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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그러니까 너는,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누군가의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건 그와 특별한 관계 맺는다는 말이겠죠. 우리를 마음 아프고, 슬프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는 사람들이기에,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라는 말일 겁니다.

우리 국민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는 존재가 북한입니다. 앞의 특별한 의미와 좀 다른 점은 북한은 우리에게 슬픔보다는 주로 울화통이 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선전포고까지 해가며 관계의 갈등이 고조된 바 있죠.

북한은 왜 우리에게 슬픔이 되지 않을까요? 북한은 우리에게 슬픔이 되지 않고, 종종 울화통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북한을 동등한 관계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비유하자면, 그동안 참고 참으며 돌봐준 아버지와 이런 아버지에게 대드는 버릇없는 탕아의 관계로 보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오랜 시간 설득에도 집에 돌아오진 탕아에게 아버지는 신뢰를 버린 지 오래입니다. 대북 불신은 대북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아래 표는 한국갤럽에서 지난 8월 25~27일 사이에 실시한 휴대전화 RDD 여론조사 결과(표본 규모는 전국 1004명으로 오차 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입니다.

북한의 남북 합의 내용 준수 신뢰도 갤럽의 여론조사
▲ 북한의 남북 합의 내용 준수 신뢰도 갤럽의 여론조사
ⓒ 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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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버릇이 없고 믿을 수 없어도 하늘이 맺어준 부자의 연을 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연을 끊는 순간 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약간 있습니다.

버릇없는 탕아를 잘 다루는 것은 부자관계가 파탄에 이르지 않을 정도의 시혜를 베풀면서도, 감히 대들지 않을 정도로 회초리도 들 줄 아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바로 '상호주의'나 '강경주의'입니다. 국민 다수가 그간 일관되게 남북 관계에서 바라는 것입니다.

이번 협상에서도 국민이 주목한 것은 '우리 측의 대북방송 중단'보다는 '북한의 지뢰 유감표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잘 대응한 회담인 것입니다.

남북 합의 내용 중 가장 큰 성과 갤럽 여론 조사
▲ 남북 합의 내용 중 가장 큰 성과 갤럽 여론 조사
ⓒ 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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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게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는 상황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남북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결국은 현실적으로 남한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남한의 주도적 역할은 지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처럼 어쩔 수 없이 북한의 팽과 '왜 늘 우리만'이라는 국민의 자존심 상하는 소리를 각오한 주도적 설득, 주도적 양보, 주도적 인내가 때때로 필요합니다. 위정자들이 지지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이것을 감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비극이 있습니다.

대북 강경책으로 빙하기가 오래 지속되어온 지금의 남북 관계에서는 북한이 계속 우리 국민에게 울화통이 되는 정도가 많아질수록 울화통에도 애써 무뎌질 수 있는 국민의 감정적 역치가 높아질수록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도 엿볼 수 있을 것인데요.

대외 정책이라는 면에서 상호주의나 강경책 만큼 취하기 쉽고, 국정 지지도 견인 효과도, 확실한 대북 정책이 없다는 것이 위정자에게는 당장에 뿌리치기 힘든 유혹입니다.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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