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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지도부 회동에서 여야 지도부를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지도부 회동에서 여야 지도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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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역풍이 '태풍'으로 변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180석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던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의 말이 채 식기도 전인데 수도권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노골적으로 당 지도부와 청와대 입장에 반기를 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결과는 '충청권'에서 나왔다. 지역별로 봤을 때, 지난주 가장 높았던 국정교과서 지지 여론이 일주일 새 폭락했다. 이번에는 충청권 의원들이 나설 차례인가.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23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정부의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응답자의 36%는 찬성, 47%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일주일 전 42%로 똑같았던 찬성과 반대 입장이 크게 뒤바뀐 것이다. 일주일 사이 찬성 입장은 6%p 감소했다. 반대 입장은 5%p 증가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도 하락했다. 지난주 43%였던 지지율은 이번주 42%로 소폭 하락, '잘못하고 있다'는 여론은 3%p 증가한 47%를 기록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의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당내 '공천'도 중요하지만 선거를 치러야 하는 이 지역 의원들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의견이 지난주 대비 4%p 감소한 34%, 반대 의견은 8%p 증가한 53%였다. 인천·경기도 비슷했다. 찬성 의견이 지난주 대비 8%p 감소한 35%, 반대 의견은 2%p 증가한 48%였다.

가장 극적인 여론 변화를 보인 지역은 '충청'이다. 지난주 충청은 국정교과서 '찬성' 여론이 지역별 최고인 50%로 영남권 보다 높았다. 일주일 새 찬성 여론은 무려 15%p 폭락한 35%, 반대 여론은 11%p 증가한 46%를 기록했다. 한 주 동안에 무려 25%p 여론이 '악화'된 것이다.

이 지역의 박 대통령 지지율도 동일하게 폭락했다. 이번주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일등공신이 바로 '충청'이었다. 이 지역에서 지난주 54%를 기록한 대통령 지지는 이번 주 10%p 하락한 44%를 기록, 부정적 의견은 지난주 대비 7%p 증가한 42%를 기록했다. 역시 한 주 동안 17%p 여론이 악화된 것이다(20~22일 전국 성인 1010명 대상, 응답률 18%,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5자회동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특이한 행동 두 가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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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는 데 정쟁을 주도했고, 지금도 한 가운데 서 있는 박 대통령의 국정교과서에 대한 태도는 '확신범'에 가깝다.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5자회동이 열렸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및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특이한 행동 두 가지를 했다.

먼저, 회담 내용 '기록' 방식을 놓고 야당과 청와대가 대립했다. 처음 야당의 대변인 배석 문제를 놓고 청와대에서는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회담 자체를 깰 수 없었던 야당에서는 대변인 없이 진행하되 휴대전화로 '녹음'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이 역시 '불가' 입장을 밝혔다는 후문이다. 야당 입장에서 보면 정확한 '기록'과 '녹음'을 통한 회의내용 전달이 아닌 '기억'에 의한 전달을 강요당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전체적으로 큰 그림으로 국민들한테 전해주면 되는 거지, 뭘 한 자 한 자 적으려고 그러느냐"라면서 야당의 기록과 녹음을 만류했다고 한다. 이날 5자 회동에서 배석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청와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현기환 정무수석이 배석했다. 야당은 청와대에서 남긴 기록이라도 복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것은 더더욱 안 된다"였다.

이날 회동은 청와대-여당-야당 이렇게 3주체가 했지만 야당은 박 대통령 표현처럼 '큰 그림'만 얘기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사안으로 대통령을 비판한다면 청와대에서 "배석자의 정확한 기록에 따르면 야당의 공격은 잘못된 기억에 기인한다"며 역공에 나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야당은 왜 이런 회담에 응했는지 의문이다. 이날 5자회동을 정리하면 기록의 독점을 통한 '발표의 독점' 효과를 박 대통령은 거뒀다.

두 번째 주목할 장면은 108분간의 5자회동 마치고 악수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이종걸 원내대표와 악수를 나누면서 "아까 뵈니까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잘하시는데 왜 저보고 '그년' '저년'이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대표에게 '그년, 저년'이란 표현을 쓴 것도 놀랍지만 이 말이 전달되는 과정을 보면 더욱 놀랍다.

