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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을 비롯한 가장 악랄한 일본 관리들과 친일파를 암살을 하는 일을 지휘했다는 김원봉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지난날 남한에서는 월북한 빨갱이로 비난 받았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수상에게 반기를 든 반동분자와 국제간첩으로 지목되어 숙청됐다. 그리하여 광복 70년 동안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잊혔다. 김원봉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약산과 의열단>(깊은샘 펴냄)은 이처럼 잊혔던, 아니 의열단 혹은 월북인사 정도로 알려졌다가, 올해 개봉한 영화 <암살>을 통해 대중에게 그 존재가 부각된 약산 김원봉을 조명하는 책이다.

가난한 집 꼬마에서 최고 현상금 수배자로

 <약산과 의열단> 책표지.
<약산과 의열단> 책표지. ⓒ 깊은샘 출판사
김원봉은 1898년 밀양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꼬마 때부터 동네서당을 다녔다고 한다. 그런 소년은 훗날 일제가 가장 큰 액수의 현상금인 100만 원(오늘날 320억 원 가량)을 내건 인물이 됐다. 일제가 잡으려고 혈안이 될 만큼 그는 우리 독립역사 상 중요한 독립운동가였다. 독립운동가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그가 다니던 동화중학이 폐쇄되면서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당시 12세였던 김원봉은 애국지사 전홍표가 교장으로 부임해  있던 동화중학에 다녔다. 그는 틈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나라 잃은 분개를 표현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키곤 했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배일 감정을 심어주는 교장이 일본의 표적이 됐음은 물론이다.

눈엣가시인 전홍표와 학교를 핍박할 구실을 찾던 일제는 학교가 재단법인이 아니라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폐쇄 명령을 내린다. 이에 김원봉은 10일 동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당시로서는 큰 돈인 80원을 모아 교장에게 내밀며 새로운 학교 설립을 애원했다. 그만큼 적극적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행동을 아끼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1921년 9월 12일 오전 10시 10분 경 서울 왜성부 조선총독부 청사 2층에 있는 회계과와 비서과에 각 한 개씩 폭탄을 던져 비서과의 것은 불발이었으나 회계과의 것은 굉연한 음향과 함께 폭발되어 그 일부가 파괴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이로 하여 전 경성은 크게 진동하고 왜적은 헌병과 경찰을 총동원하여 각처에 비상선을 늘이고 범인을 체포하기에 눈들이 벌갰다. (중략) 수사망은 단지 경성에만 늘어진 것이 아니다. 왜적은 또 한편으로 범인이 멀리 해외로 도타할 것을 방지하여 국경을 엄중 봉쇄하고 정거장마다 정탐의 무리를 배치하여 놓았다. 그렇건만 그 뒤로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한 달이 다시 두 달 석 달이 되도록, 그들은 범인은 차치물론(일단 놔두고 거론하지 않음)하고, 이 사건의 단서조차 얻지 못하였다.

(중략) 이 사건의 진상은 마침내 해가 바뀌어 그 이듬해 3월에 중국 상해 황포탄에서 일본의 유명한 군국주의자 육군대장 전종의일(다나카 가이치)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전연 오리무중에 있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폭탄사건의 주인공은 의열단원 김익상이다." - <약산과 의열단>에서.

무력(無力)투쟁인 3·1운동이 일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는커녕 도리어 일제가 조선과 조선인들을 더욱 핍박하는 계기와 수단이 되는 것을 본 김원봉은 "무력투쟁으로는 일본의 힘을 절대 약화시킬 수 없다, 좀 더 적극적인 투쟁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1919년 12월 '의열단(모두 13명)'을 조직, 1925년까지 7년 동안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한다.

영화 <암살>에서는 강인국(이경영 분)같은 친일 매국노를 암살하는 것 정도로만 묘사되었지만, 김원봉이 이끌었던 의열단은 '마땅히 죽여야 할 대상', 이른바 '7가살'과 '5곳의 파괴 대상'을 정해놓고 암살과 폭파를 결행한다.

'7가살'은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의 수뇌, 대만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왜적의 밀정, 반민족 토호열신(악덕 지방유지)이다. 그리고 '5곳의 파괴 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의 중요 기관들이다.

"나는 이 작은 책자 속에서 젊은 시절의 약산 선생과 선생이 영도하던 '의열단'에 관하여 되도록 상세히 기록하였다. 우선 의열단을 위한 기록으로는 이만한 정도로 족하지나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선생을 위하여서는 실로 그의 투쟁사의 첫 한 페이지에 불과한 것이다.

