에서 오디를 훑어서 먹습니다. 아이들하고 바닷마실을 가는 길에 버찌를 따서 먹습니다. 이제 들딸기는 무더운 여름볕에 자취를 감춥니다. 풀잎도 나뭇잎도 모두 짙푸릅니다. 옥수수는 곧 여물어 즐겁게 열매를 베풀 듯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누리는 기쁨 가운데 '먹는 것'이 무척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는 일이란 '밥이 될 것을 심어서 돌보아 거두는 일'이니, 시골살이라면 늘 '먹는 것'을 살핀다고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라면 앵두도 버찌도 딸기도 모두 가게에서 사다 먹겠지요. 살구도 복숭아도 오얏도 보리둑도 으레 가게에서 사다 먹을 테고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모두 밭이나 들이나 숲에서 따서 먹습니다. 시골에서는 이른 봄에 싹이 트는 모습부터 지켜봅니다. 이윽고 꽃이 피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내 꽃이 지면서 씨알이 드는 모습을 살펴봅니다. 열매가 천천히 익는 모습을 군침을 흘리면서 둘러봅니다. 바야흐로 야물게 익은 열매를 설레는 손으로 톡 따서 입에 냠 하고 넣습니다.
손수 심는 먹을거리이든 숲이 베푸는 먹을거리이든 하루 아침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먹을거리는 겨울을 난 흙이 봄볕하고 여름볕을 머금으면서 나타나지요. 여기에 새파란 하늘을 닮은 바람을 마시면서 나타나요. 우리가 즐기는 먹을거리에는 늘 숲내음도 볕내음도 바람내음도 깃듭니다. 비내음도 흙내음도 깃들어요. 그리고 곡식이나 열매를 보살피는 시골지기 손내음이 깃들어요.
멜빈 버지스 님이 쓴 <최후의 늑대>(푸른나무,2003)라는 책을 읽어 봅니다. <빌리 엘리어트>를 쓰기도 한 분인데 '영국에서 사라진 늑대' 발자취를 좇으면서, 영국에서는 어떻게 마지막 늑대가 사라지고야 말았는가 하는 대목을 차분하면서도 아리게, 또 고우면서도 슬프게 그려서 보여줍니다.
"그레이컵은 이제 동족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땅 위를 낮게 몸을 숙이고 달렸다. 꽃가루가 흩날리고 온몸이 노란 꽃가루로 뒤덮였다. 그레이컵은 밭 건너편의 나무숲으로 들어섰다. 그레이컵은 모르고 있었지만, 자신의 종족들이 목숨을 빼앗겼던 그 숲으로." (140쪽)'늑대가 사라진 영국'을 헤아려 봅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앞서까지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늑대가 사라졌다는 대목을 알거나 느끼거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늑대는 한국에서만 사라지지 않았나 하고 여겼어요.
어쩌면 한국이나 영국뿐 아니라 꽤 많은 나라에서 늑대가 사라졌을 수 있습니다. 늑대는 사람을 안 건드린다고 합니다. 늑대는 쥐 같은 작은 짐승만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른 숲이 정갈하거나 아름답게 있어야 늑대가 살 수 있습니다. 너른 숲이 사라지거나 무너진다면 늑대 같은 숲짐승은 삶터를 모조리 빼앗기고 말아요.
우리는 이 대목을 곰곰이 짚어 보아야지 싶습니다. 사람 발길이나 손길이 안 닿는 조용하고 정갈한 숲을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늑대나 여우나 곰이나 범 같은 숲짐승이 살 만한 터전뿐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한 터전을 이루자면, 사람 발길이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맑은 바람이 불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 깊고 정갈하며 아름다운 숲이 있을 노릇이라는 대목을 깨달아야지 싶어요.
사토에 토네 님이 빚은 그림책 <나도 할 수 있어!>(분홍고래,2016)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나옵니다. 이 작은 새는 여느 새하고 다르게 날지 못하고 먹이를 잡지 못합니다. 새라는 목숨으로 태어났는데 날지 못한다니, 아주 뒤처지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을까요?
"봄이 돌아왔어요. 거기에 새의 모습은 없었어요. 대신 꽃이 만발한 멋진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새가 있던 그 자리예요." (46쪽)날지 못하는 새는 휑한 들판에 혼자 남겨집니다.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던 작은 새인데, 새 곁에 있던 작은 들꽃이 작은 새한테 말을 걸어요. 작은 들꽃이 씨앗을 맺어 흩뿌린 '작은 새끼 들꽃'을 품어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작은 새는 기꺼이 돕겠노라 말하면서 아주 작은 들꽃을 가슴에 품으면서 겨울을 나요. 겨우내 작은 새는 들꽃을 포근히 품어 주었고, 새봄이 찾아올 즈음 작은 새는 그 모습 그대로 굳으면서 몸뚱이가 사라졌는데, 작은 새가 작은 들꽃을 품던 자리에서 멋진 나무가 새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휑한 들판은 '작은 새 나무'가 서면서 아름다운 숲으로 거듭났다고 해요.
자전거를 달려서 골짜기로 나들이를 가다가 숲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나는 가파른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끙끙대면서 끌고, 아이들은 내 앞에서 사뿐사뿐 걷다가 신나게 달리다가 가볍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자전거를 달려서 바다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아이들이 "이제 내려서 걸을래." 하고 말하더니, 자동차도 사람도 없는 호젓한 시골길에서 '뒤로 걷기' 놀이를 즐깁니다. 자동차라고는 거의 지나가지 않는 호젓한 시골길이니 아이들로서는 마음껏 깔깔거리면서 뒤로 걸을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은 아귀힘과 다리힘을 기르면서 나무를 타고 오릅니다. 이제 아이들은 나무만 보면 오르고 싶어 합니다. 면사무소에 볼일이 있어 갈 적에 아이들은 면사무소 앞마당에 있는 나무를 타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마당에서 자라는 초피나무 가지로 손을 뻗어 빨래집게를 물리더니 "크리스마스 나무로 꾸미려고." 하고 한 마디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춤추고 노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새벽 네 시 즈음이면 별빛이 스러지면서 희뿌옇게 날이 밝는 여름을 시원하면서 후끈후끈 덥게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나무 곁에서도 땡볕에서도 아이들이랑 함께 춤노래로 짓는 살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7월호에도 함께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