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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8일 취업포털 '사람인'은 성인남녀 1655명을 대상으로 이민 의향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78.6%가 '이민을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고 답했고, 이유는 (중복답변 허용) 삶의 여유 부족(56.4%)·근로조건 열악(52.7%)·불평등(47.4%) 순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살기 싫다는 '탈조선(탈출+조선)'의 꿈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언론도 '탈조선'을 주제로, 해외 워홀러·영주권 희망 청년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전해왔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목소리도 보탤까 합니다. 바로 '한국에서는 공부하기 싫어서' 떠난 유학생들의(미국, 유럽, 아시아) 목소리입니다. 첫 이야기는 미국입니다. - 기자 말

#1. 등록금 세계 1위 미국도 '헬조선'보다는 낫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교육 2015'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 1위다(2012년 기준). 국공립대 연평균 등록금은 8202달러, 사립은 2만1189달러다. 높은 등록금으로 이미 평이 나쁜 2위 한국보다(국공립 4773달러, 사립 8554달러) 두 배 남짓 높다. 2011년 영국 옥스퍼드대 하워드 홋슨 교수는 <미국대학 우위론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자국인들에게 '미국 대학 모델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유럽보다 전통이 떨어지는 미국 대학들은 격차를 메우려고 막대한 돈을 무리하게 쏟아부었고,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됐다는 이유다. 영국과 미국의 경제·인구·교육투자·대학 수 등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영국이 여러 대학에 돈도 더 균형 있게 분배했고 효과도 더 봤다고 덧붙였다(미국 모델이 심화되기 전 2004~2011년 당시).

OECD 미국 내 유학생 비중(2013) (자료 =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5') 참고로 CIA가 밝힌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중국 약 13억6748만 명, 인도 약 12억5169만 명이며(2015.7. 기준), 행정자치부가 밝힌 한국의 인구는 약 5154만 명이다(2016.1. 기준).
OECD 미국 내 유학생 비중(2013)(자료 =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5') 참고로 CIA가 밝힌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중국 약 13억6748만 명, 인도 약 12억5169만 명이며(2015.7. 기준), 행정자치부가 밝힌 한국의 인구는 약 5154만 명이다(2016.1. 기준). ⓒ 하지율

가령 영국인들은 THE-QS 연간 세계대학순위 20위권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더 많고, 200위권에 든 대학 비율도 더 높았다. 실제로 미국 대학의 인기가 예전처럼 좋지는 않다. 2000년대까지 전 세계 유학생 4명 중 1명은 미국으로 떠났다지만, 2013년에는 5명 중 1명에(19%) 그쳤다. 하지만 2013년 한국인의 유학은 60.8%가 미국행으로 나타났고,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의 비중은 미국 내 국제 유학생 중 3위를 차지했다(8.6%).

OECD 비회원국으로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1위 중국(28.7%)과 2위 인도(11.8%)의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인들의 미국 유학 의존도는 독특한 현상이다. 어학·유학 정보 누리집 '해커스'에도 매일같이 미국 유학 정보를 주고받는 청년들이 드나든다. 그럼 청년들은 왜 '등록금 1위 나라' 미국에 매력을 느낄까. 답은 단순하지만 가슴을 후벼 판다. 이리저리 조건을 견줘봐도 떠날 수만 있다면 떠나는 게, 한국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는 거다.

#2.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민중현씨는 존스 홉킨스대 학부과정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물리학·수학을 복수전공 중이며 지구행성과학을 부전공 중이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을 떠났다. 우주항공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국내에서는 그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분야 제일인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차근차근 미국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처음 7학년(한국 중1 과정)으로 편입한 곳은 미주리 주의 작은 사립 기독학교였는데, 근처 유학원 기숙사에서 10~20명의 한국인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통학도 같이했다. 첫 학기는 영어가 서툴고 소극적이었지만, 학업 수준이 높지 않아 쉽게 적응했다. 과목 대부분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지역 수학대회에서 상도 몇 번 받았다.

육상부에 든 걸 계기로 생활도 적응했다. 미국의 사립 교육은 학생들의 학업 및 과외활동을 병행해 서로 동기부여를 하도록 유도하는 걸로 유명하다. 중현씨는 오하이오 주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여러 과외활동을 병행했고, 미식축구부 주장까지 역임했다. 한국 교육과 달리 학생과 교사들의 사이가 가까운 것도 특징이었다. 선생님들의 집이 교정 내에 위치해 수시로 방문해 토론과 질문을 했으며, 선생님들은 운동코치이기도 했다.

