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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10대 낙원'으로 꼽은 '토레스 델 파이네'가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 3대 트레일 가운데 하나로도 꼽히죠. 또한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여행지였습니다. 이 두 곳이 내가 남미 여행을 떠난 이유였죠. 잊을 수 없는 남미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 말

 칠레 여행
 칠레 여행
ⓒ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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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칠레의 작은 마을 '푸콘'(Pucon)으로 향했다. 바릴로체→오소르노(Osorno)→푸콘은 11시간 거리. 버스 가격은 180페소.

버스가 바릴로체를 벗어나 슬슬 오르막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바릴로체→칠레 국경 구간은 그림 같은 절경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출발부터 기대가 큰 여정이었다. 창밖으로 바릴로체 산군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차를 타고 있었으면 꼭 스위스 어디쯤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풍광이 계속됐다. 아기자기한 집들이 긴 버스여행의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바릴로체에서 얼마 멀지 않은 아르헨티나 출입국(이미그레이션)에 내려 간단히 출국 수속을 밟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국경을 넘자마자 칠레 출입국이 나왔다. 검역관을 통과하고 화산으로 유명한 오소르노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푸콘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쯤.

버스에서 내리자 호스텔 주인들이 여행자 환영식을 준비 중이었다. 외로운 여행길에서 그들의 영혼 없는 환영인사는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지만, 일단 어렵게 숙소를 찾는 수고는 덜 수 있다.

 뿌꼰 시내 전경
 뿌꼰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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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콘은 정보대로 참 아담한 마을이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돌아다녀봤자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았다. 마침 사전에 조사해 놓은 '백패커스'란 숙소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주인아저씨는 여행자 숙소계의 휴머니스트(?)였다. 여행자의 고단한 이동을 102% 이해했는지 터미널 바로 옆 건물에서 호스텔을 운영 중이었다. 이동 거리는 고작 30초. 아니 어쩜 20초. 여행 중 최단 시간 숙소 찾기란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혼자서 2인실을 쓰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격은 하루 6000페소. 당시 환율로 15달러 정도였다.

배낭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스파게티 재료를 사와 와인 한 잔으로 저녁을 먹었다. 5000원짜리 까베르네 쇼비뇽을 집어 들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칠레는 한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나라 중 하나이다. 그 덕에 칠레 와인을 값싸게 즐길 수 있게 됐지만, 현지에 와 보니 여전히 칠레 와인을 얼마나 비싸게 사 마시고 있는지 사리분별이 정확히 됐다.

와인 기운이 돌자 긴장이 풀렸다. 등산화를 신은 채 벌렁 침대에 쓰러졌다.

'휴~'

또 한 번, 작은 등짝을 붙일 수 있는 딱딱한 침대가 내게로 왔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노곤함이 몰려왔다. 감은 눈이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오늘 하루가 어렴풋했다.

[깨알정보] 화산지대 푸콘의 온천 명소

 뿌꼰
 뿌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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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콘은 화산지대에 있어 크고 작은 온천이 많은 게 특징이다.

여행자들에겐 '로스 포소네스'(los Pozones) 온천이 잘 알려져 있는데 푸콘에서 30여km 정도 떨어져 있다. 1만5000페소면 온천 투어를 이용할 수 있는데, 달빛과 별빛을 보면서 노천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고 찾아가면 9000페소 정도에 온천욕을 할 수 있지만, 막차 시간 전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온천 가는 버스는 센트로 버스 정류장에서 하루에 4~5회밖에 운행하지 않는다. 시간 확인은 필수다.

독가스 내뿜는 활화산에 오르다

 뿌꼰
 뿌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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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콘에 온 지 나흘째 아침. '비야리카'(Villarrica : 2847m) 화산 트레킹을 위해 오전 5시 40분쯤 일어나 목욕재계했다. 난생처음 활화산을 대하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로 유명하다. 그러면서 화산의 나라이기도 하다. 칠레에는 3000여 개 정도의 화산이 있고, 비야리카를 포함해 이 중 500개는 분출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비야리카 화산 트레킹은 왕복 7~8시간 정도 걸린다.

화산 트레킹은 으레 능선이 적고 오르막이 대부분이다. 역시 비야리카도 마찬가지 코스였다. 꽤 많은 열량이 필요한 하루였다. 산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매번 먹은 만큼 갈 수 있게 하니 말이다. 새벽 댓바람부터 들어가지 않는 음식을 차곡차곡 위장 안에 챙겨 넣은 후 날씨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음흠…."

하늘은 만성 변비 환자처럼 잔뜩 찌푸려 있었다. 사실 전날 트레킹을 하려고 했지만, 비로 인해 하루를 공친 상황이었다. 뭔가 깔끔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트레킹이 가능하다고 했다.

숙소 앞에 버스가 도착했다. 다른 숙소에서 픽업을 먼저 했는지 버스에는 콜롬비아 커플, 스페인 아주머니 2명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동양인 한 명(중국인으로 추측)이 앉아 있었다. 차에 타고 좀 기다리자, 약속 시각에 늦게 도착한 미안함은 아침 수프와 함께 말아 드신 이스라엘 커플이 함께 차에 올랐다.

