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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숲 명상농원' 어귀에서 행사를 알리는 걸개.
'바보숲 명상농원' 어귀에서 행사를 알리는 걸개. ⓒ 박도

반가운 비

농사꾼들은 입동을 지난 이즈음 비는 매우 싫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열매를 걷어드리고, 이를 말려야 하는 때에 내리는 비는 반갑기는커녕 애써 다 지은 농사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올 1년 내내 내린 강수량은 평년의 절반 정도에 웃돌 정도로 전국의 각 댐은 물론, 조그마한 웅덩이까지 메말라 식수조차도 위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내린 비는 단비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매우 사랑받고 있다.

며칠 전, 강 건너 여주 여강에 사는 아우(홍일선 시인)가 이런저런 안부 전화 끝에 "원주 형님, 14일 점심에 저희 집으로 와서 국밥이나 들고 가시라"고 했다. 나는 그 영문도 묻지 않은 채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약속한 날 아침부터 질척질척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는 오후부터 갠다고 했다.

여주 여강 강가의 홍일선 아우네 집은 거리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승용차가 없는 나에게는 서울보다 더 멀다.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여주행을 탄 뒤, 여주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 시간가량 더 기다려 농어촌버스를 타고 점동면 도리마을에서 내렸다. 그새 내린 비로 진흙탕이 된 시골 길을 터덜터덜 걷자 잠깐 새 신발과 바짓가랑이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손들이 비료부대 종이에다가 시를 쓰고 있다.
손들이 비료부대 종이에다가 시를 쓰고 있다. ⓒ 박도

가장 진정성 있는 태도

이렇게 사는 나 자신이 때로는 미웠지만 그런 마음을 언젠가 도법 스님이 잘 달래주었다. 몇 해 전에 그분은 5년 동안 전국에 걸쳐 2만5천여 리를 발로 걸으며 생명평화운동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사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도법 스님을 영접하면서 하필 그 먼 길을 힘들게 걸어서 다니느냐고 우문(愚問)을 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정신으로나 육체로나 환자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병은 걸으면 저절로 고쳐집니다. 걸으면 자기의 내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걸어야 합니다. 걸으면 삶이 단순해지고 홀가분해집니다.

현대인들은 정작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삽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무지합니다. 걸으면 그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또 탁발은 사람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또박또박 걸어서 찾아가는 게 가장 진정성이 있는 태도이지요."

그 선사의 현답(賢答)이 떠오르자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게, 그리고 지금 내가 소유한 것이 적은 게 조금도 부끄럽거나 싫지 않았다. 사실 나는 고교 시절 신문 배달로, 육군 보병 장교로, 또 의병전적지 및 항일유적답사자로 걷는 데는 아주 이력이 난 사람이 아닌가.

호남 의병전적지를 6개월 동안 전라남도 쇠불알 모양의 고흥반도 도화면 당오리에서부터 전라북도 정읍시 산내면 회문산까지 고을고을을 다 뒤졌고, 중국 동삼성의 봉오동, 청산리, 고산자, 합니하, 청봉령 등 주요 항일전적지 마지막 고갱이는 모두 글자 그대로 내 발로 밟는 '답사(踏査)'를 했다. 그것은 조국을 위해 순국하신 영령들에게 바치는 한 순례자의 양심이었다.

 손들이 홍일선 주인장으로부터 '바보숲 명상농원'을 소개받고 있다(앞열 현기영 소설가 부부와 신경림 시인).
손들이 홍일선 주인장으로부터 '바보숲 명상농원'을 소개받고 있다(앞열 현기영 소설가 부부와 신경림 시인). ⓒ 박도

예술가 작업실 오픈 페스티벌

홍일선 아우는 그런 나를 알고 있었기에 나를 '원주 형님'으로 부르며 굳이 초대하였으리라. 나는 '바보숲 명상농원' 어귀에 이르러 걸개 '예술가들 바보숲에서 공생공락을 이야기하다'를 보고서야 그날 행사를 그제야 조금 짐작했다.

곧 바보숲 농장에 이르자 70~80명의 손님들로 붐볐다. 개중에는 그동안 익힌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내 눈에 익은 분들은 주로 문단 선후배들이었다. 신경림·현기영 작가 내외분· 이경자씨와 멀리 전라도 광주에서 불원천리 길을 일부러 온 이은봉 시인 내외분·구중서·정용국·이승철·서정춘·용신환·정수자·박완호·박설희·최경숙·김좌현·서수찬·한우진·김영현·박희호·윤일균 등의 문인들이 비를 맞으며 초라한 몰골로 뒤늦게 도착한 나를 대단히 반겨 맞았다.

