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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을 시(詩)로 쓰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감히 어떻게 써'라거나 '함부로 쓸 수 있나'라 할 수도 있지만,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은 '노무현'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노무현>

노사모도 당원도 아닌 것이
어쩌다가 마주 보며 또는 옆에서
밥도 먹고 거리낌 하나 없는
생각도 펼쳤지만
"나 때문에 손해 많이 봤지요?"
이제는 그런 말씀 눈물겹지 않습니다
"대통령 해 먹기 힘들다"
그 품격 낮은(?) 말씀을 누가 감히
흉내 낼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빛나는 고졸 대통령!
아 참 2014 어느 조사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사람들은 당신을 뽑았습디다

박노정 시인이 펴낸 새 시집 <운주사>(도서출판 펄북스)에는 이 시 이외에도 사람 이름을 딴 시가 여럿 있다. 한 인물을 단 몇 줄의 시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그 인물에 대해 잘 알아야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장일순(1928~1994, 시민운동가)과 권정생(1937~2007, 아동문학가)도 시를 통해 흠모의 마음을 담았다. 어쩌면 박노정 시인은 이런 시를 통해 그 인물처럼 살고 싶어 했던 것 같거나 닮아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장일순>

평생 원주를 떠나지 않은 / 눈물쟁이 '걷는 동학' / 선생의 장례식엔 3천 명이 모였지만 / 무위당, 좁쌀 하나… / 즐겨 쓴 호 한두 개가 아니지만 / 나중엔 하류(下流)라 / 불러 달라 강조했다 / "기어라, 모셔라, 함께 하라" 하셨다

<권정생>

이 산하 / 어찌 슬픔뿐이겠는가 / 어찌 허기와 현기증뿐이겠는가 // 아슬한 인연의 그물코에 걸린 / 천덕꾸러기들과 /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난 울분마저 / 재빨리 소망의 보따리에 감싸 안고 // 바람과 햇볕으로 삭이고  / 달빛과 별빛으로 절여서 / 간간짭조롬한 맛으로 다시 샘솟게 하는  // 저 그지없는 연민 앞에 / 채곡채곡 쌓이는 / 주렁주렁 매달리는 / 지푸라기 풀무치 맨드라미 사마귀와 / 저 새앙쥐를 보며

 박노정 시인.
 박노정 시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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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정 시인은 시집에 '민병산', '천상병', '법정 스님', '이오덕', '권정생의 유언장', '이선관', '채현국', '김열규', '김장하', '김재섭', '김종철', '서정춘', '김진숙', '강증산', '단재 선생'도 써놓았다.

이선관(1942~2005)은 주로 마산에 살며 생태·환경 문제를 온몸으로 고발했던 시인이었고, 채현국(1935~ )은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이며, 김장하(1944~ )는 진주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다. 고성 출신 김열규(1932~2013)는 교수였고, 김종철(1947~ )은 <녹색평론> 발행인으로 시인은 오래전부터 이 책의 애독자였으며, 김진숙은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시집 <운주사>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2·3부에는 '함양', '눈길', '임을 위한 행진곡', '서시', '거룩한 허기', '토지 경전' 등 자연풍광과 사색을 읊은 시가 담겨 있다.

4부에는 '운주사'를 포함해 사찰을 소재로 쓴 시가 실려 있다. '인각사 돌부처', '미황사 풍경 소리', '칠불사', '해인사 일주문', '원효암', '장곡사', '해인사', '불회사', '만어사에서 취하다', '겨울 화엄사', '운주사 부처님', '무위사', '감은사 탑', '눈부처 유등'이라는 시는 불교경전과 같은 깊이가 있다.

 박노정 시인의 새 시집 <운주사>.
 박노정 시인의 새 시집 <운주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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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정 시인은 문학에만 매진하며 살아온 흔한 '문인'이 아니라, 평생 지역운동에 헌신해온 '운동가 시인'이다. 그는 진주에 살며 '민주화운동' '언론운동' '인권운동'을 이끌어 왔고, 시는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 영글었다.

시인은 이제는 잘 말하지 않는 '민중 문학'의 정신과 '민중시'의 기개를 온전히 담고 있다.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이 아니라 눈물겹게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들 편에서 '구도적 글쓰기'를 한다. 그의 문학이 환기하는 것은 세상의 왜소하고 나약한 사람들의 회한이 아니다. 그 정서는 매서운 서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언희 시인은 박노정 시인에 대해 "조선 토종의 대쪽 아금과 대책 없는 눈물쟁이 시인이 여기 있다. 시인은 순정(純情)하고 종횡무진 돌직구로 부정에 순정(順正)한다"며 "오죽하면 제자와 후배들이 시인을 부르는 별호가 '순정노정'이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본문은 사라지고 빛나는 각주 한 줄로 남고 싶은 시인의 시선집 첫 페이지에 실린 시 '장일순'은 의미심장하다"며 "시집에 수록된 한편 한편이 시인의 한 생애씩이지만, 단 여덟 행으로 한 인간의 일생을 그려낸 이 빼어난 시편은, 시인의 미래의 자화상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미래의 자화상을 그려놓고 흐트러짐 없이 정진하고자 하는 시인 박노정이 있으니 세상의 복이다"고 덧붙였다.

박노정 시인은 그동안 시집 <바람도 한참은 바람난 바람이 되어> <늪이고 노래며 사랑이던> <눈물공양>을 펴냈고, <진주신문> 편집발행인을 지냈으며, 진주민족예술인상과 경남문학상, 호서문학상, 토지문학상, 개척언론인상 등을 받았다.


운주사

박노정 지음, 펄북스(2015)


#박노정 시인#운주사#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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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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