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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4일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전격 자진 사퇴했다. "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조국 헌신' 운운했으나 실상 주된 낙마 이유는 이중국적 논란과 "미국은 나의 조국"과 같은 '배신적인' 충성 맹세 때문이었다.

김 전 내정자는 자진 사퇴 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 "21세기에 가장 성공하는 국가와 경제는 국적과 관련된 오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썼다. 그런 '유연한' 국가관 때문일까. 장관 임명 직전인 2013년 2월 14일 회복한 대한민국 국적을 정확히 1년 뒤인 2014년 2월 14일에 잃었다. 국적 회복 이후 미국 국적을 1년간 포기하지 않음에 따라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한 것이다.

김 전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인사 난맥상의 대표적인 본보기였다. 특별히 그를 떠올린 까닭이 있다. 그가 내뱉은 '조국'이나 '헌신'과 같은 말이, 최근 자신의 특별한 '나라사랑론'을 보여주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신임검사 임관식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황 후보자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지 못한 검사들에게 "헌법 가치 수호는 나라 사랑에서 출발하고, 나라 사랑의 출발은 애국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목소리를 높여가면서까지 훈계했다니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애국가 완창에서 헌법 가치 수호를 찾는 황 후보자의 '멘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가 트위터에 올린 말을 잠시 빌리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김두식 경북대교수는 <헌법의 풍경>에서 국가에 대한 '사랑 표현'을 강제할 수 없으며, 국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이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김 교수의 논점을 따른다면 황 후보자의 '애국주의'는 우리나라를 '더 나쁜' 나라로 만들 개연성이 높다.

애국이 헌법 가치 수호의 출발점이 된다는 황 후보자의 논리 역시 수긍하기 힘들다. 헌법 제1조는 헌법 가치의 본질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음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규정한 명문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정부나 정권, 최고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그것이다.

황 후보자의 '애국가 완창론'은 유별스럽다. 진심이 의심스러운 이유다. 그렇게 나라사랑을 강조하는 이가 석연치 않아 보이는 이유로 군대를 면제받은 것 역시 그런 의심을 키운다. 그의 군 면제 사유는 만성 두드러기라는 '만성담마진'이 사유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질환으로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징병 검사를 받은 365만 명 중 단 4명이라고 한다. 거의 1백만 명 중 1명 정도가 군 면제를 받는 희귀질환이다. 그는 군 면제를 받은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3년부터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황 후보자는 '공안통', '미스터 국가보안법' 등의 별칭을 얻었다. 그에게는 시국·이념사범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정치․경제 권력 앞에서는 관대하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이런 세평이 맞다면 그를 '권력지향주의자'쯤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권력을 추구하는 이는 그에게 권력의 한 끄트머리를 쥐어주는 대상에게 충성하는 법이다.

이쯤에서 황 후보자가 말하는 '나라 사랑'의 '나라', 국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본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민주공화국의 최고 권력자는 권력의 주인이자 원천인 국민을 존중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게 만드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너무 많다.

4․16 세월호 참사를 떠올려 보자. 많은 이가 국가가 함께 침몰했다고 했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는 어떤가. 자유를 외치는 광주 시민을 국가는 탱크와 총칼로 유린했다. '괴물'이 된 국가의 민낯은 어느 한 시기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6시 30분 창덕궁 비원에서 낚시를 즐기던 이 전 대통령은 경무대 경찰서장 김장흥 총경으로부터 전쟁 발발 소식을 보고받았다. 긴박한 하루를 보내던 이 전 대통령은 서울 사수와 철수를 놓고 무초 주한 미국 대사와 설전을 벌였다.

이 전 대통령은 26일 오후 3시에 피난하기로 공식 결정한다. 공산군 손에 잡히면 나라가 곤란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초는 잡히기 전까지는 서울을 사수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의견을 내세웠다.

그 시각 국회에서도 서울 사수냐 철수냐를 놓고 밤샘 토론이 이어졌다. 서울 사수 결정이 내려졌다. 역시 국민 일반의 '상식'에 맞는 결과였다. 이를 알리기 위해 국회 대표가 경무대를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없었다. 그가 이미 한국전쟁 시 '제1호' 피난민이 된 뒤였기 때문이다.

