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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을 축하합니다. 입학식 날, 교실 칠판에 환영 문구를 붙여두었다.
입학을 축하합니다.입학식 날, 교실 칠판에 환영 문구를 붙여두었다. ⓒ 윤경희

1. 전동 연필깎이 8만 원
2. 보조가방 백팩 세트 19만 7천 원
3. 맞춤형 책상 89만 9천 원
4. 플라워 백팩 27만 원
5. 방수 커버 백팩 12만 2천 원

'입학선물'을 검색해서 나온 어느 여성지의 '초등학생을 위한 입학선물' 리스트다. 사진까지 곁들여진 그것들은 우리 아이의 혹은 내 조카의 초등학교 생활을 정말 훌륭하게 출발시켜 줄 것만 같다.

잠시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입학식에 참석한 아이들은 엄마와 혹은 아빠와 잡은 손을 놓고 신입생 대열에 선다. 설렘, 기대감, 두려움까지 섞여 있는 얼굴들.

그 사이로 한 아이가 들어온다. 비교적 또래들보다 큰 키에 안경까지 끼고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에 하얀 얼굴은 모범생의 전형처럼 보였다. 막 엄마와 잡은 손을 놓고 줄에 선다. 나는 짐짓 반가움을 드러내며 다가간다.

모두 다른 아이들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리도 자신과 닮았을꼬! 하지만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른 아이들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리도 자신과 닮았을꼬! 하지만 모두 다르다. ⓒ 윤경희

"반가워, 난 윤경희 선생님이야. 넌 이름이 뭐니?"
"한송이(가명)"
"그래, 송이야 반갑다. 여기 너 이름표"

시끌벅적한 체육관에서 아이의 조그만 목소리를 들으려 내 귀를 아이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름을 재빠르게 확인하고 몇 개의 이름표 중에 아이의 것을 찾아 목에 걸어주며 얼굴을 보았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어찌할까 고민하기도 전에 다른 아이들이 이어서 줄을 서고 있었다.

송이는 입학식이 진행되는 엄마가 서 있는 뒤로 돌아서서 계속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송이야, 입학식은 저기 있는 시계에 긴 바늘이 8에 갈 때까지 할 거야. 8 지나면 교실에 가고, 그땐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내가 입학식 끝나는 시간을 알려주자 아이는 조금은 안심한 듯 보였다. 그 후 송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시계가 있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입학식 내내. 송이는 교실에 와서도 내내 눈물을 흘렸고 엄마가 제 옆에 와서 서자 비로소 진정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본 송이는 순하면서 정직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특히 독서 수준이 높아서 2~3학년이나 읽음 직한 글밥이 많은 동화책을 곧잘 가지고 와서 독서시간에도 읽고 쉬는 시간에도 자주 읽었다. 한 번은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었는데 송이가 써온 일기는 한 편의 동화였다. 너무 놀라워서 옆 반 선생님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하였고 댓글을 한 바닥 적어주었다.

엄마와의 끈이 너무나 짧은 송이

송이는 외동딸이어서 그런지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등하교는 1년 내내 엄마와 함께였다. 봄 추위가 따스함으로 바뀐 4월의 어느 날. 놀이 시간인데도 혼자서만 교실에 있다.

"송이야, 왜 나가서 안 놀아? 같이 나가자."

내 권유에 마지못해 송이는 운동장에 나가 놀이터에서 놀았다. 얼마가 지나 기분이 좋아진 듯 송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사실은 엄마랑 운동장에는 한 달에 한 번만 나가서 놀기로 약속했어요."

그때의 놀라움이란. 너무 놀라서 뭐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송이는 복도에 혼자 서 있다.

"왜, 아직 집에 안 갔어?"
"엄마가 아직 안 왔어요."

'지금쯤이면 학교 주변 인도로 혼자서도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많이 머니?"
"그건 아니고..."
"집에 혼자 안 가봤어?"
"네, 엄마 오면 같이 집에 가요."
"그렇구나."

밝게 인사를 하고 송이와 헤어졌지만 마음은 어두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면 송이와 엄마는 그 끈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 몸속의 씨앗으로 있던 아이가 생명으로 탄생한다. 그러면 한 해 한 해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는 아이와의 심리적 끈의 길이도 늘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눈앞에 보여야만 안심하고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실패할 것 같으면 미리 성공방법을 알려주어 실패를 예방해준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용감하게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교실에서 바쁘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오히려 심부름 거리가 부족하여 아이들의 호의를 다 수용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못 할 거라는 생각은 대개의 경우 오해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라나고 믿는 만큼 책임감을 가진다. 믿었는데 아이들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얘들아, 너희들이 한 번에 다 잘하면 학교에 뭐하러 오겠니? 그런 애들만 오면 선생님이 필요하겠어?"
"아니에요."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청껏 대답한다.

"그래,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는 거야"

잘 하고 있어 "그래, 잘 하고 있어. 힘을 내!" 불안한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잘 하고 있어"그래, 잘 하고 있어. 힘을 내!" 불안한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 윤경희

그렇다. 진정한 입학 선물은 아이에게 믿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것이다. 믿어주려면 정말 힘이 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불안해서 몸이 떨릴 수도 있다.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자. 불안은 합리적인 대책을 세움으로써 이겨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의 막연한 불안을 아이에게 떠넘기지는 말자. 아이들도 자신의 세상을 향해서 한 발짝씩 힘겨운 걸음을 내디디고 있으니까.



#교육#초등#1학년#입학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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