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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발견>은 <가족의 두 얼굴>이란 책으로 가정 문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최광현 교수의 두 번째 책이다. <가족의 두 얼굴>이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가족의 발견>은 가족이 받는 상처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 밝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민낯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안식처는 어떻게 지옥으로 바뀌나

 <가족의 발견>, 책 표지
<가족의 발견>, 책 표지 ⓒ 도서출판 부키
지옥이라 일컬어지는 세상에서 개인에게 최후의 보루가 있다면, 그것 중 하나는 분명 혈연(血緣)일 것이다. 피로 묶인 사이라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최근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국제시장>의 초반부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몸을 던지는 아버지처럼,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끊을 수 없는 것이 혈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의 친밀함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부작용은 친밀함이 관성(慣性)으로 변하면서 시작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어떤 영화의 대사처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내재한 친밀함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된다. 당연시된다는 것은 폭력적 관계의 전조다.

자신이 갖고 싶던 물건을 구매했을 때를 기억해보자. 누구든 그 물건을 애지중지 다룰 것은 자명하다.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다루고, 누군가 그것을 건들면 버럭 화를 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소중함은 저물고, 아무렇게나 버려두어도 별 감흥이 없다. 이렇듯 타성에 젖은 가족의 친밀함이란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 오래된 물건과 같다.

이는 심심찮게 들리는 가정폭력 사건과 여러 가정 문제의 발단이 된다. 보편적으로 가족 공동체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아버지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 문제의 시작은 보통 권력을 가진 이, 즉 아버지에게서 먼저 일어난다(물론 생계를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가 책임지고 있다면 권력 관계는 달라진다).

우리의 의식은 모순도, 아픔도 애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려 하지만, 무의식 속에 있는 그림자 인격은 그러한 자아를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그림자는 더욱 커지게 되고, 이로 인한 심리적 불균형은 어떤 식으로든 그림자를 해소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족을 그림자 해소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113쪽)

현재 사회는 부조리와 부정 부패 등이 만연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이라 여긴다. 하지만 억압 당한 상태의 잔여물은 우리 내면의 보이지 않는 장소에 켜켜이 쌓여 있다. 저자는 그것을 '그림자'라고 명명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그림자'란 형태로 변해 우리의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인다. 그림자를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쌓여있는 그림자를 배출할 수 있는 건전한 해소의 통로는 일부의 몫일 뿐,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부재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림자는 누군가를 향해 터질 수밖에 없다. 건전한 해소의 통로가 부재한 상태에서 가장 쉽게 해소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충분히 자신의 그림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안일함이 안식처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폭력을 당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외부에서 당한 억울함을 가족을 상대로 한 폭력으로 풀거나, 자신이 당한 억압을 대신 해소해주길 원하는 등의 일은 지금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거기서 끝난다면 좋겠지만 대물림되기까지 한다.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경계 긋기와 접근성 사이에서

경계를 존중받지 못하면 아이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그러면 부모 자녀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기보다는 지긋지긋한 애증의 관계가 된다. (중략) 경계가 존재한다면 이번에는 접근성이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 둘 중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가족 모두와 정서적으로 교류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194쪽)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에는 친밀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화목한 가족 사이에는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경계가 그어져 있다. 마냥 친밀한 것보다 각자의 사생활을 상호 존중하고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 화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가족은 관념적인 집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개인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경계를 그으라고 해서 서로 벽을 치라는 뜻은 아니다. 접근성 역시 중요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상호 소통과 협력이 전제된 것이다. 같은 집에 산다고 해도 소통과 협력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사는' 것이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서로의 사생활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접근성을 유지하는 거리 조절 능력이다. 일정한 경계와 적절한 접근성이 가족의 화목을 지키고, 부모의 그림자를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다. 가족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에서 개인을 발견하고, 관념 속에서 개인을 끄집어 내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짜 '가족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가족의 발견>(최광현 씀/ 부키/ 2014. 12/ 정가 1만 38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발견 - 가족에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한 심리학

최광현 지음, 윤나리 그림, 부키(2014)


#가족의 발견#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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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고 짬짬이 쓰는 김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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