대전으로 '꽁무니'를 뺀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피난을 가로막는 거짓 연설을 방송했다. 정부에서는 서울시민과 국군을 버리기 위해 한강 다리 5개의 폭파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자식' 국민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주한 '국부'는 여전히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진정한 애국은 애국가 부르기에 있지 않다. 애국가 4절을 부르는 일이 헌법 수호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가칭 '애국가완창법'을 제정해 모든 국민에게 애국자를 완창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음악 수업에서 '애국가 완창' 수행활동을 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그렇게 배운 애국이 진짜 애국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애국인가다. 국가가 '괴물'이 되어 주인인 국민에게 돌진할 때 그에 맞서 싸우는 게 진짜 애국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12․12 쿠데타의 주역 전두환이 자신의 '가짜 애국'을 감추기 위해 '민주'와 '정의'를 부르대며 공수부대를 앞세웠을 때, '폭도'와 '빨갱이'로 몰린 광주의 '애국시민'들 역시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와 '정의'를 외쳤다. 그 뒤 전두환은 내란 및 반란 수괴죄로 사형수가 되었고 애국시민들은 민주화 유공자가 되었다.

역사상 독재자들은 한결같이 애국을 강조했다. 그들이 말하는 애국은 독재를 감추기 위한 '화장발'에 불과했다. 애국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국민들은 독재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애국할 수 있었다. 예컨대 배움의 목적이 국가를 위하는 데 있다고 강변하는 글(국민교육헌장)이나 충성 서약문(국기에 대한 맹세)을 외워야 했다. 국가가 들려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한 손을 가슴에 얹도록 했다.

불과 30~40년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그런 해묵은 풍경이 다시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애국가 부르기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국가주의적 의례들은 여전히 금기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의 시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의 최초 작성자를 모른다. 장담하건대 국가 상징물을 관장하는 정부부처인 안전행정부 담담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68년 충청남도 교육위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설' 정도가 풍문처럼 떠나닌다.

국기에 대한 맹세 문구는 2007년 봉건시대의 맹목적인 충성 서약 같은 내용이 조금 바뀌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이라는 국가상이 전제처럼 덧붙여졌다. 하지만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는 내용은 그대로다.

어떤 대상을 향한 맹세와 다짐은 개인의 양심 영역에 속한다. 미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1892년 9월 미국 보스턴에서 발행되던 잡지 <청소년의 벗> 보급 담당자였던 프랜시스 벨러미가 처음 만들어 보급했다고 한다. 미국 의회가 이를 공식화한 것은 1942년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뒤인 194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국가주의 시대로 볼 수 있는 박정희 유신 정권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어놓았다. 1972년 전남 오사재건교회 주일학교에서 국기 경례가 우상숭배라고 가르친 양영례 교사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아래 관련 사례는 <한겨레 21> 2008년 8월 7일자 "국기에 대한 맹세, 벌써 1년" 참조). 1973년에는 국기 경례를 거부한 김해여고 학생 6명이 학칙 위반으로 제적됐다. 당시 대법원은 제적 조처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2003년 의정부 영석고는 국기 경례를 하지 않겠다는 학생의 입학을 불허했다. 국기에 대한 경계를 거부한 경기 부천 상동고 이용석 교사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는 징계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2007년 수원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유신독재 시절을 벗어난 지 35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시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애국이 아니면 공공연히 '비국민'이나 '비애국자' 같은 취급을 당한다. 애국가 완창을 헌법 가치 수호와 나라 사랑의 증표로 보는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그 극명한 사례가 아닐까.

애국가를 완창하지 못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부를 때부터 "길이 보전하세"라는 마지막 구절을 기다린다. 어서 자리에 앉고 싶어서다. 그렇지만 '양심'에 비추어 보건대 나 자신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 우리나라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도록 나름대로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황 총리 후보자에게 묻고 싶다. 나는 '비애국자'인가.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애국가 완창#국기에 대한 맹세#유신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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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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