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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문학살롱이 된 필리버스터, 이런 순간도 있다." - ID Dal****
"이학영 의원의 토론은 역사와 인문학을 넘나드는 한편의 명강의였다." - ID hdh****

누리꾼들이 트위터 등 SNS에 남긴 글이다. 23번째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시 읽어주는 남자"로 불리우고 있다.

198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그는 이날 토론에 나서면서도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낭독했다. 그리고 유신정권 당시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권한 오·남용 등 근현대사의 '그림자'들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국정원이 이러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아직도 국민적 불신을 다 해소하지 못한 상황이니 테러방지법으로 쉽게 권한을 확대시켜선 안 된다는 얘기였다.

어선에 탄 13살 소년이 납북됐다가 풀려난 뒤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관련 기사 : 간첩 조작사건, 왜 어부가 단골 대상이었을까), '김대중 납치사건'과 같은 당 유인태 의원이 사형을 선고받았던 민청학련 사건, 중앙정보부로부터 전기고문을 받은 천상병 시인 등이 주요한 토론 내용이었다. 5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사법살인 사건' 인청학련 사건에 대해서는 시신도 넘겨받지 못한 한 그들의 부모를 거론할 땐 "국가의 이름으로 이럴 수가 있는 것이냐"라며 흐느끼기도 했다.

이 의원이 토론 중간 중간 낭독한 시들은 이 같은 역사적 진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사회를 보던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교대하면서 "좋은 시와 말씀으로 메마른 가슴에 눈물이 고일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인사할 정도였다. 그가 낭독한 시는 김남주 시인의 <진혼가>·<잿더미>, 김지하 시인의 <1974년 1월>·<타는 목마름으로>,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당나귀 선거>·<슐레지엔의 직조공> 등 모두 개인의 자유가 부당한 권력에 제한 당한 시대의 얘기들이다.

이 의원은 이 같은 토론 방법에 "의제와 관련이 없다"고 지적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에 "그럴수록 저는 쉽니다"라고 강하게 맞섰다. 그의 발언에 박수를 친 일반 방청객이 국회 방호과 직원에 의해 제지를 받자 "왜 주인인 국민을 끌어내나, 신체에 해를 가하지 마세요, (박수) 소리 들리지 않았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 [레알영상] 새누리당 의원 항의, 쫓겨나는 방청객...? 정말 퇴장당해야 할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오늘의 레알영상입니다.
ⓒ 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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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저도 국회의원이지만 처음 듣는 소리가 많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근거가) 입법 비상사태라는 말을 들었는데 비상사태면 비상사태지, 입법 비상사태가 있고 행정 비상상태가 있고, 지방자치단체 비상사태가 있나"라면서 새누리당 측의 방해를 비판했다.

시민으로부터 전달받은 의견을 소개하는 그에게 '찬성 의견은 없냐'는 새누리당 측의 질문엔 "제게 온 의견 중엔 찬성 댓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의원님께 (찬성 댓글이) 왔다면 올라와서 읽으십시오"라고 점잖게 타이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의원은 시 낭독을 통해 새누리당의 항의를 일축시켰다. 이 의원은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의 항의에 "조 의원께서 제가 목이 아프니깐 쉬어가라고 하신 걸로 즐겁게 받아들이겠다"라면서 <진혼가>를 낭독했다.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추진을 반대하며 학생운동을 주도하고 유신에 반대하는 '함성' 등을 발간한 김남주 시인이 감옥 안에서 고문을 통해 굴종을 강요하는 권력을 비판한 내용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적재적소의 일침이었다"라며 SNS 등을 통해 <진혼가> 내용을 공유하는 중이다.

김남주 시인의 <진혼가> 전문

1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꽁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군(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2
쓰고 있다
지금 나느 쓰고 있다
세 겹으로 네 겹으로 갇혀 쓰고 있다
내 탓이다라고
서투른 광대의 설익은
장난 탓이다라고
어설픈 나의 양심 탓이다라고
미지근한 나의 싸움 탓이다라고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나는 지금 쓰고 있다
움푹 패인 주먹밥 위에
주먹밥에 떨어진 눈물 위에
눈물 같은 국물 위에
환기통 위에 뺑끼통 위에
시멘트 바닥에 허공에 천장에
벽 위에 식구통 위에
감시통 위에 침 발라
손가락으로 발가락으로 혓바닥으로
마르도록 벗겨지도록
피나도록 쓰고 있다

여러 골이 쑥밭이 된 것도
여러 집이 뒤집힌 것도
설익은 광대의 서투른
장난 탓이다라고 함께
사랑했다는 탓으로 불려다니고
끌려다니고 밥줄이 막히고 끊어지고
스승의 난처한 입장도 나의
어설픈 양심 탓이다라고
법관의 어색한 표정도
간수의 안타까운 동정도
또 누구의 미안한 응원도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미지근한 나의 싸움 탓이다라고

공포(恐怖)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가장 좋은 무기(武器)이다라고

3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과 나의
미지근한 싸운은 참기로 했다
양심이 피를 닮고
싸움이 불을 닮고
피와 불이 자유를 닮고
자유가 시멘트바닥에 응집된
피 같은 불 같은 꽃을 닮고
있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응집된 꽃이 죽음을 닮고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
미지근한 나의 싸움
양심아 싸움아 너는
차라리 참아라 차라리
참는 게 낫다고 참아라



#테러방지법#이학영#조원진#필리버스터#진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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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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