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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립니다, 끝까지 팽목항 기다림의 문화제에서
기다립니다, 끝까지팽목항 기다림의 문화제에서 ⓒ 심영의

죽음을 보았던 자는 죽음의 기억을 짊어진다. 2014년 4월 16일, 가라앉는 배 안에서, 캄캄한 물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 304명이, 그것도 대부분 고등학교 아이들이 한꺼번에 수장 당했다.(이것은 어쨌거나, '수장(水葬)'이다.) 아직까지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시신 아홉 구(사실 아홉인지 아흔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가 차디찬 물 속에 있다. 그런데도 이제 그만 잊어 버리자고 말하는 이들, 많은 돈을 들여 선체를 인양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은 누구인가. 누가, 세월호의 망각을 부추기는가.

대체로 보아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왜 그럴까? 마침 4월이다. 나는 저 제주의 기억을, 기록을 통해서 기억한다. 기억만이 망각을 이겨낼 수 있는 까닭에 그러하다. 제주 4·3사건의 전개과정에서 서북청년단이 포함된 토벌대의 만행은, 제주 4·3평화재단 자료에 따르면 대략 이러하다.

1948년 11월 7일에는 구좌면 행원리 가옥 20여 채를 방화하고 주민 10여 명을 총살한다. 남원면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수망리·한남리를 급습해 피신하지 않은 노인과 어린이를 총살하고 가옥 대부분을 방화한다. 서귀면 서귀리를 급습해 민가에 방화한다. 같은 해 11월 13일에는 애월면 하가리에서 가옥에 방화하고 남녀노소 25명을 집단총살 한 뒤, 소길리 원동마을에서 주민 50~60명을 집단 총살하는 등 이 날을 기점으로 약 4개월간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하고 주민들을 집단 총살한다.

물론 무장대에 의한 만행도 그 규모는 작지만 없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3일에는 경찰지서 소재지인 구좌면 세화리를 대대적으로 습격해 주민 50명 가량을 살해하고 40가호 150채에 방화한다. 그러자 다시 토벌대는 12월 15일, 표선면 토산리 주민을 집합 시킨 후 18세부터 40세까지의 남자와 일부 젊은 여자 등 150여 명을 표선국교로 끌고 가 감금했다가 12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집단 총살한다. 그 과정에서의 잔혹한 행위들은 차마 옮길 수 없다.

그런데 그 참극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의 죽음은 산 자에게 현재의 삶을 바라보게 하며, 삶의 존재 증명을 위해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산 자에게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선택하는 일은 자신의 존재방식을 결단하는 일이다. 또, 타인의 죽음은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 함은 물론이고, 자신의 주체를 이전과는 다르게 구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이 기억의 참된 의미다. 그런데 (보수)정부는 그 죽음을 기리는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

한국 군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해서 저지른 학살만행에 대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에 (한국군의) 베트남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분들이 방한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고엽제전우회 사람들의 집요한 방해로 기자회견 장소를 옮겨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성찰하지 못(혹은 안)하는 것일까?

1980년 광주에서의 참극에 대한 저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군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집요하게 부정하려는 세력, 그것이 북한과 연계된 폭동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인물들, 5월의 넋을 기리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보수)정부가 저들 자칭 보수주의자들의 배후에 있다. 그들은 모든 사건을 단지 피아로만 구분하려 든다. 좌냐 우냐만이 유일한 가치판단의 준거가 된다. 내 편이 아니면 몰살이든 학살이든 거칠 것이 없다.

세월호 진실을 봉인하려는 이들, 그들이 적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제주 4·3과 베트남 전쟁과 광주 5·18의 경우, 피아의 가름이 가능하다고 해보자. 그런데 세월호 참극에서도 그런 가치판단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세월호 희생자들이 왜 보수정부와 보수주의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일까? 무엇인가 감추려고 하는 자가 도둑일 것은 빤한 이치다. 세월호 참극의 진실이 봉인되기를 두려워하는 자들(그것이 보수 정부든 보수주의자들이든), 그들이 진정한 적이다. 나라의, 그리고 시민들의 적이다. 아니라면 세월호의 진실규명을 집요하게 방해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관련하여, "타자에 대한 책임은 타자의 요청에 의해 내가 타자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휴머니즘의 근원은 타자이며, 이런 휴머니즘 안에서의 책임이 나의 유일성에 대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눈비를 맞으며,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행위를 그런 관점에서 설명가능하다.

혹실드에 따르면 개인은 일상 속에서 '감정 규칙(feeling rules)'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고 통제하고자 시도한다. 이 감정규칙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일례로 장례식장에서 우리에게 기대되는 행동은 단순히 슬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사실과 유사한 논리다.

이는 행위자들로 하여금 '깊은 행동(deep acting)'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다시 사회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바람직한 상태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슬픔과 연민의 감정'이다. 아무런 죄 없이, 느닷없이 죽임을 당한 3백여 명의 우리 시민들의 죽음에 대한 감정인 것이다.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체포하고 가스를 발사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시민들을 적으로 규정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다시, 세월호의 죽음을 보았던 우리는 죽음의 기억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아스만은 "우리가 기억을 소홀히 한다 해도 그 기억은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우리의 무의식 어딘가에 저장되었고 오랫동안 잠복해 있다가 무의식에서 순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의식은 셈하고, 기록하고, 모두 적어두고, 저장하며, 언제든지 그 정보를 불러낼 수 있다. 문제는 살아남은 학생들이나 유가족들이나 아니라도 그 죽음을 함께 지켜보는 우리에게 상흔의 회복은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세월호 참극과 같은 외상 사건은 우리의 기본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가족, 우정, 사랑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이 깨진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자기 구성이 산산이 부서진다. 인간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념 체계의 토대가 침식당한다. 자연과 신성의 질서에 대한 피해자의 믿음이 배반당하고, 피해자는 존재의 위기 상태로 내던져진다.

인간적 가치의 옹호, 그것만이 답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월호 인양에 대해 변죽만 울릴 일이 아니다. 너무 늦은 인양 검토로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일이 아니다. 배상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호도할 일이 아니다. 광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돈으로 입막음하는 일은 지나치게 비열한 일이다.

근대적 주체는 본질적으로 관찰자다. 관찰자가 되는 인간은 자신의 주변 세계를 자기 자신처럼 객관화한다. 관찰하는 자는 시간의 강을 넘어선 사람이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는 것, 과거를 직시하는 것, 그 참혹한 기억이 지나간 이야기로서의 과거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폭력적인 것에 대한 저항과 연대가 그들의 죽음의 의미를 헛되이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수렴될 것이 필요하다.

인간적 가치의 옹호. 그것만이 세월호로 희생된 넋들을 기리는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 물론 진실규명 후의 일이겠다. 그러니까, 오늘도 광장에 나간 시민들의 행위를 우리는 타자와의 '연대의 감정'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결코 정부에, 나라에 저항하고 반역하는 일이 아니다. 기억을 지우려는 자들과의 아름다운, 오래토록 계속될 싸움일 뿐이다.


#세월호1주기#기억과 망각#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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