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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실크로드 26]  비단길을 따라 온 비단종이 - 사마르칸트 02
▲ [당신에게, 실크로드 26] 비단길을 따라 온 비단종이 - 사마르칸트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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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신 받은 사탕 두 개

"스물네 장, 스물다섯 장, 스물여섯 장..."

돈뭉치를 한참 세어 점원에게 건넸다. 500숨과 사탕 두 개가 내 손으로 돌아왔다. 받아야 할 거스름돈은 600숨이다. 한참 기다리다가 이 사탕 두 개가 서비스가 아니라 100숨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즈베키스탄의 화폐 단위에는 200숨, 500숨, 1000숨, 5000숨이 있다. 200숨짜리를 보이며 '이거 3장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해봤다. 점원 역시 가지고 있는 돈을 보이며 200숨이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흔든다. 한숨을 쉬고 다시 돈뭉치가 든 주머니를 가방 아래로 꼭꼭 숨겼다. 가방이 불룩해졌다.

우즈베키스탄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하다. 보통 100달러를 환전하면, 1000숨 지폐 100장 묶음을 세 뭉치 받았다. 지갑에는 돈뭉치가 안 들어가 화장품 파우치를 지갑 삼아 들고 다녔다. 2013년에 5000숨 신권도 생기긴 했지만 우리나라 5만 원권처럼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편이다.

돈 다발 100달러 환전하면 30,500숨을 받았다. 이게 만원짜리면 얼마나 좋을까
▲ 돈 다발 100달러 환전하면 30,500숨을 받았다. 이게 만원짜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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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셈도 약한데 단위가 커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미 국경을 넘으며 환전 사기를 당했다. 함께 차를 탔던 우즈벡 할머니가 주는 대로 뭉칫돈을 받았는데 나중에 세어 보니 20달러 정도 손해 봤다. 인상 좋은 할머니라고 다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환전 사기가 걱정된다고 은행을 찾을 순 없었다. 은행 환율과 암시장 환율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공식 환전의 경우 1달러에 약 2000숨이지만, 암거래의 경우 약 2800~3000숨까지 받을 수 있다. 시장엔 늘 검은 비닐 봉지나 쇼핑백에 뭉칫돈을 가지고 손님을 기다리는 환전상들이 있다.

한번 환전을 하면 부자가 된 기분이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면 돈뭉치는 금세 줄어든다. 아침에 1000숨 지폐를 세어 10개씩 묶어두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가끔 재미삼아 돈다발로 부채를 만들어 부치곤 했다. 가치가 떨어진 화폐에서 나오는 바람은 뜨뜻미지근 할 뿐이다.

200숨 지폐에 그려진 그림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낮은 지폐 단위는 200숨이다. 이 지폐 뒷면에는 사자 한마리가 그려져 있다. 호랑이 같아 보이지만 다들 사자라고 하니까 사자인가 보다. 사자의 등 뒤로는 사람 얼굴을 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이 지폐의 무늬는 사마르칸트에서 왔다고 한다.

200 숨 지폐 사실 200숨을 쓸 일은 거의 없다. 물 한병 1,000숨, 맥주 한 병 3,500숨, 밥 한 끼(기름 볶음밥과 샐러드) 12,000숨 정도. 1000숨이 약 350원이다.
▲ 200 숨 지폐 사실 200숨을 쓸 일은 거의 없다. 물 한병 1,000숨, 맥주 한 병 3,500숨, 밥 한 끼(기름 볶음밥과 샐러드) 12,000숨 정도. 1000숨이 약 35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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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도시', '동방의 진주'라 불렸던 사마르칸트. 티무르 사후에도 이곳은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고, 레기스탄에서 그 융성한 시절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레기스탄은 'ㄷ'자 형태로 3개의 메드레세(신학교)가 있는 거대한 광장이다. 과거 이곳에선 왕의 알현식과 각종 행사가 열렸고, 이 메드레세들은 천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의 산실이 되었다.

레기스탄  ' 모래의 땅'  이라는 뜻이다.
▲ 레기스탄 ' 모래의 땅' 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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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정면에는 티라카리 메드레세, 서쪽엔 울르그벡 메드레세, 동쪽엔 시르도르 메드레세가 있다. 티라카리 메드레세는 금박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내부로 유명하다. 울르그벡 메드레세는 티무르의 손자 울르그 벡이 지은 학교다. 그는 사마르칸트 동쪽에 세계 최초로 천문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광장 동쪽의 시르도르 메르레세가 바로 이 200숨의 주인공이다. 이 건물의 입구에는 사슴을 쫓는 호랑이 같은 사자와 사람 얼굴을 한 태양이 그려져 있다. 형상이 있는 존재를 묘사하는 것이 금지된 이슬람계 미술로서는 이례적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건축가는 죄책감을 못 이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그림이 훗날 200숨 지폐에 사용된 것이다.