그는 하크니스 메소드(Harkness method)라 불리는 토론 중심 교육을 경험했다. 즉 원형의 큰 책상(Harkness table)에 둘러앉아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반박하거나 수긍하며, 각자의 결론에 도달하는 논리적 능력의 자립식 교육을 받았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답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면, 미국의 교육은 '그 답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집중을 한다. 그는 두 가지의 교육 방식이 상황에 따라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존스 홉킨스대(Jhons Hopkins University)는 1876년에 설립된 미국 명문 사립대 중 하나로,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위치해 있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 명성이 높고 특히 의학과 과학 분야가 유명하다.
존스 홉킨스대(Jhons Hopkins University)는 1876년에 설립된 미국 명문 사립대 중 하나로,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위치해 있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 명성이 높고 특히 의학과 과학 분야가 유명하다. ⓒ JHU 인스타그램 갈무리

전자는 뚜렷하고 단기적인 목표가 있을 때 유용해, SAT(미국 수능) 준비를 할 때 효과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역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자신이 한국의 과학고나 자사고를 나왔다면 '학업 경쟁력'은 늘었겠지만, 교실 밖 이점을 누릴 기회나 생각하는 능력을 키울 기회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미국 교육은 학교 밖으로의 연결고리도 풍부하다. 가령 중현씨는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기 전 학교를 통해서 독일 '막스플랑크 핵물리학 연구소'의 인턴십도 구했다. 학업과 과외활동의 성공적인 병행으로, 그는 마침내 존스 홉킨스대에 입학해 만족스러운 대학생활을 보내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들을 누리는 비용은 어떻게 다 마련할까.

중현씨가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이고 가정이 연 소득 20만 달러 미만이라면, 존스 홉킨스대는 매년 평균 3만8000달러를(약 4653만 원) 지원한다. 하지만 그는 시민권자도 영주권자도 아니다. 한 주립대가 전액 장학금을 제의했었지만, 존스 홉킨스대에 진학했고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매년 6만 달러(약 7347만 원)의 비용을 학교에 낸다(학비+기숙사비+학식비). 한 학기 생활비 2500달러(약 306만 원) 정도만 방학 중에 스스로 번다.

결국 학비를 부담할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그는 한국에서 고질적인 고학력자 '인재유출'도 문제지만, '인재양성' 과정도 문제라고 본다. 중현씨는 "만약 존스 홉킨스대 기초과학 건물을 방문해서 동양인을 본다면, 99%는 국가장학금으로 유학 중인 중국인을 본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아는 한 존스 홉킨스대에서 물리학, 수학 대학원 과정 이상을 밟고 있는 한국인은 '없다'. 해당 전공으로는 정부 지원을 못 받기 때문이다.

동기, 선·후배 중에서도 응용과학 전공자는 넘쳐나지만 순수과학 전공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중현씨가 하고 싶은 일을 좋은 보수를 받으며 할 수 있는 곳도 거의 없다. 한국에 고마움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돌아갈 생각도 현재 없다. 미국 이공계 석·박사과정부터는 풀펀딩(등록금 면제+매월 생활비 수령)을 받기가 꽤 수월하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부담도 앞으로 덜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3. "탈조선하고 문화충격을 경험했어요"

류혜진(가명)씨는 국내 인문계 석사과정을 마친 뒤, 차근차근 유학을 준비했고 현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주 20시간 일하는 연구 조교를 맡는 대신 풀펀딩을 조건으로 입학했고, 학교로부터 매월 180만 원가량을 받는다(세후 기준). 혜진씨는 이조차 다른 박사과정생들에 비해 적다고 했다. 아직 경력이 짧기 때문이다.

그래도 혼자 먹고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한국의 모 기업에서 주 40시간 이상 알바를 했을 때 흔히 월 130만 원을 받았던 때보다 훨씬 낫다. 결정적으로 한국에서 '하루에 다 하라'고 줄 일을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걸쳐 시키는 걸 알고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한국에서는 보조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월 20만 원을 주고 시키던 수준의 노동 강도였다.

