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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 ⓒ 권우성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한 국회의 '고육지책'은 통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 15일 오후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다시 시사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정을 마비시키고 정부를 무기력화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이 곧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 원칙'을 위배한 것이란 주장이었다.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유승민·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 중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해 정부로 이송했다. 청와대에서 문제 삼은 강제성 논란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한 글자만 고쳤던데 그러면 우리 입장이 달라질 게 없다"라고 말했다.

즉,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와 협의해 내놓은 '중재안'도 여전히 삼권분립 원칙을 어긴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는 평가였다.

민 대변인은 "거부권 행사 방침이 결정된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저희 입장은 바뀐 바 없다고 말했다"라고 답했다.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냐"는 질문 역시 "아니다. 저희들의 입장이 있었는데 바뀐 게 없다"라고 말했다. 모두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는 답변이다.

청와대가 국회의 파행을 부를 거부권 행사 대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향을 택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다른 대응책에 관련해서는 준비된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결정하지 않은 것은 '시기' 뿐이었다. 민 대변인은 "그렇다면 거부권 행사 시점만 문제일 뿐이란 말인가"란 질문에는 "그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라고 답했다.

애써 중재안 도출한 국회만 머쓱... 새누리당 '고심' 깊어질 듯

이처럼 청와대가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국회만 곤란해진 상황이다.

특히 중재안을 도출해냈던 여권 인사들도 머쓱해졌다. 이들은 이 정도까지 했으면 청와대도 수용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다. 정 의장은 지난 15일 중재안의 정부 이송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으로서는 중재안을 가지고 위헌성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재의를 요청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행정부와 국회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이 없기를 바란다"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희망'은 청와대에 닿지 못했다.

거부권 행사 시 닥칠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당장, 새정치연합은 거부권 행사로 국회법 개정안이 되돌아오면 곧장 본회의에 상정해 재의결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의원총회에서 "정 의장에게 공식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과 함께 거부권 행사 시 국회 부의 및 재의결을 통해 국회의 뜻을 관철시키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할 것"이라며 "저에게는 (그렇게 하겠다는) 개인적 확답은 이미 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상황은 미묘하다. 이미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두고 유 원내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등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계파 갈등이 점화됐던 상황. 재의결 절차를 밟는다면 '청와대-친박' 대(對) '비박-야당'의 구도로 표가 나눠지면서 여권 모두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되는 그림이 만들어질 수 있다. 재의결 절차를 포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청와대 거수기'란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데다 국회 운영에 있어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오는 30일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론 내야 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재의요구 이유서 등 검토시간을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이 오는 23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제헌 국회 이후 대통령의 역대 73번째 거부권 행사 사례가 될 예정이다.


#국회법 개정안#박근혜#대통령 거부권 행사#정의화#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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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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