시르도르 메드레세의 장식 사슴을 쫓는 사자(호랑이)가 그려져있고, 그 뒤로 사람 얼굴 모양을 한 태양이 떠오른다.
▲ 시르도르 메드레세의 장식 사슴을 쫓는 사자(호랑이)가 그려져있고, 그 뒤로 사람 얼굴 모양을 한 태양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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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잃은 여행자 

땀이 덧나 목 피부가 벌겋게 일어났다. 한낮의 우즈베키스탄은 40도가 넘는다. 낮에는 숙소에서 수박이나 잘라먹으며 빈둥거리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수심에 가득 찬 짧은 머리의 여성이 보였다. 프랑스에서 온 로리안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프랑스에서 떠나오면서 러시아 항공을 탔는데 짐을 분실했단다. 여행자들 사이에 러시아 항공은 수화물 분실과 무책임한 서비스로 악명 높다.

숙소에서 망중한 여름철 중앙아시아 여행시, 수분 보층을 위해 차와 수박 등을 섭취해주는 것이 좋다. 차는 초르니차이(홍차)와 질료니차이(녹차)가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은 녹차, 나머지 지역은 홍차를 마신다.
▲ 숙소에서 망중한 여름철 중앙아시아 여행시, 수분 보층을 위해 차와 수박 등을 섭취해주는 것이 좋다. 차는 초르니차이(홍차)와 질료니차이(녹차)가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은 녹차, 나머지 지역은 홍차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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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타슈켄트 행 비행기 표를 사고 체크인까지 했는데, 오버부킹됐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오버부킹은 취소 발생을 고려해 실제 좌석보다 5~10% 더 많은 예약을 받는 상황을 말하는데, 그녀가 탄 항공기는 취소가 없었다는 거다. 보통 그런 경우, 항공사에서는 다음 편 항공권을 무료로 준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항공사로부터 조만간 타슈켄트행 항공편 스케줄이 없으니 행선지를 사마르칸트로 바꾸라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래서 타슈켄트에 잡아놓은 숙소까지 취소하고 사마르칸트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짐은 처음에 체크인했던 행선지인 타슈켄트로 가버린 것이다. 수중에 있는 것은 작은 보조 배낭 하나뿐. 타슈켄트 공항에 전화를 해봐도 영어도 잘 안 통하고 담당자는 수시로 바뀐다고 한다. 대체 짐이 타슈켄트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급한 대로 세면 도구를 빌려주고, 우즈벡 친구에게 부탁해 타슈켄트 공항에 전화하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내가 사마르칸트를 떠날 때까지 짐은 찾지 못했다.

열흘 후, 우즈베키스탄의 서쪽 도시 히바. 숙소에 들어서는데 누군가 반색을 하며 맞는다. 로리안이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짐 찾았어?"라는 말부터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여행은 잘 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 여인들이 입는 헐렁한 내리닫이 스타일의 원피스 차림이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짐은 못 찾았다. 우리는 잠시 러시아 항공을 저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로리안은 즐거운 얼굴이었다. 여행이 너무 즐거웠단다. 가방은 여전히 작은 보조배낭 하나뿐이다.

우즈베키스탄 스타일 옷 화려한 무늬의 옷을 헐렁하게 내리닫이 원피스로 입는다
▲ 우즈베키스탄 스타일 옷 화려한 무늬의 옷을 헐렁하게 내리닫이 원피스로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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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짐도 없이 어떻게 여행을 했어?"
"여행하는데 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더라고."

열흘 동안 세면 도구와 속옷,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스타일 원피스를 하나 산 게 전부라고 했다. 하지만 여행은 그것으로 충분했다고 한다. 그동안 왜그렇게 무겁게 가지고 다녔는지 모르겠단다. 나는 내 12kg짜리 배낭을 슬그머니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흔히 여행자에게 배낭은 '전생의 업보'로 비유된다. 여행 짐은 간소한 게 좋다고 하지만, '생활'을 지고 다니는 것이기에 마냥 간소해질 순 없다. 그래도 늘 길을 떠나며 생각했다. 여행을 하는 데는 이 배낭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딱 배낭만큼만 지니자고, 늘 그 마음으로 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리안을 마주하니 내 배낭에는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나를 나답게 보이기 위한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어깨를 조여왔다. 그래서였나. '여행지는 늘 바뀌는데 나는 항상 그대로'인 것 같았다.

