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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시 마지막 수업에 앞서 노영민(후배 교사이자 시인)님이 "형님의 발뒷꿈치라도 따라 가고 싶다"며 여는 시를 읽고 있다.
여는 시마지막 수업에 앞서 노영민(후배 교사이자 시인)님이 "형님의 발뒷꿈치라도 따라 가고 싶다"며 여는 시를 읽고 있다. ⓒ 송태원

 이상석 선생님 퇴임기념 수업을 함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모시는 말씀에 '밥이 되면 밥 되어/함께하면 될 일 흉허물 없는 분들만 모셨으니/맘 편히 오늘을 즐기시길 바랍니다./미리 걱정해봐야 잘 될 것도 아니고/대접도 소홀하고 자리도 불편하여/그대 모시기가 거시기 합니다마는/감히 오시라 모셨습니다.
이상석 선생님 퇴임기념 수업을 함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모시는 말씀에 '밥이 되면 밥 되어/함께하면 될 일 흉허물 없는 분들만 모셨으니/맘 편히 오늘을 즐기시길 바랍니다./미리 걱정해봐야 잘 될 것도 아니고/대접도 소홀하고 자리도 불편하여/그대 모시기가 거시기 합니다마는/감히 오시라 모셨습니다. ⓒ 송태원

지난 7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구 신도고등학교 5층 강당에서는 특별한 수업이 있었다. 바로 40만 이상의 독자에게 감동을 준 저서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의 저자인 이상석 선생님의 퇴임 기념 수업이었다. 강당 중앙에는 제자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고 양옆으로는 흉허물이 없는 지인들과 동료, 후배 선생님 등이 가득 메웠다.

대양중학교, 대양공업고등학교, 성모여자고등학교, 부산중앙고등학교, 부산진고등학교, 경남공업고등학교, 양운고등학교, 그리고 신도고등학교 제자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모였다. 자신이 거쳐 온 학교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지인들과 수업으로 마무리하는 35년 평교사의 정년 퇴임식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이상석 교사는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를 '절친'이라고 소개하며 이육사의 '광야'를 읽기를 부탁했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교사는 "시를 읽고 머릿속에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면 시는 다 배운 것이다"라며 시 '광야'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박재동 만화가는 이 교사와 고입 재수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둘도 없는 평생 동무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박 화백도 '광야'를 멋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백마를 타고 온 초인'은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며 제자들의 답을 듣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며 제자들의 답을 듣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송태원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이 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 어디냐?'며 50대 제자부터 18세 제자에게 물었다. 이 교사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싯구를 강조했다. 가난이 주는 힘을 알게 한 경남공고 아이들을 이야기하며 이제사 제대로 선생 노릇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 교사가 경남공고에서 담임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일들과 글쓰기 수업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책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이다. 나는 작년 초 이 책을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부끄러운 나의 학교 생활을 반성하기도 했다.

 '광야'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상석 선생님
'광야'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상석 선생님 ⓒ 송태원

 이육사의 '광야'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광야를 표현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서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특히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은 옷을 벗기기로 했고 중요 부위는 안장으로 가리면서 한시름 놓았다고 그림이 나오기까지를 설명해주었다. 눈내리는 장면과 강이 흘러가는 모습 그리고 뒷쪽의 마을은 그림설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려졌다.
이육사의 '광야'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광야를 표현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서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특히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은 옷을 벗기기로 했고 중요 부위는 안장으로 가리면서 한시름 놓았다고 그림이 나오기까지를 설명해주었다. 눈내리는 장면과 강이 흘러가는 모습 그리고 뒷쪽의 마을은 그림설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려졌다. ⓒ 송태원

이 교사는 자신이 거쳐 온 학교를 이야기했다. "대양중, 대양공고 아이들은 이제 같이 늙어가는 평생 동무"라고 했고, 성모여고에선 울먹이기 시작하였다. 전교협 부위원장으로 전교조 결성에 맨 앞에 있었고 교단을 쫓겨날 때가 성모여고였다.

선생님은 쫓겨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아이들 속에 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그래도 잘 할 수 있고 잘 하고 싶은 게 선생 노릇이라는 것을. 그래서 성모여고 생각만 하면 애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미안하다고"라고 했다. 이제는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된 제자들이 지은 시로 만든 노래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닦았다.

▲ 성모여고 졸업생들 이상석 선생님의 성모여고 제자가 지은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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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석 교사의 마지막 수업은 끝났다. 10분간 휴식이 있었다. 2부는 황금성님의 여는 노래를 시작으로 신도고, 양운고, 경남공고, 대양중, 성모여고, 중앙고 제자들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아직은 젊은 시절 선생님이 만들었다는 구호 "내 사랑 한반도여, 전교조로 물결쳐라!"가 이루어진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넓은 품으로 제자들, 후배 교사들과 친구들과 독자들의 마음에 '가난한 노래의 씨'가 뿌려진 것은 그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백마를 타고 온 초인'도 숨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상석#우리 스스로 봄이 되어야 해#마지막 수업#정년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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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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