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4월 13일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했다. 더민주는 수도권 압승과 영남권에서 약진해 원내 1당이 되었으나 텃밭을 빼앗겼다. 호남을 석권하고 비례 득표 2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은 의석점유율 10%를 겨우 넘는 제3당이 되었을 뿐이다. 승자를 가려내기 애매한 결과지만 많은 이들은 새누리당이 참패한 것에는 동의한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보는 이유로는 야당 분열이라는 유리한 구도를 살리지 못하고 과반 획득에 실패한 점을 꼽는다.

필자는 새누리당의 총선 결과가 정말 뼈아픈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싶다. 2010년대 들어 대선을 제외한 네 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수도권 연패를 끊어내지 못한 점이다. 소선거구제인 총선과 지방선거 중 총선과 비교할 만한 선거구인 시군구 단체장 선거에서 지난 2010년 이후 새누리당의 의석점유율은 20~30%대에 그쳤다. 특히 이번 선거는 3자 구도였음에도 앞의 선거들보다 더 크게 패한 점은 새누리당에게 큰 상처라고 본다.

지난 몇 년간 수도권 선거결과를 계속 강조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수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선거구도는 영호남 지역구도를 기초로 한 여야간 수도권 쟁탈전이었다. 텃밭 작은 민주계 정당은 수도권에서 새누리계 정당에 두 배 이상 압승해야만 전국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또한 지역구도보다 오래된 여촌야도 구도에서 민주계 정당이 기본적으로 수도권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그럼에도 민주계 정당이 전국선거에서 승리한 적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수도권 인구는 계속 증가해왔고 선거에서 중요성, 의석 비중도 커져 왔다는 것이다. 또 이 추세를 역전시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전체 지역구 숫자는 똑같은데 수도권 의석은 늘고 지방 의석이 줄어든다는 것은 최근의 선거 흐름에서 새누리당에게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개발독재가 만든 한국 사회의 극심한 고질병인 서울 집중화, 수도권 집중화가 그 정치적 후계자들에게 나쁜 선거 구도를 만들고 있는 역설을 낳고 있는 것이다.

스윙보터, 수도권 선거의 역사

개발독재체제는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권력자원을 서울에 집중시켰다. 이에 따라 서울을 팽창시켰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된 서울 집중은 비대화된 서울을 수도권으로까지 팽창시켰다. 주로 서울의 주거 기능을 경기도가 도맡게 되었다. 1990년과 2010년 인구총조사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인구는 약 460만 명 증가했는데, 서울이 약 100만 명 가량 줄고, 경기도와 인천이 각각 약 500만 명, 80만 명 증가했다. 지난 20년간 인구증가가 경기도와 인천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선거구도로 봤을 때, 수도권 지역의 전통적인 표밭이 엎어지고 새롭게 거대한 표밭이 일궈진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지역이 노태우 정부 때 추진한 1기 신도시 5곳이다. 성남 분당, 고양 일산, 부천 중동, 안양 평촌, 군포 산본에 정부주도로 계획된 대규모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1990년대 중반, 아직 도시와 농촌이 섞여 있던 서울 인근 지역에 대단지 아파트와 함께 이주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 기준으로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자랑하는 신도시의 이주민들은 경제적으로나 교육 수준으로나 중간 이상은 되는, '교육받은 도시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이들 신도시가 속한 지역 중 상대적으로 낙후된 구도심이 많이 포함된 부천시 원미구를 제외하면 대졸 이상 거주자 비율이 전국(21.1%)은 물론 서울 평균(29.8%)보다 높다. 분당구(56%)는 과천시, 서초구(이상 56.4%)에 이은 전국 3위의 대졸인구 거주지역이고, 일산구(45.2%)는 강남3구 중 하나인 송파구(39.67%)보다 많다. 안양 동안구와 군포시의 대졸자 비율도 각각 전국 13위와 16위로 최상위권이다.