매 학기 2천만 원 정도의 등록금을 면제받고 월급도 한국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받는다. 이런 상황이니,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다르게 오히려 공부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는 대학원생 조교들의 노동조합도 있다. 혜진씨는 아직 모임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나가보려고 생각 중이라고 했다. 혜진씨는 자신이 더 인간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낀다.

연구 조교로서 하는 일은 전부 경력에 도움이 된다. 박사과정 1년 차 때 학부생 1학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두 개 했는데, 이력서에 넣기 좋은 경력이다. 2년 차에는 연구소 두 곳으로부터 일을 받았고, 연구소가 책을 하나 내면서 자기 이름도 올렸다. 하지만 한국은 조교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했을지라도 교수 이름으로만 올라가는 일이 빈번하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Pennsylvania State University)는 1855년에 설립된 미국 명문 주립대 중 하나로, 19개의 연방 캠퍼스와 8개의 특별교육기관으로 구성됐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 명성이 높고 다양한 학문 분야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Pennsylvania State University)는 1855년에 설립된 미국 명문 주립대 중 하나로, 19개의 연방 캠퍼스와 8개의 특별교육기관으로 구성됐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 명성이 높고 다양한 학문 분야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 PSU 인스타그램 갈무리

혜진씨는 지난해 유럽으로 학회도 다녀왔다. 일체의 비용은 학교가 보장했다. 국내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을 떠올리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지도교수 이름이 들어가는 발표일 경우 100만 원 수준의 지원금을 주지만, 그마저 단독 발표일 때는 전혀 안 주기 때문이다. 혜진씨는 자신이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은 '연구방법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면, 16주 내내 학생이 발표만 하다가 끝난다.

연구를 직접 해보는 게 아니라 책만 읽다가 끝나는 셈이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는 연구방법들을 하나하나 프로젝트로 수행할 수 있고 평가도 그 포트폴리오(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집약된 자료집·작품집)로 한다. 한 페이지짜리 짧은 글을 써도 교수들이 성실하게 조언을 해준다. 혜진씨는 자신이 남의 조언을 먹고 자랐으니, 남에게도 돌려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물론 혜진씨는 한국 교수들도 이해한다.

한국 교수들은 대부분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학생을 한 명씩 신경 써주기 힘들다. 정부가 시장논리로 대학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대학 본부는 성과제를 도입해 '논문 생산 경쟁'을 유도한다. 그럴수록 더 많은 교수의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권력자 앞에서(pro) 비판을 토해내기(fessor) 위한 방패막(테뉴어, 즉 정년보장)에도 균열이 간다.

단순히 교수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거대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국내 연구 환경에선 교수들부터 서로 서열 짓도록 조장하는 분위기다. 이런 환경에서 국내 교수들이 미국처럼 박사과정생들을 '수평적인 동료'로 대우할 감수성을 유지하기란 힘들다. 혜진씨는 물론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부조리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 불합리한 대우를 겪은 적은 없다.

혜진씨는 미국 유학의 단점도 전해달라고 했다. 출국까지 당연히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TOEFL·GRE 등) 각종 원서비, 영문 자기소개서 첨삭비, 국제 우편비는 물론이며 추천서를 써준 교수에게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등 수백만 원의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가난한 학과들은 펀딩이 불안정해 5년 중 2년만 지원해주거나 중도에 끊길 위험도 있다. 그 즉시 '세계 1위 등록금'의 압박을 피부로 느껴야 한다. 결국 미국도 '금수저들의 리그'다.

아무리 공부해도 어려서부터 외국을 드나든 부유층과 자신 사이에 넘기 힘든 언어의 벽도 느낀다. 학업 외적인 문제도 한둘이 아니다. 외로움,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미국은 의료보험 문제로 의료비가 매우 비싸다) 등 심신의 문제가 있다. 혜진씨는 교통사고로 갑자기 팔이 마비되는 후유증을 겪기도 했지만 의료비가 걱정돼 아무런 전문적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말한다.

"이 모든 어려움을 감내할 만큼 더 나은 삶이 여기에는 있으니까요."

(유럽 편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 국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말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두 유학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태평양 너머에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보내길 바란다.



#탈조선#미국 유학#두뇌유출#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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