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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징비록>.
드라마 <징비록>. ⓒ KBS

KBS 주말드라마 <징비록>의 선조 임금은 현재 평안도 의주에 머물고 있다. 여기서 압록강만 넘으면 명나라 땅이다. 한편, 드라마 속의 일본군은 그보다 남쪽인 평양성을 점령하고 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일본군이 평안도 전체를 점령했다면, 임진왜란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평안도를 빼앗기는 것과 함경도를 빼앗기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평안도는 조선과 명나라를 육로로 잇는 곳이었다. 반면에 함경도 위쪽에는 여진족이 살고 있었다. 명나라는 함경도 위쪽의 광활한 만주 땅에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라는 행정관청을 설치했지만, 이것은 유명무실했다.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대만·타이완)을 중국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함경도 위쪽에는 명나라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조선이 명나라와의 관계를 원활히 하려면 평안도를 반드시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평안도마저 빼앗긴다면, 명나라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일본군이 임진왜란 발발 2개월 만인 1592년 7월 22일(실록에서는 음력 6월 14일) 평양성을 점령했다는 사실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무명의 백성이었다. 평양 기생 계월향이 바로 그이다. 평양 역사를 다룬 <평양지>에 따르면, 일본군 제1군 사령관 고니시 유기나가의 군대가 평양성을 점령할 당시, 계월향은 성을 못 빠져나가 붙들리고 말았다.

그런데 붙잡힌 계월향에게 한 눈에 반한 일본 장군이 있었다. 평양 주둔 일본군의 '에이스'급 장군이었다. 잠시 뒤에 등장할 김경서를 주인공으로 한 <김경서 장군전>에서는 그 장군의 이름이 나이토 조안이라고 했다. 많은 역사서나 논문이 이 책을 인용하고 있지만, 나이토 조안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30년 뒤에 사망했다. 계월향에게 반한 그 장군은 임진왜란 때 죽었다. 따라서 그가 나이토 조안이었을 리는 없다. 그의 정체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계월향은 일본 장군의 처소에 갇혀 억지로 생활해야 했다. 그곳에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본군이 평양성을 점령한 기간이 1592년 7월 22일부터 1593년 2월 9일(음력 1월 9일)까지이므로, 계월향이 갇힌 기간은 최장 7개월이 좀 안 됐을 것이다.

일본 장군 신뢰 얻은 계월향, 조선을 구하다

 유튜브에 공개된 조선중앙 TV <계월향>의 한 장면.
유튜브에 공개된 조선중앙 TV <계월향>의 한 장면. ⓒ 텔레비전극 창작단

그 기간의 어느 시점에 계월향은 일본 장군의 신뢰를 얻었다. 그는 그런 신뢰를 이용해서 일본 장군에게 외출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평양지>에 따르면, 그는 "친척이 보고 싶습니다"라며 "서문 쪽에 갔다 올게요"라고 말했다. 갔다 온다고 말은 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안 돌아올 수도 있었다. 

외출 허가를 받은 계월향은 평양성 서문 쪽으로 갔다. 그곳 성벽에 올라보니, 성에 못 들어온 백성들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문 밖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계월향은 그들을 향해 "우리 오빠 어디 있소?" 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은 친오빠를 찾는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기를 도와줄 남자를 찾았던 것.

이때 계월향의 눈앞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김경서 장군전>의 주인공인 김경서가 바로 그 남자였다. 아명이 김응서인 김경서는 첩보 활동에 일가견이 있는 장교였다.

김경서는 평안도 용강현 출신이다. 그래서 평양 기생 계월향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수도 있다. 당시 기생들은 주로 관리들만 상대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정확한 실상은 파악할 수 없다. 

성벽 위에서 외치는 계월향을 향해, 김경서는 성벽 밑으로 접근했다. 일본군이 듣지 못하게 계월향과 대화하려면 성벽 쪽에 바짝 붙어야 했을 것이다. <평양지>에 따르면, 계월향은 다가온 김경서에게 "여기서 저 좀 빼내주세요"라며 "목숨을 다해 은혜를 갚을게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김경서는 자기를 성 안으로 들여보내주면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굳게 약속했을 것이다. 이에, 계월향은 일본 병사들에게 "저 사람은 제 친오빠이니까 성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조선 장교 김경서가 평양성에 잠입하는 순간이었다.

성 안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작전을 짰다. 한밤중에 만나 일본 장군을 죽이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계월향은 일본군 숙소로 돌아갔다. 허가를 받고 나올 때만 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을지 모를 그곳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계월향은 일본 장군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벽시계라도 있는 시절 같았으면, 힐끔힐끔 벽이라도 쳐다봤을 것이다. 한밤중이 되자, 일본 장군은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계월향은 조심스레 옷을 주워 입었다. 그러고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적어도 2월 이전의 겨울밤이었으니, 날씨가 꽤 차가웠을 것이다.

약속한 장소에 나간 계월향은 김경서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일본 남자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계월향이 "저놈이에요!"라고 말하자, 김경서가 칼을 뽑아 휘둘렀다. 평양 주둔 일본군의 기둥은 그렇게 쓰러졌다.

 평양성 서문인 보통문. 고등학교 <국사>에 실린 사진이다.
평양성 서문인 보통문. 고등학교 <국사>에 실린 사진이다. ⓒ 교육인적자원부

거사를 마친 두 사람은 그 길로 도망을 갔다. 이들은 성벽 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런데 성벽 가까이 갔을 때였다. 앞서 가던 김경서가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칼을 휘두르고 다시 앞으로 달려갔다. 계월향을 쓰러뜨리고 도망간 것이다. 나중에 김경서는 "두 사람이 함께 성벽을 넘기 힘들어서 계월향을 죽였다"고 말했다.

계월향을 죽이고 성벽을 넘을 당시, 김경서는 일본 장군의 목을 들고 있었다. 상부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적군의 목을 갖고 성벽을 넘으면서도, 계월향과의 약속은 지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쟁의 물줄기 바꾸는데 결정적 기여

<평양지>에서는 일본 장군의 암살을 계기로 일본군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사건으로 인해 일본군 진영이 혼란에 빠지고 병사들이 사기가 떨어진 것이다. 조선군이 성에 침투해서 자기네 핵심 장군을 죽이고 성을 빠져나갔으니, 그런 두려움을 가질 만도 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1593년 2월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평양성을 공격해서 탈환했다.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은 이때부터 남하의 길로 돌아서야 했다.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김경서의 역할도 대단했지만, 계월향의 공로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계월향이 직접 평양성을 빼앗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월향 덕분에 평양 주둔 일본군의 지휘 체계에 혼란이 생기고, 조명연합군이 훨씬 더 수월하게 평양성을 수복할 수 있었다. 계월향은 전쟁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큰 역할을 한 것에 비하면, 오늘날 계월향은 휴전선 이남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만약 그가 기생도 아니고 평양 출신도 아니었다면, 그는 임진왜란 이후에 논개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받는 직업에다가 차별받는 지역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계월향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훗날 한반도가 분단되고 말았으니, 그에 대한 저평가는 휴전선 이남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유성룡의 회고록인 <징비록>이 후세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일차적 요인은, 유성룡의 추천을 받은 이순신이 남해상에서 일본군을 격퇴하고 조선을 구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징비록>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계월향을 비롯한 평범한 백성들이 임금의 나라가 아닌 자기들의 나라를 위해 일본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런 이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기에, 전쟁 지휘부에 있었던 유성룡이 후대의 칭송을 받고 그의 회고록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징비록#계월향#평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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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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