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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농사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하얀 종이에 붓질을 하는 것처럼, 농사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지어야 하거든요. 정성을 다해서 정직하게. 돈은 그 다음의 문제죠. 난 그림을 그리지만 혼을 팔지는 않았어요. 농사도 그렇게 짓고 있고요."

 

전남 화순에서 그림을 그리며 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숙(78)씨의 말이다. 그림을 그리되 상업성을 띠지 않았고, 농사도 정직을 최우선으로 삼아서 짓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화순군 능주면 만인리에서 비가림하우스 4000㎡에 포도를 재배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 1일 그를 만났다.

 

김씨의 포도 재배방식은 독특하다. 화선지에 그림 한 점을 그리는 것처럼 포도나무 가지 하나에 포도 한 송이만 키우고 있다. 포도를 튼실하게 만들기 위한 농사법이다. 물론 제초제 한 방울, 화학비료 한 줌 쓰지 않았다. 땅에 부직포를 깔기 전에 풀을 베고, 부직포 사이를 비집고 나온 풀을 다시 벴다.

 

땅에는 천연의 액비를 뿌려 영양을 공급해준다. 수확도 알알이 제대로 맛이 든 다음에 한다. 당도가 더 높다. 그만의 독창적인 농사법이다. 맛을 본 소비자들이 그의 농사방식을 인정해 준다. 그의 포도 수확을 기다리는 소비자들까지 생겼다.

 


 

"포도를 재배하기 전에 선진 농가를 찾아다녔어요. 거기서 재배기술을 익히고 저만의 농사법을 만든 거죠. 면적이 그리 넓지 않지만, 일 년에 열 달은 여기에 매어 살아요. 포도가 일손이 많이 가는 과수거든요. 땅은 정직하더라고요. 일한 만큼 보람을 가져다 줘요. 더 빼지도, 보태지도 않고요."

 

농사일은 오롯이 혼자서 한다. 아내는 몸이 좋지 않고, 아들은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다. 그가 재배하는 포도는 캠벨얼리와 머루포도. 청포도와 적포도도 일부 있다. 수확은 9월에 시작했다. 판로는 가까운 농협 하나로마트와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부러 나서지 않지만, 소문을 듣고 주문해 오는 사람에게는 택배로도 보내준다. 건강한 포도로 즙도 낸다.

 

"농사짓는 거나, 그림 그리는 거나 똑같더라고요. 손에 농기계를 잡았냐, 붓을 들었냐의 차이일 뿐. 노력과 땀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점에서요. 농사와 그림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아요."

 


 


김씨는 한국화단에서도 독창적인 화법으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전공은 시(詩)와 서(書), 화(畵)가 어우러지는 문인화. 그의 '그림인생'은 더디 출발됐다.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던 1970년대 중반 연진회 미술원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연진회는 의재 허백련 선생의 제자들이 세운 미술원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군 복무를 마치고 광주의 한 극장에서 간판 그리는 일을 했고요. 상업미술도 잠깐 했죠. 경찰에선 전산업무를 봤어요. 내근 경찰이었죠. 낮에는 일하고 밤에 연진회 미술원에 다녔어요."

 

30대 후반에 그림을 시작한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그렸다. 그림은 혼자서 주로 그렸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덕분에 그만의 화풍을 빠르게 만들어갈 수 있었다. 짧은 기간에 한국화단의 중견작가로 우뚝 선 이유다. 경찰에서는 30년 동안 일하고 1998년에 퇴직했다.

 

김씨는 화단에서 '둔전(屯田)'으로 통한다. 둔전은 그의 고향, 여수 돌산도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미술 스승 없이 혼자서 그림을 그린 탓에 호(號)도 직접 붙였다. 지금은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 전남미술대전, 광주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상전, 한국문인화협회, 대한문인화협회의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과 전남미술대전, 광주미술대전의 심사위원과 운영위원도 맡고 있다.

 


 


김씨는 지금껏 개인전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돈을 목적으로 전시를 한다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언젠가는 한 번쯤 열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대신, 그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관공서, 음식점 등에 그림을 기증했다. 그림으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서다.

 

"그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전업작가가 아니고요.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거기서 만족을 얻는 거죠. 언제까지 계속할지 모르지만, 하는 동안은 그렇게 하려고요."

 

팔순이 다 된 김씨가 환하게 웃는다. 그 얼굴에서 천진함이 묻어난다. 포도밭에서 화실로, 다시 화실에서 포도밭으로 가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인다. 농사도, 그림도 재미를 갖고 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숙#둔전#둔전포도원#둔전화실#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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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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