그림 2. 1기 신도시 5곳의 15-18대 총선 결과
 그림 2. 1기 신도시 5곳의 15-18대 총선 결과
ⓒ 허좋은

관련사진보기


수도권 신도시의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은 선거 역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보다 스윙보터 역할을 해왔다.(그림 2 참조) 1996년 15대 총선부터 2008년 18대 총선까지 일관되게 새누리계 정당 국회의원을 배출해낸 분당을 제외하곤 양당의 지역구 의원을 모두 선출해보았다. 분당의 경우는 200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은 부동산 경기 붐으로 인해서인지 18대 총선까지 새누리계열 정당 지지 경향을 강화해온 특징을 볼 수 있다. 15대에서 17대까지 이들 지역의 국회의원 소속 정당은 3대 3, 4대 3, 4대 4로 어느 곳 하나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그 사이 이들 신도시를 모델로 한 대규모 택지 개발이 수도권 곳곳에서 벌어졌다. 수도권 인구는 꾸준히 늘고 대단지 아파트가 계속 들어섰다. 지역에 연고도 없던 외지인들이 대거 입주한 대단지 아파트가 다수를 차지하는 선거구도 생겨났다. 용인이 대표적인데 15대 총선 당시 인구 24만, 선거구는 하나였으나 12년 뒤 세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인구 80만 도시가 되었다. 지금도 인구증가는 멈추지 않아 100만 인구를 목전에 둔 도시다. 택지 개발 붐이 이끈 수도권 아파트 가격의 폭발적 상승을 이끈 '버블세븐' 지역에도 서울의 강남3구와 목동, 1기 신도시인 분당, 평촌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수도권 부동산 경기가 절정이던 2008년 18대 총선은 '뉴타운 선거'로 유명하다. 이미 아파트 가격 상승을 맛본 지역과 뉴타운 공약으로 상징되는 구도심의 부동산 욕망에 수도권은 보수화됐다. 건설회사 경영자 출신이자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직후라는 점도 맞물렸다. 한나라당은 대규모 '타운돌이' 국회의원들을 배출했다. 수도권 111석 중 81석, 공천 학살에 반발해 탈당 후 당선한 친박 의원까지 합해 83석을 얻었다. 유례없는 여당의 수도권 압승이었다. 18대 총선 이후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한나라당의 친이계를 중심으로 "수도권은 완전히 넘어왔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들렸다.

뉴타운 만들어서 더민주 준 꼴

결과적으로 이때가 새누리당 수도권 의석의 피크였고 뉴타운 건설은 독이 되었다. 부동산 경기가 한풀 꺾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66곳의 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 15곳에서만 시장·군수·구청장을 배출했다. 수도권 전체 단체장 중 22.73%에 불과하다. 1998년 지방선거 이후 최악의 패배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의 2012년 19대 총선과 현 정부 집권기 첫 전국선거인 지방선거는 거의 완벽한 여야 1대1 상황에서 수도권 지역구 및 단체장 점유율은 36~38%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새누리당의 수도권 의석점유율은 28.69%로 크게 떨어졌다.

그림 3. 2010년 이후 여야 강세 지역
 그림 3. 2010년 이후 여야 강세 지역
ⓒ 허좋은

관련사진보기


2010년대 네 번의 선거결과를 더 자세히 보자.(그림 3 참조) 더민주와 국민의당, 진보정당은 서울의 25개 선거구에서 4연승 중인데다, 성장현 구청장이 재선한 용산의 경우 진영 의원이 당적을 옮겨와 당선되어 사실상 4연승 한 지역으로 포함할 수 있다. 여당이 서울에서 4연승한 지역은 강남3구의 5곳뿐이다. 인천은 전통적인 스윙보터 지역으로 4연승은 야당의 3개 선거구뿐이나 이번 총선에서 여당 성향이 강한 강화군이 합쳐진 중·동·강화·웅진 선거구는 여당 강세 지역이라 볼 수 있다. 경기도는 수원, 부천, 고양시 등 대형 기초자치단체를 포함해 21곳에서 야당이 4연승 중이다. 여당은 경기도 외곽지역 도시와 군 지역에서만 연승하고 있다.

9대 50. 지난 네 번의 선거를 종합한 결과다. 아직 텃밭이라 부르기엔 유동적이지만 지난 6년간의 흐름만 볼 때 수도권에서만큼은 운동장이 야당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의원 개인의 역량이나 자치단체 내 분할된 선거구를 고려해 국회의원 연속 당선 지역구(재보궐 선거 포함)를 더하면 30대 62로 겨우 야당의 절반에 미친다. 역대선거에서 수도권 표심이 이렇게 네 번씩이나 한쪽 정당을 일관되게 선택한 경우는 없다.

그림 4. 뉴타운, 2기 신도시의 2010년대 국회의원/기초단체장 선거 결과
 그림 4. 뉴타운, 2기 신도시의 2010년대 국회의원/기초단체장 선거 결과
ⓒ 허좋은

관련사진보기


필자는 이를 서울의 뉴타운과 수도권 2기 신도시를 필두로 2000년대 들어 새롭게 갈아엎어진 선거구에 주목한다. 2기 신도시는 참여정부 시기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 수도권 10여 곳에 건설한 신도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완성되어 입주가 시작된 뉴타운과 신도시가 포함된 동네의 이 기간 투표 결과는 압도적으로 야당이 강세다.(그림 4 참조) 특히 서울의 진관동, 길음1동, 삼각산동(이상 은평, 길음, 미아뉴타운), 판교, 동탄1, 운정, 광교, 위례신도시와 한강신도시의 장기동처럼 소속 동 전체가 새로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일 경우는 더욱 압도적이다.