이 밖에도 경기문화재단의 박희주 본부장·김종길 문예진흥실장·강상훈·이진실·김나리 디렉터·이경희씨 등의 관계자와 도리마을 이경희 이장님, 부녀회 회원들 그리고 서종훈·진재필·김계용·박덕규·김천영·이인휘 등 후배 문인들과 예비 문인들인 한국문화예술원 학생 12명 등 바보숲 명산농원 뜰을 가득 메운 손님들과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조촐한 잔치였다. 그래도 당신 지역예술인을 돌보고자 바쁜 일정임에도 원경희 여주시장님과 홍은표 점동면장님이 전날 미리 큰 돼지 한 마리를 보내주신 덕분으로 손들은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맛있는 국밥으로 요기한 뒤에야 우촌(이승철 시인) 아우에게 오늘 무슨 잔치냐고 바보처럼 물었더니, 그는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그날 잔치는 경기문화재단에서 '2015 경기지역 예술가작업실 오픈 페스티벌' 사업의 하나인 <옆집에 사는 예술가>라고 했다. 곧 예술가들의 창작실을 일반인에게 오픈하여 예술가들의 일상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공유하며 서로 간 친밀감을 두텁게 하는 행사였다.

 '바보숲 명상농원' 뒷산 시화총림으로 나무들이 시를 안고 있다.
'바보숲 명상농원' 뒷산 시화총림으로 나무들이 시를 안고 있다. ⓒ 박도

시를 안은 나무들

'바보숲 명상농원'의 주인장 홍일선 시인은 1950년 경기도 동탄에서 태어나 1980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이후 <시와 경제> 동인으로, '자유실천 문인협회' 간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한국작가회의' 이사,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을 맡은 중견시인이다. 

홍 시인은 2004년 여주 여강 강변으로 이주한 뒤 한 농사꾼 시인으로 살고 있다. 2007년  조류독감으로 이상권 후배가 애써 기르던 닭 다섯 마리를 차마 살처분할 수 없어 이 농장으로 피신시킨 게 인연으로 오늘의 '바보숲 명상농원'을 이루게 된 거다. 그는 현재 7백 여 수의 닭님과 10여 마리의 오리님, 네 견공, 그리고 세 살 난 나귀 '다정'이, 부인, 아들 등과 함께 공생공락하는 대식구 농사꾼으로 살고 있다(관련 기사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닭님들의 이야기).

이날 오신 손님들은 바보숲 농원을 둘러보는 일과 행사장에 마련된 걸개용 시화를 그리는 일로 저마다 일필휘지를 휘둘렀다. 신경림 시인은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곧 '물이 아무리 세차게 흐른들 물속에 달을 흐르게 할 수 없다'는 깊은 뜻이 담긴 글귀를, 구중서 선생은 '불우국비시야(不憂國非詩也)' 곧 '나라를 근심치 않으면 시가 아니다'라는 다산 선생의 가르침을, 현기영 선생은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로 곧 '사나운 광풍은 억센 풀을 안다'라는 지조와 격조 높은 뜻을 경계하는 글귀를 쓰셨다.

 문인들이 당신이 쓴 걸개를 보고 웃고 있다(오른쪽부터 앞열 이은봉, 신경림 시인, 구중서 평론가, 주인장 홍일선 시인, 뒷열에 윤일균, 이승철 시인 등이 보인다).
문인들이 당신이 쓴 걸개를 보고 웃고 있다(오른쪽부터 앞열 이은봉, 신경림 시인, 구중서 평론가, 주인장 홍일선 시인, 뒷열에 윤일균, 이승철 시인 등이 보인다). ⓒ 박도

 현기영 소설가의 일필휘지(질풍지경초; 사나운 광풍은 억센 풀을 안다).
현기영 소설가의 일필휘지(질풍지경초; 사나운 광풍은 억센 풀을 안다). ⓒ 박도
 이날 손님으로 참여한 예비문인들의 걸개 시들.
이날 손님으로 참여한 예비문인들의 걸개 시들. ⓒ 박도

후배들이 나에게도 붓을 주기에 한글 졸필로 '세상은 살 만한 곳,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라는 글귀를 썼다. 언저리 구경꾼들이 그 사연을 묻기에 내가 이대부고 교단에 있을 때 한 남학생이 예쁜 여학생을 제쳐두고, 가난한 지체 장애여학생의 손과 발로 헌신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쓴 글귀였다고 하자, 모두 글(글씨는 아니고)이 좋다고 그 남학생의 순정에 감동하면서 스마트폰에 담았다. 그러면서 그다음 얘기가 어떻게 되었느냐는 묻기에 그 남학생은 신부가 되었을 거라고 하자 '역시나!'를 연발했다(관련 기사 : 세상은 살 만한 곳).