로리안은 처음 만났을 때의 불안해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오히려 배낭여행계의 고수가 되어 여유로운 자태를 뽐냈다. 자유롭기 위해 떠난 여행자들은 모두 그녀를 부러워했다. 어쩌면 '한 번쯤 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내려놓고 자유로워 보는 것', 그것이 진짜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길을 따라 온 비단 종이

중국의 비단은 기원전 2세기 지중해에 도착했다. 동방에서 사방으로 건너간 최초의 사치품이었다. 페르가나 계곡에 있는 소도시, 마르길란(margilon)에 가면 옛 방식 그대로 비단을 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부터 비단을 짜왔다.

마르길란 비단공장 누에고치를 삶아 실을 뽑아내는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 마르길란 비단공장 누에고치를 삶아 실을 뽑아내는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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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을 짜는 방법은 복잡했다. 집누에나방의 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고 장섬유의 끝을 찾아 실을 잣는다. 실은 2400미터까지 뽑힌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실을 염료로 염색하고 베틀로 짜낸다. 팽팽하게 걸린 날실에 씨실을 걸고 탁탁 칠 뿐인데,  마법처럼 색색의 무늬가 곱고 쫀쫀하게 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단 중 반은 면, 반은 비단인 재질은 아드라스(adras)라고 하고, 100% 비단이면 쇼이(shoy)라고 했다.

비단을 짜는 소녀 실에 공작새 눈같은 전통 무늬를 넣어 짠다
▲ 비단을 짜는 소녀 실에 공작새 눈같은 전통 무늬를 넣어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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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이 길에는 중개 무역이 있어 왔지만, 비단 무역으로 더욱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인류의 3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나침반이 동에서 서로 건너갔다. 그 중 종이의 서진(西進)을 이곳 사마르칸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751년 7월.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와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 군대가 탈라스 강가에서 격전을 벌인다. 실크로드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이었다. 말을 탄 이슬람 기병들에 중국 보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결국, 승리는 이슬람군에 돌아가고, 당나라 포로들에 의해 제지술의 비밀도 아랍 제국의 손에 들어갔다.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10km 떨어진 메로스라는 마을에 가면 전통 제지 공장이 있다. 시압강을 끼고 한때 이곳엔 제지 공장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뽕나무의 껍질에서 만들어지는 이 종이는 '비단 종이'로 불린다. 삶은 뽕나무 껍질을 물레방아에 넣고 점토 형태가 될 때까지 찧는다. 그걸 물에 씻어 채에 거른다. 만들어진 종이를 돌에 납작하게 압착한 후 말린다. 마지막 과정은 조개 껍데기로 반들반들하게 윤이 날 때까지 문지르는 것이다.

종이를 건져내는 과정 한지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종이를 건져내는 과정 한지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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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과정 조개껍질로 문질러 종이를 반들반들하게 만든다
▲ 마지막 과정 조개껍질로 문질러 종이를 반들반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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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제지술은 바그다드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갔다. 처음에 기독교 왕국들은 아랍에서 건너온 신문물을 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13세기 스페인을 중심으로 종이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결국 종이는 인쇄술의 발달을 가져오고,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한다. 고선지 장군으로서는 뜻하지 않게 유럽의 문예 부흥에 기여한 셈이다.

사마르칸트 제지 공장을 마지막으로 고선지 장군과 이별했다. 실크로드를 따라가며 투르판에서, 쿠처에서, 그리고 파미르 고원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라를 잃고 노예 신분이 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 나간 사람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은 부딪힌 문제에 내면의 힘을 믿고 들어서는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했다. 길을 떠나 만난 영웅의 삶은 늘 내게 용기를 주었다.

이제 사마르칸트를 떠나 23시간 기차를 타고 아랄해로 향한다. 이 곳은 바다가 말라붙어 사막이 된 곳, '인류 최대의 환경 재앙'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사마르칸트 비단종이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절히 바라노니,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말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사마르칸트 비단종이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절히 바라노니,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말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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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정보
- 마르길란의 비단공장 가는 법
타슈켄트 쿨룩 시장에서 일단 페르가나로 가는 합승 택시를 탄다. 페르가나에서 다시 합승 택시나 버스를 타고 마르길란으로 가야 한다. 마르길란 시내 교차로에서 '요드고릭(Yodgorlik)'을 물어보면 걸어서 갈 수 있다.

주소: Yodgorlik Silk Factory Imam Zakhriddin
연락처: +998 73 233 88 24
공장 투어 가격: 15000숨 (USD $5)

- 사마르칸트 비단종이공장 가는 법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10km 정도 거리에 있다. 자전거를 빌리거나 택시를 대절해서 간다. 자전거로 갈 경우, 일단 코니길 마을로 가서 '메로스 실크 페이퍼 팩토리(Meros silk paper factry)'를 물어보면 사람들이 알려준다.

주소:  'Konigil Meros' village (사마르칸트 센터에서 10km, 부하라 가는 도로 방향) 
공장투어 가격: 3000숨 (USD $1)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실크로드#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비단종이#레기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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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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