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저 멀리, 해가 지는 쪽으로아이의 손을 떠난 돌멩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지는 쪽으로 가고 싶었다
슬로베니아로터 아버지 소식이 끊긴 뒤부터였다
삼단으로 변신하는 로봇보다
까칠한 수염의 아버지가 그리웠다
엄마는 해질 무렵이면 호숫가를 서성였다
오스만투르크의 피가 섞인 아버지는 거칠었다
감히 누구도 엄마의 과거를 수군거리지 못했다
밤마다 부엌에서 소리 죽여 우는 사연은 뭘까
호수 저편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알렉산더 영감님은 알바니아가 있다고 그랬다
아버지가 트럭운전수로 일하는 곳은
거기서도 서북쪽으로 하루를 더 달려야 한다고
열두 살 아이를 가벼이 들어 올려 무등 태우던
구릿빛 억센 팔뚝의 사내가 떠오를 때마다
호수 저편 사라지는 태양을 향해 돌을 던졌다
휘파람 소리로 날아간 돌은 아버지에게 닿았을까
아이의 손을 떠난 돌멩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