동 전체가 뉴타운/신도시인 지역들은 모두 젊다. 지난달 기준으로 서울시 평균연령은 40.3세, 경기도 평균연령은 38.4세다. 이 지역들은 소속 시/도보다 주민의 평균연령이 2~7세 정도 젊다. 투표율도 높다. 이번 총선 서울 투표율은 59.8%, 경기도는 57.5%다. 젊을수록 투표율이 낮은 일반적인 상황과 반대다.

동탄 신도시가 하나의 선거구를 이룬 화성을이 대표적이다. 평균연령이 31세인 이곳의 투표율은 60%를 넘겼고 3자 구도에서 더민주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에 더블스코어로 압승했다. 수도권 1186개 읍면동의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선거결과를 분석한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수도권편>은 한나라당 지지가 강한 동네일수록 아파트 거주자가 많다고 분석했다. 지금의 뉴타운/신도시 거주자들에게는 반대되는 결과다.

수도권 선거구가 늘어나면 야당이 유리하다

그림 5. 2010-2016년 수도권 자치구 중 인구 증가 상위 15곳의 지난 12년간 총선결과
 그림 5. 2010-2016년 수도권 자치구 중 인구 증가 상위 15곳의 지난 12년간 총선결과
ⓒ 허좋은

관련사진보기


새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의 야당 지지 성향은 정부가 계획한 신도시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인구가 팽창한 도시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주민등록 인구가 2만5천명 이상 늘어난 15개 자치단체의 선거결과를 보자.(그림 5 참조) 지금의 야권 역사상 가장 큰 총선 승리는 12년 전 17대 총선이다. 이때 이들 지역의 27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은 17석을 얻었다. 이번 총선에서 이곳들의 지역구는 총 37곳으로 늘었고 더민주와 정의당은 27석을 얻었다. 12년간 늘어난 의석을 야권이 모두 차지한 것이다.

12년 전에 비해 의석이 늘어난 자치단체는 모두 여덟 곳이다. 용인은 여전히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지역이다. 야당 강세지역인 남양주에서 늘어난 의석 하나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고, 화성은 처음 분구될 때부터 한 석은 여당이 가져갔으나 이번 선거에서 또 한 석이 분구되어 여전히 야당이 우위에 있다. 이들 세 지역을 제외하면 인구가 늘어난 지역에서 여당이 모두 손해를 보고 있다. 파주, 광주와 같은 전통적인 여당 강세지역의 2개 의석 모두를, 인천 연수구와 김포는 분구된 지역구를 빼앗겼다. 평택과 하남 정도만 야당에서 여당으로 지지를 옮겨갔다.

1990년대 중반 1기 신도시의 중산층들은 스윙보터였다. 2010년대 입주한 2기 신도시의 중산층들은 압도적으로 야당에 기울여져 있다. 부동산 붐과 함께 추진한 대규모 신도시와 뉴타운 건설은 여당 장기집권의 단초가 아닌 야당 기사회생의 발판이 된 것이다. 여당이 개발붐을 타고 추진한 새로운 도시 건설이 젊은 외지 사람들을 모아 야당 강세 선거구로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두 가지 정도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새누리당의 보수화다. 보통 새누리계 정당과 민주계 정당이 보수-진보적 성격으로 갈등한 시기를 노무현 정부 이후로 본다. 그 이전엔 지역 기반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보수정당이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의 논문 <3당 합당과 한국 정당 정치>는 민주계 정당이 진보적 속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1990년 3당 합당이라고 분석한다. 김대중 총재와 평민당이 갖게 된, 호남에 고립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영호남 구도를 보수-진보의 이념적 대립 구도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여전히 영호남 지역구도가 선거에서 중요했고, 여당인 신한국당도 이재오, 김문수 등 민중당계 인사들과 심재철 등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 수도권에 배치하고 개혁적 이미지를 유지했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수도권 도시 중산층들에게는 양당 모두 선택할 여지가 있는 정당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가 보수-진보 구도로 굳어진 이후 보수 이념적 경직성을 띠고 있다. 보수-진보 양당체제에서 굳이 개혁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통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의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이 여기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새누리당이 자주 보이는 권위주의적 문화는 젊은 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행태다.

