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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직업병이라고 확신한다."

2010년 7월 삼성 반도체 탕정 사업장에 입사해 LCD-TV 조립라인에서 3년간 일하다 혈액암 진단을 받고, 골수이식을 기다리던 중 병세 악화로 꽃다운 2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 조은주씨의 어머니 김경희씨의 증언이다.

 3월 4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있었던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 증언대회에 나선 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유족 그리고 반올림 이다.
3월 4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있었던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 증언대회에 나선 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유족 그리고 반올림 이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지난 4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아래 반올림) 주최로 서울 정동에 있는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 노동자 증언대회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기일이자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추모기일인 3월 6일에 맞춰 추모주간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시작에 앞서 반올림 공유정옥 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327명 가운데 2.5%인 8명만이 가까스로 산재로 인정을 받은 현실을 지적하며 "오늘 증언대회는 지금도 여전히 기록되지 않고,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숨어있는 수많은 직업병 피해 노동자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데 실마리를 마련하고자 준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딸의 이야기를 하려니 본인 마음에 못을 박는 것 같다며 무겁게 이야기를 꺼낸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고 조은주씨의 어머니 김경희씨는 "딸이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조장이나 선배들한테 혼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또, "명절이나 휴가 때도 공장이 안 쉬고 돌아가니까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힘들어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고 조은주씨는 작업 중 불량이 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약품으로 제품을 닦아내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하면서부터 몸이 아파 그때부터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김경희씨의 증언에 따르면 고 조은주씨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일이 없었을 정도로 매우 건강했다고 했다.

김경희씨는 딸이 투병 중인 2013년 9월 병원으로 삼성 직원이 왔길래 내 딸이 산재인 것 같다고, 산재 신청은 안되는 거냐 묻자 "몇천 명이 되는 사원이 있는데 병에 걸리려면 다 걸려야지, 특정한 사람만 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직업병이냐"는 모진 말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내 딸이 아픈 게 직업병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직업병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 애가 어린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삼성은 책임을 회피하지만 말고 왜 이러한 일이 생겼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냥 덮어두기엔 아버지가 너무 많은 걸 남기고 가셨다"

다음으로 증언에 나선 손성배씨는 1959년생으로 삼성 반도체 협력 업체 현장소장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의 유지보수업무를 총괄하다 2009년 5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2년 8월 31일 사망한 고 손경주씨를 대신해 이 자리에 나섰다. 손성배씨는 증언을 통해 "아버지께서 백혈병 확진 1년 전인 2008년 5월 인터넷 가족 카페를 개설했는데 여기에 친척들 사진은 물론, 편지들을 비롯해 반도체 업무 관련 자료를 모으는 게시판을 만들었다"며 이후 투병 중에도 기필코 병이 나아서 반올림에 가서 이 사실 알리겠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고 손경주씨는 돌아가시기 전 손성배씨에게 반올림의 이종란, 공유정옥 활동가의 연락처를 남겼다고 했다.

고 손성배씨의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현장 소장이 관리직이라 업무 관련 유해물질 노출 수준이 낮다고 판단,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손성배 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 때문에 회사와 척지기 싫어서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제는 그냥 덮어두기엔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고 말했다. 현재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증언에 나선 직업병 피해 노동자 김미선씨는 1980년생으로 만 17살인 199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 LCD 모듈공정에 배치되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 가까이 고온 납땜을 비롯해 화학약품으로 이물질 제거 일을 했다. 그러다 3년여 만인 지난 2000년 팔·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그해 12월 퇴사, 그 다음 해인 2001년 6월 '다발성경화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미선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 했지만, 다발성경화증이 업무상 유해요인 노출 정도를 알 수 없고, 의학적으로 질병의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인 질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현재 김미선씨는 근로복지공단 판정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산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0여 년 넘게 투병하면서 증세를 늦추기 위해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이제는 팔·다리 마비뿐만 아니라 관절 손상을 비롯해 시력 또한 거의 잃고 있다고 전한 김미선씨는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것조차 큰 꿈이 되었다"며 "어느 때는 내가 죽어버리면 가족들에게도 부담 주지도 않고 아픈 것도 모를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증언대회를 마친 반올림은 오는 6일 늦은 오후 7시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고 황유미씨 8주기 및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제 '유미가 유미에게' 문화제를 개최한다.


#삼성 반도체#황유미 #산업재해 #반올림#근로복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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