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설날을 맞으면서 세운 몇 가지 계획이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흐트러졌다. 온몸의 기운이 쫘-악- 빠진다. 장성 축령산이 떠올랐다. 나약해진 나를 붙잡아 줄 것 같아서다. 흔들리는 목표를 다시 세워줄 것도 같다.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축령산은 임종국(1915〜1987) 선생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숲이다. 나무와 숲의 가치를 일찍 안 선생은 황무지였던 축령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부터였다.
당시는 멀쩡한 나무까지도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던 때였다. 임업에 대한 그의 투자는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선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생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봤다. 날마다 나무를 돌보고 숲을 가꾸는 데만 신경을 썼다. 가뭄이 들었을 때엔 물지게를 져서 물을 댔다. 가족들까지 나서서 물동이를 이고 산을 오르내렸다.
선생은 이렇게 21년 동안 편백과 삼나무 등 수십만 그루를 심었다. 그 면적이 240㏊나 됐다. 숲을 가꾸면서 갖고 있던 재산도 다 써버렸다. 그것도 부족해 빚까지 떠안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숲을 다른 사람한테 넘겼다. 그리고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임종국 선생이 가꾼 축령산은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에서 모암리, 북일면 문암리에 걸쳐 있다. 대한민국의 편백숲을 대표한다. 한 번이라도 찾은 사람이라면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편백숲 사이사이로 난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산림청과 (사)생명의숲에서도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했다.
숲길 산책로가 여러 갈래로 나 있다. 산책로는 마을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모암마을에서 우물터와 편백쉼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5월에 산소축제가 열리는 삼나무 숲이 출발점이다. 추암마을과 대곡마을, 금곡마을에서 출발해 두런두런 거닐 수 있는 길도 있다.
모암마을에서 편백 숲길을 따라 올라간다. 임도를 따라 줄지어 선 나무들이 하늘로 반듯하게 쭉쭉 뻗어있다. 수십 미터씩 뻗은 편백과 삼나무가 압도한다. 하지만 위압적이지는 않다. 임종국 선생의 체취가 배어있는 숲이다.
드넓은 연녹색의 숲길을 따라 타박타박 걷는다. 걸음을 부러 빨리 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걷는 것만으로도 보약이 되는, 피톤치드 듬뿍 머금은 숲이다. 숲길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행진하는 병정들 같다. 여행객들이 병정들 사이를 지나며 사열을 하는 것 같다.
발걸음이 가볍다. 눈이 시원해진다. 머릿속이 상쾌해진다. 세상시름 다 걷어낸 것처럼 홀가분해진다. 마음 속 깊은 곳의 갈증까지도 후련하게 풀어준다. 피톤치드를 맘껏 호흡하며 하늘하늘 걷다보니 어느새 우물터다. 주변은 편백쉼터다. 앞서 간 사람들이 통나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 편백숲에서 몸보신을 하는 건 매한가지다. 치유의 숲임을 실감한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에서 연결되는 담양-고창 간 고속국도 장성물류 나들목으로 나간다. 서삼면 소재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지나 모암마을 입구에서 좌회전한다. 내비게이션은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 산 98번지 또는 서삼면 모암리 682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