또 하나는 집값 상승 기대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18대 뉴타운 총선의 수도권 압승은 부동산 개발 붐으로 인한 집값 상승 기대가 컸기에 가능했다. 국토의 10%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몰리니 수도권의 부동산 폭등은 끝이 없어 보였다. '부동산 불패 신화'라는 말이 아주 오랜 기간 회자되던 시절이다. 지금 부동산 가격이 예전처럼 폭등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택담보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계부채가 벌써 1200조 원에 달해 한국 경제의 불안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 인구 절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상 수준의 집값 등락 정도만 기대할 뿐이다.

보수색 강화와 중간층 잡기의 딜레마

이번 총선에서 당장 내년 대선에서 뛸 만한 선수들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한 점도 위기다.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은 이번 선거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아무리 3자 구도라도 잠룡들이 넘쳐나는 야권에 비해 인물론에서 밀리면 정권 재창출도 어려울 수 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다.

새누리당에게 가장 뼈아픈 부분은 역시 2010년대 들어 수도권에 기반한 정치인들이 부족하다는 문제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등장한 새누리 계열 정당 출신 유력 대권 주자들은 특수한 경우인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하곤 모두 정치적 기반이 수도권에 있으면서 중간층을 공략한 경우다. 선출직 경험은 없으나 대쪽 판사 이미지를 비롯해 현직 대통령과 대립한 총리로 중간층을 어필한 이회창, 경기도 지사 출신의 이인제와 손학규, 서울시장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후 역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던 인물들이다. 2006년과 2010년 각각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전 시장과 김문수 전 도지사는 그래서 새누리당 입장에서 아쉬운 경우다. 과거보다 선명해진 보수-진보 구도로 인해 전임자들과 달리 운신의 폭은 좁았으나 중간층에서 통하는 인물이었다.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대패한 2010년 선거에서 둘 다 재선에 성공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둘 다 당내 입지를 다지기 위해 보수 색깔을 강화하다가 정치 생명만 위태로워졌다. 오 전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시장직을 던진 것이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김 전 지사는 공격받는 보수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나 정작 주민들의 냉대를 받고 정치적 재기가 어려워졌다.

반면 2010년 이후 수도권을 장악한 야권은 인물이 넘쳐난다. 광역·기초단체장들이 저마다 보여주는 풀뿌리 자치 실험들과 복지 실험들이 중앙언론에서 이슈가 되고 지지층에게 이름을 알렸다. 새누리당은 지난 6년간 수도권 선거에서 연달아 패했고 당내 보수화가 심화되어 과거와 같은 소장파 의원이나 주목받는 단체장의 이름이 없다. 그나마 최근 유승민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유 의원도 확실한 당내 주자가 되기 위해선 보수층의 확실한 지지가 필요하면서 수도권 중간층에게 확실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 오 전 시장, 김 전 지사의 경우처럼 상당한 모험이다.

여기에 이번 총선을 계기로 새누리당에 실망한 보수층을 흡수한 국민의당을 무시할 수도 없다. 수도권 일부지역에서는 3자 구도임에도 더민주와 새누리당 후보 간 지역구 표차가 이전 선거보다 벌어지기도 했다. 국민의당 효과다. 수도권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유력 대권주자인 안철수 대표의 존재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만 낡은 정치에 실망해버린 수도권 중간층에게 좋은 선택지다.

이처럼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연패하면서도 보수화·권위주의화를 강화한 결과 내년 대선 전망은 상당히 불리하다. 영남권 선거구가 줄고 수도권이 의석 비율 높아진 상황에서 앞으로 수도권 선거 역시 불리하다. 총선에서 3당 구도를 만든 민심이 유지됨을 전제로 새누리당에게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우선 3당 합당이나 DJP연합과 파격적인 정계개편이다. 또 하나는 이번 선거에서 이탈한 영남 세력의 지지를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텃밭을 키우기 위해 서울에 집중된 권력자원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거제도로 독일식 비례대표제(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도 많이 쓰지만 필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포함해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선거제도 전반을 지칭하므로 독일식 비례대표제라고 쓰겠다)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정계개편은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기적인 해결책이지만 뒤의 두 방안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하기에 야권과 진보정당들이 더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젠 새누리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선거결과가 여소야대의 3당 체제로 결정되자 많은 전문가들과 정치평론가들이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이 정계개편이다. 사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계개편은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사에서 한동안 상수였다. 13대 국회의 여소야대 4당 체제는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낳았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과반 달성에 실패하고 자민련 돌풍이 일어났을 때 신한국당은 자민련에서 의원을 빼와 과반을 넘겼다. 소수당으로 집권한 새정치국민회의 역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을 대거 빼와 과반을 넘겼다. 당연히 가장 먼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구태정치로 인식되기도 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문제다.