 비야리카
 비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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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리카 입구에서 가이드는 리프트 이용권 구입을 위해 7000페소씩을 더 내라고 했다. 타기 싫은 사람은 2시간 정도 더 걸어야 한다며. 거의 반강제나 다름없는 요구였다. 리프트를 타지 않으면 정상까지 7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리프트를 타겠다고 했다. 사전 조사로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트레킹 전에 이런 설명은 없었다. 트레킹 투어비용 3만5000페소+리프트 7000페소면 100달러짜리 투어였다.

리프트에 오르자 발아래로 듬성듬성 녹다 만 눈이 느릿하게 뒷걸음질 쳤다. 스키장을 거슬러 올라가는 리프트는 구름 속에 앉아 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이었다. 날 단박에 실망시켰다. 생각보다 긴 리프트를 타고 내리자 먼저 출발한 다른 팀이 먼발치서 열을 지어 구름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갑자기 본전 생각이 났다. 구름 보자고 100달러나 주고 비야리카를 찾은 건 아닌데, 내 운도 다한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선 투어 비용을 돌려달라며 이스라엘 여행자 버금가는 진상을 떨고 싶었다.

"바모스(Vamos, 갑시다)!"

가이드는 이런 내 기분을 전혀 개의치 않고 힘차게 출발을 알렸다. 자연스럽게 우리 일행들도 열을 지어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 커플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꾸만 가이드를 불러 팀 전체를 멈춰 세웠다. 그 덕에 짧은 주기로 불필요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과도한 여행으로 체력이 바닥을 쳤는지, 이스라엘 커플은 전혀 맥을 못 췄다. 또 국적을 알 수 없는 동양인도 이스라엘 커플과 자연스럽게 그룹을 형성하며, 자신이 거구란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느릿한 가이드를 온전히 따라가고 있는 건, 콜롬비아 커플과 스페인 아줌마 2명 그리고 나뿐이었다. 우리 팀은 시작부터 구름 속처럼 흐리멍덩한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었다. 걱정이 앞섰다.

"헉~ 헉~"

한 시간 정도 산을 오르자 암흑 같은 세상이 차츰 밝아졌다. 언뜻언뜻 구름이 바람에 날리며 하늘을 보여줄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다 희미한 구름 조각이 일순간 바람에 날아 가며 한방에 시야가 열렸다.

 비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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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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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앗!"

실비단 하늘이 쏟아졌다. 발아래로는 우리 팀이 뚫고 올라온 구름이 잔바람에 넘실대며 장관을 연출했다. 운해와 파란 하늘의 경계에서 휴식이 주어졌다. 그리고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 결정도 이때 내려졌다. 정체불명 동양인은 뒤도 안 돌아 보고 하산을 결정했고, 이스라엘 커플은 자기들끼리 트레킹 하겠다고 나섰다.

"바모스!"

가이드는 인원 정리가 되자 다시 출발을 독촉하며 머리 위에 보이는 까마득한 봉우리를 넘어야 진짜 정상이 보인다고 했다. 능선을 타며 고개를 넘을 때마다 시시각각 바뀌는 경치도 없었고, 오르막이 계속되는 단조로운 길이 계속됐다. 여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은 눈길에 계속 미끄러졌다. 오랜만에 허벅지에 알알한 통증이 느껴졌다. 체력 소모가 큰 하루였다.

가이드는 가다 말고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2시간은 더 가야 정상이란 말과 함께. 그래도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며 3시간을 잘 버텨왔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가이드는 쉴 틈 없이 출발을 재촉했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념무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여유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먼저 출발한 팀이 까마득한 거리에서 꼼지락대며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그렇게 2시간 넘게 산을 더 오르자 갑자기 산이 거친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바람은 잔뜩 기분이 상해 이리저리 허공을 갈랐고, 태양은 자외선 강도를 높이며 피부를 태워갔다.

거칠게 몸을 밀치는 바람을 뚫고 막바지 비지땀을 흘리자 거짓말처럼 정상이 코앞에 다가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넣어 넘어갈 듯한 숨을 참으며 마지막 고개를 넘었다.

 비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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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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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흑! 웩! 뭐야 이게!"


등정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매캐한 가스가 콧속 점막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연탄이 한 100개쯤 타고 있는 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고, 분화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뜨아~악' 방독면을 착용한 트레커가 눈에 띄었다.

그 사이 팀원들이 하나, 둘 정상에 도착했다. 그들도 독가스를 들이켰는지 내가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환호성을 질렀다. 화산은 폭죽 대신 모락모락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정상 등극을 축하했다.

분화구 안은 엄청난 연기와 열기로 괴기스러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속에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 보이진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엔 꼭 지옥으로 통하는 문같이 음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멀리 운해 위로 화산들이 하얀 민머리를 내놓고 있었다. 화산 특유의 봉긋 솟은 봉우리가 도열한 주변 경관은 드라마틱했다. 가이드는 주변 산에 관해 설명을 이어갔다. 팀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화산이 많은 나라의 실체를 하나씩 눈에 새겨나갔다.

