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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1월 10일) 막 여행에서 돌아온 여행자들이 모티프원에 오셨습니다.

60대 후반의 종합 예술가 소엽 신정균, 40대 중반의 공연전시 기획자 이선아, 40대 중반의 봉급생활자 최미영, 30대 초반의 지리산대안공동체운영자 엄윤미.

네 분은 2016년의 새해를 한국밖에서 맞으리라는 결심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여행의 후일담 시간도 여행의 연장입니다.
여행의 후일담 시간도 여행의 연장입니다. ⓒ 이안수

실크로드의 종착지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에서 쇼핑을 하고 스페인으로 날아갔습니다. 중후하게 인생의 성찰을 위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길을 걸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거반 40년 가까운 나이차이가 나는 4명의 여전사들은 좀 더 가볍고 경쾌하게 각자의 인생을 즐기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스탄불과 안달루시아에서 내 팔을 자유롭게 흔들던 자유의 흔적들
이스탄불과 안달루시아에서 내 팔을 자유롭게 흔들던 자유의 흔적들 ⓒ 이안수

여행의 모토는 '내 팔은 내가 흔든다'였습니다.

신정균은 70년 가까게 살아온 세월, 대부분을 버리고 떠난 여행 길었습니다. 십년간 운영해오던 서실의 학교를 닫고, 매시간 그녀의 관심을 유발시켰던 밴드와 카페를 모두 탈퇴했습니다. 가볍고 경쾌하게 팔을 흔들 모든 준비를 기왕에 마치고 길에 올랐습니다.

이선아는 한 도시의 문화재단 공연전시 총괄로 수많은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책임지다보니 정작 자신은 잃어버린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되찾아 넋 놓고 플라멩코에 몸을 맡기고 집시의 자유를 구가하고 싶었습니다.

최미영은 수십 년 월급의 당근을 뿌리쳐보는 맛을 원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되풀이 하다 보니 걸을 때도 오른발과 오른손이 함께 올라가는 기형이 올 정도였습니다. 정말이지 내팔을 내 의지대로 흔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엄윤미는 도시를 뒤로하고 더 큰 희망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투명한 하늘, 폐부에 와 닿는 공기는 서울보다 천배는 찬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성급 호텔의 격조와 5만 원짜리 은수저가 세팅된 아침 식사조차 마다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인천_이스탄불_말라가_론다_세빌_카디스_세빌_코르도바_그라나다_말라가_이스탄불_인천. 네 여전사의 자유의 여정입니다.
인천_이스탄불_말라가_론다_세빌_카디스_세빌_코르도바_그라나다_말라가_이스탄불_인천. 네 여전사의 자유의 여정입니다. ⓒ 이안수

말라가에서 비행기를 내리자 공항에서 바로 렌터카 키를 받았습니다. 네 여인은 각자의 맡은 역할대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신정균은 저울의 추로서 여행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이선아는 여행의 모든 아이티너리(여행 일정표)를 확정하고 예약하는 총감독을 맞았습니다. 최미영은 모든 여정에서는 지출을 책임지고 기록하고 초과지술에 경보를 울리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엄윤미는 이동지역의 정보를 검색하고 변화되는 여정의 목적지를 찾아내며 영상을 기록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플라멩코의 원형이 태동한 곳에서 집시의 춤에 젖고 투우의 발상지 론다의 원형 투우장에서 열주를 돌면서 각자 인생을 들썩이게 하는 영맹한 들소를 제압하는 마타도르가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네 사람의 호기를 보는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동양의 한 미지의 왕국에서 온 왕족의 방계쯤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5성급 호텔을 고집했고 그 호텔의 풍성한 아침을 한 시간 넘게 오래도록 즐겼습니다.

호텔방에서는 세탁물을 펴지 않았습니다. 온전하게 엘레강스한 장식들이 모두 자신들의 시종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된 고성의 호텔에서는 정말이지 왕비나 공주인듯 싶어 꿈이면 깨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실상은 돈키호테와 산초에 가까웠습니다. 산초의 나귀일 자동차가 좁은 골목에서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기도 했고 긴 내리막에서 발을 떼지 않은 클러치가 연기를 뿜어 경찰이 출동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경찰과의 소통을 위해 스페인어가 가능한 남미의 한 지인대사님께 전화로 통역을 부탁하고서 위기를 면하기도 했습니다.

 고성과 고택에서 마치 소왕국의 왕비 같은 마음을 가져보는 것, 그동안 잃었던 자존감과 자존감을 올리는 기회였습니다.
고성과 고택에서 마치 소왕국의 왕비 같은 마음을 가져보는 것, 그동안 잃었던 자존감과 자존감을 올리는 기회였습니다. ⓒ 신정균

2015년 12월 31일 자정, 네 사람은 세비야의 중심광장에서 마침내 2016년을 맞았습니다.

그들의 옆에는 2년 전 세시야에 와서 마침내 칸테 플라멩코(Cante Flamenco)의 정상에 오른 한인 여성이 있었습니다.

 구랍 섣달 마지막 날의 자정, 우리는 세비야의 중심광장에서 2016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환호했습니다. "올해, 내 팔은 내가 흔들 거야."
구랍 섣달 마지막 날의 자정, 우리는 세비야의 중심광장에서 2016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환호했습니다. "올해, 내 팔은 내가 흔들 거야." ⓒ 이선아

그들은 함께 환호했습니다.

"2016년, 내 팔은 내가 흔든다."

오전 1시가 지난 시간 여행담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소엽 선생님께서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그것을 가방 가득 채워왔습니다."

네 분이 모든 가방에 가득 쇼핑해왔다는 최고가의 그것은 '자유'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스페인#안달루시아#이스탄불#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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