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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딸, 11세 아들. 이종욱씨는 싱글파파 8년차다. 종욱씨는 밤 12시 30분에 기상하는 걸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렇게 대리점에 도착해 우유를 챙기고 우유배달을 끝내고 나면 아침 6시~7시.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등교시킨다.

그나마도 우유배달이 늦어지면,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 그럴 땐, 종욱씨 대신 아이들에게 잔소리 해주는 게 있다. 바로 현관문 안쪽에 붙은 글귀다. 아이들은 이 글귀를 보고 등교한다.

"깜박한 물건은 없니? 머리는 단정하니? 로션은 발랐니?"

아빠 종욱씨가 아이들을 홀로 챙기는 방법이다. 그 글귀 외에도 "놀 땐 신나게 놀고, 먹을 땐 배불리 잘 먹고, 공부할 땐 '열공'하라"는 아빠의 잔소리(?)가 더 적혀있다. 아빠를 못 만나는 아침이면 아이들이 만나는 아빠의 마음이다.

8년 전, 아이들이냐 일이냐를 선택할 기로에서 그는 기꺼이 아이들을 선택했다고 했다. 세상 어느 아빠라도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종욱씨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우유배달을 선택했다.
▲ 이종욱씨 8년 전, 아이들이냐 일이냐를 선택할 기로에서 그는 기꺼이 아이들을 선택했다고 했다. 세상 어느 아빠라도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종욱씨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우유배달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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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오전 잠을 잔다. 그 잠도 아이들 학교일이 생기면 못 잔다. 학교일? 크게 두 가지다. 안성 고삼초등학교 일(운영위원 또는 학부모회)과 학부형으로서 학교 가는 일이다.

종욱씨를 '언니'라 부르는 엄마들

종욱씨는 몇 년간 학교운영위원으로 있었으며, 작년엔 학부모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덕분에 학부모회 연합모임을 가면 항상 유일한 청일점이다. 엄마들은 종욱씨에게 '어머니, 언니'라 부른다.

엄마들은 종욱씨를 자신들의 사적인 모임자리에도 끼워준다. 그런 걸 종욱씨는 즐긴다. 한마디로 엄마가 다 됐다. "저도 엄마들과 수다도 잘 떨어요"라는 종욱씨의 말이 그걸 증명한다.

종욱씨가 사는 곳이 문구점이 없는 시골이기에, 아이들의 내일 학교 준비물을 미리 준비하는 건 필수다. 상용으로 쓰는 학용품은 아예 세트로 미리 사 놓는다.

종욱씨는 아이들의 '화이트 데이, 발렌타인 데이' 등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반 친구들 주라고 아빠가 미리 챙겨 놓는다. 아이들은 학교 가서 사탕, 초콜릿 등을 반 친구 모두에게 건네준다. 그나마 아이들의 한 반 인원(그건 시골초등학교라 한 학년의 인원이기도 하다)이 10~11명이라 다행이다.

아이들에게 학부모 참여수업이 있는 날이 있다. 그 날은 큰아이 교실 갔다가 작은아이 교실 갔다가 바쁘다. 그럴 때면 "애기 교실만 가고 저한텐 안 와도 되요, 아빠"라는 큰 아들의 말을 듣고 웃는다. 그래봐야 한 살 차이인데, 오빠 노릇을 하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종욱씨가 우유요금 수금이 있거나 고객관리로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없다면 어떨까. 다행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다. 그랬다. 종욱씨의 표현에 의하면 "난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는 현실이다.

종욱씨는 8년 전, 아이들과 자신을 기꺼이 받아주고, 손자들을 애지중지 보살펴 준 부모님이 그저 고맙다. 덕분에 아이들은 밝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단다. 낮에 "할아버지 이거 사줘요. 할머니 저거 사줘요"라며 조르는 아이들. 그걸 받아주는 조부모와 눈치 보지 않는 손자들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우유업무를 마치고 나면 하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한다. 아이들과는 저녁 9시 30분 정도면 틀림없이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종욱씨의 하루일과가 끝난다. 가만히 보면 하루일과의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공휴일도 그렇다. 그는 아이들과 추억 쌓기를 소중히 여긴다. 놀이동산, 동물원 등에 함께 가곤 한다. 아이들과 밤낚시를 다녀온 기억은 그들의 맘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부산 기차여행을 가려고 작정하고 있다. 그건 그가 공휴일에 잘 잠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남들이 다 자는 밤과 새벽에 종욱씨는 이 차를 타고 밤새 우유배달을 한다. 잘 다니던 직장을 마다하고 이 일을 선택한 건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 우유배달차 남들이 다 자는 밤과 새벽에 종욱씨는 이 차를 타고 밤새 우유배달을 한다. 잘 다니던 직장을 마다하고 이 일을 선택한 건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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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 아빠

덕분에 아들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 아빠. 세상에서 제일 닮고 싶은 사람, 아빠"라고 말하고, 주변에선 "세상에 어떤 엄마도 너처럼 못할겨"라고 말해주지만, 종욱씨는 항상 "아이들에게 좀 더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종욱씨는 8년 전까지 제약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무한경쟁 스트레스'때문에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학교 운영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우유배달 등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생전환점과 전화위복'을 이야기 했다. 종욱씨의 표정은 '지금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싱글파파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종욱씨는 천생 '나는 아빠다'란 말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일, 안성의 한 카페에서 이종욱씨와 인터뷰를 했다.



태그:#싱글파파, #싱글대디, #우유배달, #아빠,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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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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