 비야리카
 비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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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다. 곧이어 등정에 성공한 트레커만 누릴 수 있는 진짜 놀이가 시작됐다.

올라올 때 가져온 플라스틱 썰매를 엉덩이에 대고 직각에 가까운 비탈진 경사 앞에 섰다.

"바모스!"

가이드가 신호를 했다.

구름 속으로 활강을 시작했다.

"야호~오~"

[깨알정보] 진정한 '골목 상권', 발디비아 재래시장

 해산물 시장
 해산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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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만큼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곳도 없다.

세계 일주를 하다보면 해당지역의 대표적 재래시장은 언제나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서민의 생활상과 문화를 볼 수 있는 장소로 이만한 곳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형마트가 골목상권까지 치고 들어오는 우리의 상황은 뭔가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암튼 각설하고 다시 남미로 돌아와, 푸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발디비아'(Valdivia)에 가면 수산물 시장이 있는데 가격이 정말 착하다.

치고받고 흥정을 할 것도 없이 홍합 1kg 1000원, 게 3마리 2000원, 성게 하나 1000원 등 각종 해산물이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어디 그뿐인가 시장 주변으로 바다사자가 한가로이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 또한 놓칠 수 없는 장면이다.

[에필로그] 칠레 출입국 검역 이야기

검역관은 버스에 실려 있는 짐을 모두 꺼내라고 했다.

잘 훈련된 개 한 마리가 가방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살폈다. 승객 모두가 긴장한 눈치였다. 뱃속에 든 것 말고는 날 것 대부분이 넘어갈 수 없는 땅 칠레. 내 배낭 안에는 라면·햇반·참치 캔 등이 들어 있었다. 모두가 밀폐된 포장음식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까다로운 검역으로 소문이 자자한 칠레 국경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킁킁. 킁킁.'

냄새를 맡던 개가 귀여운 앞발 차기로 가방 하나를 툭툭 건드렸다. 개가 지목한 배낭에선 양파 2쪽이 나왔다. '크크크' 배낭 속에서 마약 같은 엄청난 게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고작 양파 쪼가리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론 알뜰한 '여행의 기술'에 내심 존경심이 들었다.

잠시 뒤 치과 의사 앞에서 신경치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배낭을 엑스레이 기계에 넣었다. 검역관은 기계를 빠져나온 내 배낭을 매의 눈과 사자의 발톱으로 낚아챘다. 순간 쭈삣하고 신경이 곤두섰다.

검역관은 여행 중 정말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배낭 뒤집기를 시작했다. 양파 쪼가리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파키스탄 출국 이후 두 번째로 배낭 안에 모든 짐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적나라한 속살이 수십 개의 눈앞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검역관은 짐을 헤집으며 빨간색 포장에 매울 '신'(辛)자가 써진, 그들에게는 도대체 알아먹을 수 없는 봉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면으로 인한 '트라우마'(Trauma)는 세계 일주 1막에 소개된 킬리만자로 트레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이번엔 라면 요리법이 문제가 아니고 아예 압수를 당할 처지였다.

'된장!'

검역관은 거의 가루가 된 채 부스럭거리는 라면이 못 미더운지 봉지를 꼼꼼히 살폈다. 봉지는 고도 때문에 약간 부풀어 있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순간 '빵'하고 터질 같이 위태로운 라면 한 봉지의 운명은 털 많은 검역관 손에 달려 있었다.

그동안 알토란같은 라면 봉지를 고스란히 사수하기 위한 내 노력은 눈물겨웠다. 짐을 꾸릴 때 항상 전자기기 다루듯 배낭 안에서 제일 좋은 곳에 자리를 내주었고, 봉지가 터지는 걸 막으려고 옷가지로 푹신한 쿠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인연을 끝내고 싶진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뱃속에 모셔 두는 건데….'

검역관은 빨간색 봉지를 어찌하지 못하고 옆에 있는 상사에게 조치를 물었다. 상사는 내게 "이게 뭐냐?"고 물었고, 난 "인스턴트 누들"이라며 최대한 공손한 말투와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답했다.

라면을 건네받은 상관은 믿을 '신'(信)이 아니라 매울 신이란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라면 봉지를 재차 흔들었다.

'쓱쓱~ 쓱쓱~'

라면 부스러기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이것들아 고만 흔들어 터진단 말이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올 턱이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검역관은 "인스턴트 누들?"이라며 재차 물었고,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난 "예, 예, 예! 코리안 인스턴트 누들!"이라고 반색하며 답했다.

검역관은 의심의 눈초릴 거두지 못하고 다시 시선을 라면으로 옮겼다. 난 수능 성적표를 기다리는 초조한 심정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패스."

그는 빵빵해진 라면 봉지를 내 옷가지 위에 내려놓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무챠스, 무챠스, 그라시아스!"

난 진심 '레알' 감사를 담은 인사를 난사하며, 입을 벌리고 있는 배낭에 무식하게 짐을 쓸어 넣었다. 다른 걸 트집 잡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패킹을 똑바로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거의 가루가 된 라면 한 봉지를 냉가슴에 끌어안고 국경을 넘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남미여행#칠레여행#화산트레킹#화산#비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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