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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의 대학을 생각하면 상아탑이나 학문의 전당 이런 느낌보다는 비싼 등록금, 논문 표절 이런 것들이 더 생각나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얼마 전 뉴스에도 국립대 총장으로 임명된 교수가 예전에 한번 써먹은 논문을 제목만 살짝살짝 바꿔가며 4번이나 더 학술지에 게재했다고 한다. 학자로서의 양심이 있는지 의심이 간다. 대학의 심각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대학과 한국의 대학을 비교하면서 미국의 힘은 대학에서 나오고, 한국의 대학은 힘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고통만을 안겨주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 대학관계자들이 들으면 불편하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대학에 대하여 느끼는 체감온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어느 대학에서는 한번도 출석하지 않은 학생에게도 학점을 퍼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야 그 학생이 자퇴를 하지 않아서 등록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인원을 유지해야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심지어 어느 대학은 수업을 듣지도 않은 학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학위장사를 일삼다가 퇴출되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조사된 바로는 만명이 넘는다. 또 어느 대학은 재학생수는 200명 남짓한데 인터넷 대학생을 모집해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면서 50억 원의 수강료를 챙긴다. 이 50억원은 설립자의 딸인 31살의 총장 개인계좌로 들어가 관리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폐쇄조치된 대학이 그냥 순순히 물러나는 것도 아니다. 교육부를 상대로 지루한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폐쇄된 대학건물이나 토지는 국고로 귀속되어야 함에도 소송중이기 때문에 그대로 대학법인 소유로 되어 있다. 한번 잘못 들인 발걸음이 얼마나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한국교육개혁의 흑역사, 오늘은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비판한다. 5.31 교육개혁중에서 가장 실패한 정책중 하나가 대학정책인데, 이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5.31 교육개혁 2차발표때인 1996년에 생겨났다.

'대학설립준칙주의'란 한마디로 대학 설립을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허락해주는 제도이다. 최소한의 요건이라는 것이 네 가지이다. 교지(땅), 교사(건물), 교원, 수익용기본재산 등 최소 설립 요건을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는 제도이다.

이 준칙주의 도입 이전에는 '대학설립 예고제'에 따라 교지, 교사, 교원, 수익용기본재산, 도서, 기숙사, 실험실습설비 및 교재 교구 확보 기준이 명시되었고, 대학 설립 계획단계에서 최종 설립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조건을 충족했을 경우에만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밖에도 허가청인 교육부가 설립지역과 계열 그리고 설립자의 육영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인가를 해주었다.

준칙주의 도입이후 봇물처럼 터져나온 대학설립

대학을 설립하려는 사람들은 까다로운 신청 절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또 이밖에도 자신의 지역구에 대학을 설립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로비설도 끊이지 않아 대학설립 정책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점도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도입된 배경이다. 이렇게 대학설립 준칙주의 도입으로 설립요건이 완화되자 대학 신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야말로 돈되는 사업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1997년 20개 대학교, 1998년 7개 대학교가 설립되는 등 2011년까지 63개 대학이 설립되었다. 현재 사립대학 수가 약 300교이니까 5개 학교 중 1개 학교가 준칙주의 이후 설립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준칙주의 도입 방침이 발표될 당시부터 '설립 기준을 완화시켜 부실 사학을 난립시키고, 대학 구성원들의 피해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이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수많은 부실대학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8개 대학이 심각한 부정․비리 등으로 인해 '학교폐쇄' 조치되었다. 지금까지 폐교된 대학은 2000년 광주예술대를 시작으로 2008년 아시아대, 2012년 명신대 성화대가 폐교되었다. 선교청대는 2013년, 그리고 건동대는 자진 폐교했고, 2014년에는 경북외대와 벽성대학이 문을 닫았다. 앞으로도 이런 대학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이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인근의 다른 대학으로 편입해주는 조치를 취하지만 그마저 쉽지는 않다. 교수나 교직원들은 일자리 자체를 잃어 버린다. 잘못된 정책 하나가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등록금 장사를 하려는 이사장들의 요구를 교육부가 들어준 꼴이 되었고 이제는 교육부가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고 고민이다.

5.31 교육개혁중 이 대학설립준칙주의가 제일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된다. 2012년 현재 부정․비리로 인해 임시이사가 파견 된 대학도 5개교에 달한다.  '학자금대출제한대학'으로 선정된 대학 총 17교 중에서 8교(47.1%),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43교 중에서 19교(44.2%)가 준칙주의 이후 개교한 대학들이다.

대학 난립의 문제점

이러한 대학의 난립은 두가지 문제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지방대의 동반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실대학이 대부분 지방에 난립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서울시내 소재 대학교들의 위상이 높아졌다. 지방 국립대들은 얼떨결에 수도권 대학에 추월 당하게 되었다. 준칙주의 도입이전만 해도 지방 국립대가 서울에 스카이정도를 제외하면 경쟁력이 있는 대학이었지만, 지금은 서울의 주요 10개 대학 다음으로 순위가 밀려 있다.

또 하나는 대학이 많아지다 보니 대학의 서열화가 더 공고해졌다는 것이다. 대학답지 않은 대학들이 많아지니까 자동적으로 괜찮은 대학들이 더 부각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결국 이것이 학벌주의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앞날이다. 앞으로 2018년이 되면 고등학생 졸업자 수가 대학정원보다 적어진다. 2018년이 되면 대학입학 정원이 55만 9036명인데 비해 고등학교 졸업자수는 54만 9890명이 된다. 2021년이 되면 현구도상으로 대학입학정원에 16만 명이 모자란다. 지금 중학교 1학년부터 인구절벽이다. 현 중1은 2002년 생인 '월드컵둥이'들인데 당시 몰아닥친 IMF의 여파로 청년실업, 미결혼 및 저출산으로 인구절벽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대학의 앞날이 풍전등화이다. 따라서 대학의 구조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지난 2013년 폐지되어 허가제로 바뀌었지만 문제는 현재 있는 대학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다.


#대학설립준칙주의#한국교육개혁#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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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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