선생은 결코 한갓 과거의 혁명투사로서만 기록에 남을 인물이 아니다. 나이 20에 이미 40장년의 식견과 노성함을 갖추었던 선생은 장구한 기간 허다한 투쟁을 열력하고 난 50당년 오늘날에 있어서도 오히려 30청년의 기개와 정열을 상실치 않고 있는 것이다.(중략)

나는 이 기록을 위하여 가능한 한도에서 당시의 신문기사를 참조하였고, 더 많이 선생 자신의 기억력에 의거하였다. 선생이 지금은 이미 없는 옛 동지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 때, 나는 그들에 대한 선생의 뜨거운 애정을 내 자신 가슴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구경 나의 이 적은 기록은 선생이 옛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 생겨난 것이다." - <약산과 의열단> 후기 중에서.

김원봉은 1948년 남북협상에 참여한 뒤 북한에 남는다. 그 여파로 친동생 4명과 사촌동생 5명이 보도연맹으로 죽임을 당하고, 부친은 외딴 곳에 유폐되었다가 굶어죽었다고 한다. 북한정부 수립에 참여한 그는 북한에서 고위직을 수행한다. 그러나 김일성의 정책에 반대하고, 스위스 같은 중립체제를 제의한 이유 등으로 1958년에 국제간첩 혐의로 숙청된다. 사형을 당하기 전 자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김원봉의 구술을 받아 완성한 책

이 책 <약산과 의열단>은 여러모로 의미와 가치가 남다른 기록이다. 1947년 무렵 당대 최고의 작가였다는 박태원이 의열단 단원 유자명이 쓴 <의열단간사(義烈團簡史)>와 '수삼동지'라고만 기록된 인물이 쓴 <단간령묵>, 근근이 보존되어있던 의열단 단원들의 편지를 참고했다. 또한 일본 경찰의 검거 작전 상황이나 재판 등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기사 역시 참조 문헌이었다. 거기에 월북 직전의 김원봉의 구술을 받아 완성한 책이다.

때문에 책 중간중간에 김원봉의 회고가 보인다. 책의 상당 부분이 의열단을 이끌며 우리 민족을 핍박한 사람들을 암살하고, 그들의 본거지 건물을 폭파하는 걸 지휘한 당사자인 김원봉의 구술을 바탕으로 했다. 이만큼 의열단에 관한 기록으로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의열단 자료는 위에 언급한 책과 책에 소개된 기사들 정도뿐, 거의 없다고 한다.

김원봉보다 11년 늦게 태어났으나 동시대를 살았던 박태원 1920년 3월의 '제1차 암살 파괴계획'부터 1926년 12월의 식산 은행 파괴 작전까지, 의열단의 크고 작은 암살 파괴 작전들과 관련 재판 상황 등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암살>의 절정에 해당하는 결혼식날의 정황들을 위에 인용한 조선총독부 파괴 작전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조선총독부 폭파사건은 흥미로웠다. 이뿐이랴. 사실상 책을 통해 접하는 의열단의 투쟁 하나하나는 영화처럼 긴장되고 흥미롭다.

참고로 저자 박태원은 1926년부터 작품 활동을 했다. 1933년에 이태준·정지용·김기림 등으로 구성된 구인회에 이상과 함께 가담해 활동했다. 6·25 전쟁 중 월북해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남로당 계열로 몰려 작품 활동이 금지되는 파란을 겪기도 했으나, 1960년에 복위해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했다. 이 책으로 그는 북한 최고의 역사 소설가라는 호칭까지 받았다고 한다. 월북 전에 쓴 <성탄제>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이 특히 많이 알려져 있다.

저자가 책의 후기를 쓴 것은 1947년 5월. 워낙 오래 전에 쓴 글이라 이해가 쉽지 않은 단어와 문장들이 제법 나온다. 오랜 세월 묻혔던 김원봉과 의열단의 독립투쟁은 물론 당시 사람들이 주로 썼던 단어나 표현들을 만나는 재미도 남달랐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약산과 의열단> | 박태원 지음 | 깊은샘 펴냄 | 2015-10-12 | 1만 2000원



약산과 의열단 - 김원봉의 항일 투쟁 암살 보고서

박태원 지음, 깊은샘(2015)


#김원봉(약산)#의열단#박태원(소설가)#7가살#암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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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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