마음 속 앙금으로 남은 3년 전 일에 대해 상대방을 만나자마자 꺼낸 것도 아니고, 108분의 긴 회동을 마치고 헤어짐의 악수를 나누는 자리에서 불쑥 꺼낸 것이다. '그년, 저년'은 이 대표 앞에 서서 우연히 떠오른 기억에 의해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반드시 꺼낼 목적으로 전달할 시점을 고민해서 나온 것인가.

이번 5자회동은 '국정 교과서식'으로 발표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식의 회동은 계속 있었다. 회동이 끝난 뒤에는 청와대-여당-야당이 각각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찾아서 보도하고는 했다. 구분하자면 회동내용 서술방식이 검정제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번 5자회동은 '단일 교과서' 방식이었다.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것만 정확하다. 야당은 배석자에 의한 '기록'도 '녹음'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동은 같이 했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발표'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국정의 무게감 있는 파트너인 제1야당과의 회동도 '국정'으로 기록됐기에 청와대에 의해 기록된 즉, '국정' 발표만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제1야당에 대한 기록도 이럴진대 이름 없는 일반 국민, 그것도 학생들이 보게 될 '국정 교과서'는 과연 어떻게 기술될 것인가.

'국정 교과서는 과거의 대안'... 발 빼는 <조선>

"검정 제도 활용해 풀어야"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국정화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0월 24일자. 같은 날 이 신문은 '국정화'에 대한 우려를 담은 논설고문 칼럼을 게재했다.
▲ "검정 제도 활용해 풀어야"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국정화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0월 24일자. 같은 날 이 신문은 '국정화'에 대한 우려를 담은 논설고문 칼럼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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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에게 세련되게 후퇴할 기회는 있었다. 5자회동에서 야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불가' 제안을 통 크게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양새가 싫었다면 야당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의 명분으로 정부의 중요과제를 통 크게 받으라고 제안하면 됐다. 양쪽이 '윈-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악화되는 여론에 맞서 힘겹게 고군분투하는 박 대통령에게 <조선>이 강펀치를 날렸다. 10월 24일치 지면을 보면 1면 기사로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제목은 "올바른 교과서 뜻 좋지만, 국정화는 무리"였다. 8면으로 이어진 인터뷰는 국정화가 아닌 '검인정 제도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뿐 아니다. 이 신문사 논설고문의 칼럼도 '말리는 시누이' 역할을 자임했다.

'교과서, 천천히 서두르라' 제목의 칼럼 앞부분에서는 검정 교과서의 폐단을 비판하는 듯 했다. 반전은 "역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바꾸면 이 모든 해악(害惡)에서 벗어날 길이 열릴까"에서 시작된다. 칼럼은 "교학사 교과서의 참패(慘敗)가 불과 몇 해 전이다, 국정(國定)은 과거의 대안(代案)이었다, 지금도 대안일 수 있을까, 쫓기 듯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정교과서 이슈는 메가톤급이다. 명확한 대립구도가 정립된 여야정쟁의 이슈가 분명하나 여론은 분명해 보인다. 역풍이 감지되더니 어느 순간 '태풍'으로 변질됐다. 수도권발 태풍은 충청권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규모로 커졌다. 여론의 반전을 의식한 보수언론의 태도 변화도 주목할 수준이다.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반대여론에 맞서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오판인가, 오만인가.

지난 22일 5자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져 (모든 교과서가) 결국은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든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말했다고 한다'라고 기술할 수밖에 없다. 기록과 녹음 즉, 이날의 모든 자료는 청와대가 '국정'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확인해주지 않으면 재인용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위 발언에서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현행 역사교과서는 '검정제'다. 자유출판제가 아니다. 지난 2013년 9개 출판사에서 고교 한국사 검정을 신청했다. 1곳이 검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유명한 '교학사' 교과서를 비롯한 8개가 통과됐다. 검정은 누가했나.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차관급)에서 검정심의위원을 구성해 진행했다. 국가에서 한 것이다.

80% 집필진이 쓴 역사라면 '편향성'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역사'다. 교과서의 편향성이 걱정된다면 제도적으로 검정을 강화하면 충분했다. 검정 관련된 권한은 행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건너뛰고 '국정 교과서'만 외치고 있는 박 대통령은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국정교과서#5자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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