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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계 최고의 프로 바둑기사인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를 보면서 인공지능 알파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졌다. 인간이 다 담을 수 없는 무한량의 데이터를 조금의 변질도 허락하지 않고 머리 속에 담아 순간마다 그 전체를 돌려 최상의 결정을 해내는 알파고는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알파고가 인간의 창작활동인 소설을 쓰는 일도 할 수 있을까? 창작이라는 것 또한 모방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알파고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글을 쓰기 위해 수 많은 독서와 삶의 희로애락을 필요로 하며 대중의 코드 또한 좇아야 한다.

그러면 알파고에게 세상의 모든 도서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 경험담과 대중의 코드를 입력시키면 그 데이터를 분석한 최적의 소설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입력한 데이터를 제외시키는 시스템을 발휘한다면 기발하고 창의적인 내용도 집필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에 필요한 인간의 감성을 기계가 가질 수 있을까가 의문이지만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직관력까지 발휘한 걸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흉내내기는 가능할 것 같다.

프로파일러는 어떨까? 프로파일러는 용의자의 성격, 행동유형 등을 분석하고, 도주경로나 은신처 등을 추정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분석을 통한 추적, 이거야 말로 수많은 데이터의 분석으로 바둑 돌 하나를 놓는 결론에 도달하는 알파고의 주특기가 될 것 같다. 특히 연쇄살인범을 잡아내는 데 적격이지 않을까 싶다. 연쇄살인이란 여러 번에 걸친 지난 범죄의 기록이 여러 번 쌓여있는 사건이니 그 심층의 데이터를 모두 알파고에게 맡겨 분석해보라면 진짜 끝내주는 결론을 도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형사들이 경찰서 방 하나에 모여 밤새 사건자료를 넘겨보느라 골머리를 썩을 필요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

그럼 이쯤에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알파고가 인간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지…영화 <her>에서 등장한 인공지능운영체계처럼 나 외에 여러 사람을 상대하고 언젠가 예고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친구 말고 나만을 분석하고 내 곁에만 있고 평생을 함께 한다는 걸 보장하는 인공지능 친구 말이다.

친구, 2음절의 짧은 단어 하나 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지만 친구 또한 나 아닌 타인, 모두가 한 번쯤 말해 봤음직한 '내 맘 같지 않은 존재'인 타인인 것이다. 나쁜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친구라는 타인과의 관계 역시 서로의 이기심의 씨실과 날실로 엮어진 어떤 결정체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사이에 '정'이란 풀이 스며있어 그 씨실과 날실은 올이 하나 풀린다 해서 그 관계가 쉬 풀려버리지는 않는 게 참 다행한 일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울 때도 많고 나의 고민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대입해 응수해 주는 경우도 많다. 필자 역시 그런 타인의 역할을 자처한 적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와 관계 있는 누군가에 대해 순도 100% 객관적인 시선을 갖고 의견을 제시하고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를 향한 타인의 비 객관성은 특히 드라마 속에서 과장되게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속 어리숙하고 순진한 주인공은 남의 억지 비난에 상처받아 울고 이기적인 의도에 반복적으로 휘둘린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린 삶 속에서 타인의 말과 행동에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보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 관계 속에서 크고 작게 서로에게 조금씩 피해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어떤 땐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어떤 땐 그 사실이 버거울 때도 있다.
이럴 때 알파고가 내 친구라면 어떨까? 나의 인생과 나의 행동양식에 대해 가장 오류 없는 객관적인 기억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해 내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로 나를 위로하고 크고 작은 일에 가장 나에게 유리한 제안을 하며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가장 객관적으로 충고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와의 관계에 있어 자신의 삶과 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 등에 객관성을 필터링하는 사람 친구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바둑돌을 놓아줄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친구까지 인공지능으로 대체한다는 게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지만 왠지 인생의 백 하나 있는 것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것도 같다.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와 물질적인 낭비를 줄이고 좀 더 보람찬 하루를 보내게 될 것도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번쯤은 느끼게 되는 관계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고귀한 인간으로 참된 가치를 누리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어쩌면 유토피아적 삶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전 국민이 모두가 하나씩 알파고 친구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지금 거의 모두가 갖고 있는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헌데 각자의 스마트폰은 어떤가? 기종간 성능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나? 알파고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알파고 친구가 상용화 되면 우리 모두는 좀 더 성능이 좋은 알파고를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 더 돈의 노예가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각 개인의 알파고들은 철저히 자신의 주인만을 위한 이주(利主)적인 행동만을 일삼을 테고 세상 속에서 그 행동들은 분명히 충돌할 것이다.

그 통제는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이며 그 충돌에서 일어난 버그를 처리하는 데 인간은 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될 지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눈빛을 나누는 일이 급격히 줄어 본능적으로 그것을 채워야 하는 인간의 욕구불만으로 정신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이 생겨날 것이다.

인류는 각종 질병과 자연재해 앞에 수 없이 고군분투했음에도 또 다른 질병과 재해 앞에 다시 새로운 치료제와 대처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던 애처러운 과학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그런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인공지능의 시스템으로 인한 문제 해결을 위해 에너지를 또 소모해야 한다면 너무 안 됐지 않나.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는 높아갈 것이다. 그럴수록 그 버그가 인간에게 끼칠 크나큰 해악은 자명한 일이다. 인간의 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더하냐 못하냐의 문제로 인간이 기계에 무릎을 꿇고 아니고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인공지능이 오류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결국 인공지능에 무릎을 끓는 일일 거란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인간은 더 나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노력을 쏟을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서 애처로운 과학의 역사에 문제 하나 더 보태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보다는 발전에 대한 몰두를 인간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알파고 친구 따위 상상할 필요 없게 말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1패를 함으로 전 인류 앞에서 인공지능이 완벽한 시스템이 아님을 드러냈다. 히가시노게이코의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에는 인간보다 자신이 만든 로봇을 더 믿고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결국 그 기계의 오류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결말로 소설이 마무리되었음도 기억해주기 바란다.

알파고! 넌 어떻게 생각해?


#알파고#인공지능#이세돌#HER#부루투스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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