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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4시경, 지난 4년 6개월을 끌어온 한미원자력협정 개정문에 대한 한미 대표의 가서명이 이루어졌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 시절 미대사를 만난 첫 자리 첫 얘기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었다. 실무 차원에서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른 상태에서 추가 협상할 내용이 더 있는 것처럼 2년간 서명을 미뤄온 것이 이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에는 핵물질이나 장비, 부품, 과학기술 정보를 서로 활발히 교류하고 미국산 핵물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기동의를 확보하는 등의 내용과 함께, 핵심쟁점이 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대해 부분적으로 합의를 통해서 추진할 수 있는 경로가 포함되어 있다. 즉,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 1단계 연구에 대한 장기동의와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 관련 합의 경로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주권', '자율권' 등으로 포장되어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원전 수출을 본질을 덮어둔 채 환상을 만들던 전철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가서명으로 마치 그동안 금지되어온 파이로 프로세싱에 대한 자율권을 확보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방사능 오염이 확대되고 핵확산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재처리 기술에 대해 접근의 길이 열린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건식 재처리 기술로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성핵종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잘게 부수어서 용융염에서 전기분해하는 1단계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기체성 방사성물질이 다량으로 환경으로 방출된다. 2단계까지 완료해서 분리한 플루토늄은 비록 다른 핵종과 섞여 있다 하더라도 독성이 강하고 발열량이 높은 핵종과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탈취가 용이하며 간단한 과정을 통해 핵무기의 원료로 쓰일 수 있다.

파이로프로세싱과 같은 재처리를 통해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는 것도 오해다. 재처리 과정을 통해 오히려 중준위와 저준위의 핵폐기물이 다량으로 발생하며 기체 핵폐기물은 주변 환경으로 방출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재처리로 분리된 95%가량의 우라늄 238, 235는 다른 핵종이 섞여 있는 다루기 힘든 물질로, 핵연료로 다시 재활용하는데 고비용이 들어 사실상 고준위 핵폐기물이 되어 버린다. 분리된 1%의 플루토늄 역시 이미 세계적으로 실패한 기술로 입증된 고속로가 없다면 쓸모없는 핵물질이며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런 위험한 죽음의 기술을 연구하는 자율권을 부분적으로 확보했다는 게 무슨 자랑거리인가. 사실상 원자력계의 밥그릇 확대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재처리 기술 접근을 위한 협상을 박근혜 정부 인수위 시절부터 협정만기를 2년간 연장할 정도로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주도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2년간 연장해도 정작 핵심쟁점은 연장하기 전 실무차원에서 합의한 내용에서 크게 다르지도 않다.

위험한 기술, 죽음의 기술 재처리와 고속로를 위해서 지금도 한 해 수천억 원의 세금을 쏟아 붓고 있다. 이번 한미원자력협정의 결과로 또 얼마나 많은 세금이 핵마피아를 위해 낭비될까. 진정 국민을 위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정부는 물론 언론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한미원자력협정#파이로프로세싱#재처리#플루토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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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 전'핵없는사회를위한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월성원전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검증위원. 대한민국의 원전제로 석탄제로,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기자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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