두 번째는 지방분권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는 것이다. 서울에 집중된 권력자원들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국토 불균형을 바로잡고 또 지자체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주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텃밭인 영남 인구 유출을 막아 정치적 영향력은 유지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이번 총선에서 일부 떠나간 영남 민심을 붙잡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집중된 권력과 기득권을 오래 맛본 새누리당에게는 어려운 선택이다.

소선거구제가 계속 유리하기만 할까?

결국 필자는 새누리당이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 개편에 앞장서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특정 지역의 대표성을 갖는 소선거구제와 정당 투표의 비례성이 큰 순수 비례대표제를 합친 제도다. 전국 혹은 광역 단위 정당투표를 통해 정당별 의석을 결정하고 정당별 지역구 당선자를 우선 배정한 후 남은 의석을 비례대표 후보로 채우는 방식이다.

사표를 방지하고 다양한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여러 정당들이 대변할 수 있는 제도이기에 진보정당들이 도입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매 선거마다 야권단일화로 애를 먹은 더민주도 내부에서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는 5차 혁신안에서 이 제도를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권한 바 있다. 2014년 9월 <레이더P>가 국회의원 1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선거구제 개편에 찬성한 의원은 129명이었는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응답한 의원 46명 중 24명이 독일식 선거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은 당차원에서 지금까지 독일식 선거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당시 선거구 획정기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지난해 2월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에서 독일식 선거제도 도입을 제안한 바가 있다. 이에 따라 꾸려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야당 쪽 의원들도 여러 차례 제안하였지만 새누리당 측은 계속 난색을 표했다.

지난해 12월 새누리당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이 낸 보고서 <그들은 왜 독일식 선거법 도입을 주창하는가>에 따르면 ▲ 정당이 후보가 되는 선거제도는 시기상조이며 ▲ 지역주의 완화 효과는 제한적이며 전문성·직능성·소수대표성·여성대표성 등 비례 본연 기능 발휘 못할 가능성이 있고 ▲ 내각제, 분권형 제도와 정합성 있어 현행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은 이해관계의 문제다. 지역구에서 1등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 체제에서 영남권의 안정적인 텃밭을 바탕으로 충청권에서 절반, 수도권에서 40%에 못 미치는 정도 의석만 획득해도 자동 과반 달성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 1% 차이로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소선거구제도에 새누리당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가장 많은 의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3당 체제임에도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대다수 수도권 지역구에서 2위로 낙선한 후보는 새누리당 소속이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권에서도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지역주의의 해체 징후다. 비례득표 2위임에도 불과하고 3당에 머무른 국민의당의 자리를 새누리당이 대체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소선거구제 문제를 설명할 때 제일 좋은 사례는 1993년 캐나다 조기총선이다. 당시 직전선거에서 43%의 득표율과 169석을 얻어 유래 없는 대승을 거두었던 집권 진보보수당은 인기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선거결과 진보보수당의 득표율은 16%였으나 의석수는 단 두석에 불과했다. 퀘벡에서만 출마한 퀘벡연합은 전국득표율 14%였지만 의석은 54석이 되어 제1야당이 되었다.

캐나다처럼 극적인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3자 구도에서도 떨어지는 새누리당의 경쟁력을 지켜본 수도권 유권자들의 다음 선택은 안개 속에 있다. 행여나 여야 대결 일색의 기존 국회보다 앞으로 펼쳐질 3당 구도가 절묘한 합의 정치를 이뤄내 유권자들의 만족감이 커진다면 선거구도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잠식한 수도권의 보수 성향 중간층을 더 잃을 수도 있다.

사실 현행 선거제도 하의 3당 체제에서 모든 당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더민주 입장에서 이번 총선처럼 야당성향 유권자들의 전략투표가 앞으로도 지속될지 확신하지 못한다. 국민의당은 득표율과 의석수 간 괴리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동시에 다음번 선거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민주화 이후 3당 돌풍은 종종 있었으나 다음 총선까지 연달아 교섭단체가 된 적은 없다. 또 한편으로 국민의당은 정당 득표율만 따졌을 때 역대 가장 강한 3당이라는 점이다.

소선거구제에서 주요 3당이 모두 공존하게 된다면 이번 총선 정당득표율처럼 엇비슷한 지지율을 얻는다면 불확실성은 커진다. 주요 3당이 모두 공존하며 다음 선거에 대한 불안정성을 느낄 때 세 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생길 것이다.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를 국회의원 자신들이 만드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지지율만큼 정당 간 의석을 배분해주는 독일식 선거제도야말로 새누리당의 정체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또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태그:#4.13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독일식 선거제도, #스윙보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