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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진을 보면 충격적이다. 대기 자리를 보면 무슨 동물원 원숭이마냥 동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두었는데, 마치 중세시대 대역죄인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내다 걸어둠으로써 백성들의 본보기로 삼았던 장면까지 떠오른다. 명예퇴직을 거부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든 직원들에게 똑똑히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회사의 명예퇴직 통보에 반기를 들 수 없도록 하는 전제군주의 짙은 그림자가 느껴진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이 명예퇴직을 거부했던 한 사무직 직원에 대해 지난해 말에 사물함만 바라보도록 하는 자리를 배치해 반인권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이 명예퇴직을 거부했던 한 사무직 직원에 대해 지난해 말에 사물함만 바라보도록 하는 자리를 배치해 반인권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금속노조

창원 두산모트롤 차장급 사무직 노동자가 명예퇴직을 거부하자, 회사 측은 이 직원의 자리를 새롭게 배치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명예퇴직 거부자에게 반인권적 괴롭힘을 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은 유압·방산업체다. 회사는 지난해 12월경 사무직 10%에 해당하는 20여 명에게 명예퇴직을 통보했고 사무직 이아무개(47)씨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그 뒤 이씨의 자리를 옮겼고, 사무실 한 켠으로 배치했다. 책상 앞에는 사물함이 있었다. 별다른 업무를 주지 않으면서 하루 종일 벽만 바라보게 하는, 이른바 '면벽(面壁) 책상 배치'였다. 이런 상태로 1~2주 정도 있었고, 그 뒤에는 이씨의 자리가 원탁으로 옮겨졌다.

이씨는 아침 8시30분까지 이 자리로 출근해 하루 종일 벽만 보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10분 이상 자리 이탈시 팀장한테 보고해야 하며, 흡연이나 전화를 위해 자리를 이탈하는 것도 금지됐다. 이씨는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고,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회사가 이씨한테 요구한 '행동수칙'을 보면 '정해진 근무시간 준수' '10분 이상 자리 이탈시 팀장에게 보고를 통한 승인 후 이탈' '쉬는 시간 이외 흡연 금지' '졸거나 취침 금지' '사적인 개인전화 금지' '스마트폰을 통한 게임이나 카톡, 인터넷 등 사용 금지' '개인 서적 탐독 금지' '어학공부 금지' 등이다.

근태시간 구성을 보면, 이씨에게는 대기시간만 주어져 있다. 오전 8시 30분 출근, 10시 30분까지 대기시간, 10시 45분까지 휴식시간, 12시 30분까지 대기시간, 오후 1시 30분까지 점심시간, 3시 30분까지 대시시간, 3시 45분까지 휴식시간, 5시 30분까지 대기시간, 5시 30분 퇴근이다.

이씨는 하는 수 없이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을 했다. 그러자 사측은 이씨한테 '재교육'을 시작했고, 자재관리 업무를 배정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재교육의 내용에는 심지어 해당 노동자 본인이 만들었던 교육자료도 포함되어 있었고, 단 한 명에 대한 비상식적 재교육의 목적은 노동위원회 구제절차를 피해가고자 하는 꼼수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이 명예퇴직을 거부했던 한 사무직 직원에 대해 지난해 말에 사물함만 바라보도록 하는 자리를 배치했다가 그 뒤에는 원탁책상으로 옮겨 앉아 있도록 해 반인권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이 명예퇴직을 거부했던 한 사무직 직원에 대해 지난해 말에 사물함만 바라보도록 하는 자리를 배치했다가 그 뒤에는 원탁책상으로 옮겨 앉아 있도록 해 반인권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금속노조

"악랄한 회사 인력퇴출 프로그램 연상"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두산모트롤은 해당 노동자에 대해 보복성 대기발령과 형식적 재교육을 실시한지 3개월만에 이번에는 자재관리 업무체 배치했다"며 "해당 노동자는 해외방산영업을 위해 경력직으로 입사한 자로, 기술직들이 담당하는 자재관리 업무는 너무나 생뚱맞은 분야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러 엉뚱한 직무를 부여한 뒤 직무성과가 낮다며 재차 징계와 해고를 하는, 과거 의 악랄한 회사 인력퇴출 프로그램이 연상되는 장면"이라며 "지금이라도 두산은 즉각 해당 노동자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그간 잘못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여야 할 것"이라 고 밝혔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25일 이씨가 낸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과 관련해 심문회의를 열어, '부당대기발령이 아니다'라며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속법률원 김두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면벽 자리 배치는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사직을 종용하는 강한 심리적 압박 수단"이라 밝혔다. 노동위원회 판정에 대해,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노동위원회도 자본의 편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두산모트롤 사측은 심문회의 때 "조직재판 이후 재교육 대상으로 선정된 뒤 기존 부서에 계속 둘 경우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어 대기발령하게 되었고, 이러한 업무상 이유로 대기 장소를 구분한 것"이라며 "대기 장소를 구분한 것은 업무상 필요성에 따른 조치였다. 인권을 침해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사측은 "대기시간 근무수칙을 제시한 것은 대기발령 기간이라 하더라도 근로관계가 유지되는 기간으로 신의성실한 근로제공 의무가 있다할 것이고, 대기발령을 이유로 과도한 사적 행동을 할 경우 다른 동료들의 근무 분위기를 해치는 등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자제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두산그룹#두산모트롤#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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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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