홍 시인은 그날 손님들에게 당신들이 쓴 시화걸개를 들게 하여 뒷산으로 안내한 뒤 나무에 묶게 했다. 그곳은 '시화총림(詩話叢林)'으로, 이미 많은 나무는 시화걸개를 안고 있었다. 시인의 뒷산 나무는 예사나무와 달리 시를 안은 채 살고 있었다.

 국악인 곽한나씨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풍년을 기원하는 '경풍연'을 연주하고 있다.
국악인 곽한나씨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풍년을 기원하는 '경풍연'을 연주하고 있다. ⓒ 박도

여인, 소를 타고 피리를 불다

그날 일기예보처럼 잠시 해를 보이더니 곧 다시 비를 뿌렸다. 그런데도 그런 날씨가 밉지 않았다. 인생사나 세상사는 모두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마도 올해 내도록 가뭄이 심했던 탓이었을 게다.

날씨 탓으로 평소보다 훨씬 일찍 어둠이 깃들고 있는데, 그제야 한 손님이 소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수원 근교의 정연채 농사꾼으로 그날 자기의 소를 트럭에 싣고 광화문 민중궐기대회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으나, 친절한 경찰의 안내로 집회장에는 끝내 참석치 못한 채 이곳으로 와서 당신 소를 타고 나타난 거다. 경찰차는 그곳에까지 따라왔다.

지난날에는 매우 흔했지만 요즘은 소를 탄 사람을 본 일이 없는지라 농사꾼 정씨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소를 탔다.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고 '양양'이라는 이름의 암소는 순하게도 화를 내지 않고 원하는 사람 모두 자기 등에 태워주었다.

사실 나는 초·중학교 때 소를 자주 탔다. 목동으로 소를 치고자 낙동강 둑이나 금오산 기슭에 갈 때면 으레 소를 타고 가기 마련이었다. 그 시절을 되새김질하자 나도 소를 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 마침 국악인 곽한나(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 정악 소지자)씨가 소를 타고 '경풍연'이라는 풍년을 기원하는 곡을 멋들어지게 피리로 불었다. 참 보기 쉽지 않은 색다른 구경을 하면서 대리 만족했다.

잔칫날엔 주인 모르게 떠나는 게 아름다운 법이다. 그래서 생긴 속담이 '손은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다'다. 마침 주인장 홍 시인이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틈에 슬그머니 바보숲 명상농원을 벗어났다. 그런데 어느새 정용국 아우가 자기 차 키를 들고 달려왔다.

"선배님! 제가 한 잔을 했기에 멀리 가지 못하고 점동면사무소까지만 모셔다 드리지요."

하기는 그곳 도리마을버스는 여주에서 하루에 너덧 번 다니는데, 나는 시간도 모른 채 대책 없이 떠나온 터라 그의 호의가 몹시 반가웠다.

 '바보숲 명상농원'의 닭님들이 산에서 먹이를 찾아 먹고 있다.
'바보숲 명상농원'의 닭님들이 산에서 먹이를 찾아 먹고 있다. ⓒ 박도

'후생가외(後生可畏)'

나는 점동면 정류장에 이른 뒤 차 삯 대신에 그 후배의 얼굴을 껴안았다. 그는 내가 참 좋아하는 후배다. 일찍이 공자가 말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여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후 5시 35분 원주행 차를 6시 넘은 뒤에야 탔다. 버스 기사는 늦었다는 사과 대신 '주말인 데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이라 학부모들이 수험생을 태우고 쏟아져 나온 탓'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새 어둠에다 짙은 안개로 바깥은 먹빛으로 컴컴했다.

온종일 좋은 사람을 만나고, 맛난 음식을 먹고, 별난 구경을 했다. 이만하면 늘그막 내 인생이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 자위를 하면서 아내가 지키고 있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홍일선#예술가작업실 오픈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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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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