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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문제였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문학을 '문제'로만 대했다. 가슴 깊이 느끼는 감상을 하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문학 작품을 지루해하고 어려워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문학을 삶으로 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수업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동화'를 만났다.

<동물원 야간개장> 지은이들이 모여 함께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합니다.
<동물원 야간개장> 지은이들이 모여함께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임진묵

어린 자녀를 둔 아빠라면 누구나 자녀들에게 동화 한 편쯤 읽어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 그렇게 동화로 세상을 만난다.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동화를 어린이들만 읽는다는 것은 편견이다. 어른인 나도 동화를 읽어주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동화를 수업에 넣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한 잡지에서 동화책을 어려운 나라에 보내준다는 광고를 보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만든 책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지난 2013년 여름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단기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봉사 때 만난 눈이 호수같이 커다랗고 아름다웠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눈으로 내 제자들이 쓴 동화를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탄자니아 아이들이 쓴 동화를 나의 제자들이 읽는 장면도 그려 보았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단기봉사를 다녀왔던 단체인 '(사)위드'에 이런 생각을 말하고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위드'에서는 한 번 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2015년 3월, 동화쓰기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얘들아 올해에는 1점짜리 수행평가가 있어. 동화쓰기 수행평가. 그리고 잘 쓴 작품들을 가지고 책을 낼 거야."

나는 일단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제자들에게 선포했다. 아이들은 나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호기심을 보였다. 첫 수업 이후, 집에 있는 아이들의 동화를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할 때 읽어주었다. <사과가 쿵>, <도서관에 온 사자>, <우리 가족입니다>, <구름빵>, <머나먼 여행> 등을 읽어주며 학생들과 소통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동화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동화를 써본 적도 없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인터넷을 뒤져 동화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는지 혹은 강의를 해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신지 찾았다. 찾다보니 아띠봄의 대표인 박영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대전지족고등학교에 동화책 쓰기 워크숍이 열렸다. 참여한 학생들도 배우고 나도 함께 배웠다. 그 뒤에야 제대로 된 동화책 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동화책 쓰기를 주저했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 그 일을 아이들을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곧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수업의 소중함을 느꼈다. 책을 낸다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민낯인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마음을 따뜻히 바라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로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나는 그분들과 팀으로 일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잘 표현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동물원 야간개장>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동물원 야간개장>의 겉표지 밤 같은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할 별 같은 일상
<동물원 야간개장>의 겉표지밤 같은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할 별 같은 일상 ⓒ 함께해
앞에서 말했듯 <동물원 야간개장>은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특별한 동화와 시를 담은 책이다. 편하게 친구에게 말하듯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이 책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들어있다.

그 마음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도 이들과 같이 반짝이는 삶을 살았고, 지금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책을 쓰며 힘들었던 순간마다 아이들의 글이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다.

책에서 어떤 아이는 유머러스하게, 어떤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사소함을 특별하게, 어떤 아이는 진짜 작가처럼 감동적인 글을 쏟아냈다. 그 글들 끝에는 따뜻한 시선을 담아 댓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매 챕터 끝에는 독자가 참여하여 자신의 마음을 동화로 시로 표현하는 '자유이용권' 페이지를 넣었다.

그래서 이 책의 장르를 쉽게 말하기 어렵다. 이 책은 살다 보면 어떤 날, 어두운 밤 같은 마음을 품게 되는 독자들을 위한 '종합선물'과 같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편집에 참여하신 분들은 읽을수록 자신의 마음을 동화와 시로 표현하고 싶은 마법 같은 책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이 청소년에게는 공감의 힘을, 선생님에게는 동행하는 기쁨을, 부모님에게는 10대인 자녀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선물하는 책이 되길 기대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좋은 동화들도 실려 있어 젊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읽어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4살과 6살인 나의 자녀들도 좋아한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이 책이 번역되어 탄자니아 아이들이 이 책을 보는 것을. 그리고 그 아이들의 삶을 <동물원 야간개장2>에 싣는 꿈을.

"남이 가진 별은 네가 바라고 꿈꾸던 네 별이 아니야. 네가 겪은 지겨움, 피곤함, 포기의 순간, 갈등, 그 모든 잿빛 색깔이 밴 너의 그릇에 담긴 별만이 네가 꿈꾸던 그 별일 수 있는 거야."


동물원 야간개장 - 밤 같은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할 별 같은 일상

대전 지족고등학교 학생들 지음, 임진묵 엮음, 함께해(2016)


#동물원 야간개장#청소년 추천도서#교사 추천도서#대전지족고#묵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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