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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대 밑바닥 노동>(교육공동체 벗) 표지
<십 대 밑바닥 노동>(교육공동체 벗) 표지 ⓒ 안준철

최근, 한 모녀 고객이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 주차요원들을 무릎 꿇리고 폭언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목격한 한 시민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이른바 갑질 논란이 일었다. 그 와중에 모 대학 교수는 고객의 횡포에 당당히 맞서지 않고 무릎을 꿇은 주차요원의 행동이 젊은이로서 패기 없고, 비굴한 행동임을 질타하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또 한 차례 논쟁이 일었다.

고백하자면 주차 요원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고객이 왕인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무기를 들이댄 것도 아닌데 사람의 왕래가 잦은 주차장에서 무릎까지 꿇어버린 사실이 얼른 납득이 가지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질타하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날 우연히 내 손에 들려 있던 한 권의 책 덕분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은 대체로 두 가지 관점으로 갈리고 있었다. 하나는 부당한 갑질에 을이 순응하지 말고 합당한 저항을 해야만 개인의 존엄도 지킬 수 있고 사회도 발전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하나는 갑의 횡포는 일종의 사회구조적 산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저항도 개인이 아닌 사회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지만, 복잡다단한 현실의 문제를 일정한 틀 속에서만 사유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글도 다수 눈에 띄었다.

그날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 주차요원들이 무릎을 꿇은 행위가 비난 받을 행동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현장에서 고객과 주차요원 사이에 어떤 대화나 행동이 오고갔는지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른바 '알바 노동'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욕을 견디는 시간

<십 대 밑바닥 노동>에는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 세계'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이수정(공인노무사)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등 여섯 명의 청소년 노동 인권 관련 전문가들은 십대 알바 노동 현장에서 직접 녹취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욕설과 푸대접, 심지어는 폭행까지 감수하며 살아야하는 십 대 알바 청소년들이 '부려 먹기 쉬운 존재들의 밑바닥 노동' 현장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모욕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아프게 증언하고 있다.

문제는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일상이 된 모욕에 있다. 낮은 임금, '빡센' 일과, 부당한 해고, 한정된 일자리까지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노동 조건 자체가 인간에 대한 모욕임이 분명하다. 모욕 받는 노동자는 그 모욕에 대해 항거해야 하지만, 청소년 노동자 가운데는 터무니  없이 '착해서' 외려 안타까울 지경인 이들이 많다.(13쪽)

위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 음식점 주인, 사무실 사장한테서 욕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먹고살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처음 일할 때는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호 지켜 가며 일했다가 하루 종일 겨우 6천 원 번 날도 있었다. 그 다음 날 진짜 굶었다.(72쪽)

"여기 홍대 앞 고깃집 알바들의 사이클이 있어요. 한 식당에 가요. 거기서 못 버티면 다른 식당에 가요. 거기서 또 못 버티면 다른 식당으로 또 가요. 이런 식으로 계속 도는 거예요. 근데 어느 식당엘 가도 다 똑 같아요. 다 폭력적이에요. 알바들한테 막 쌍욕하고, 때리려고 위협하고, 그러다 보니까 알바들이 빙빙 도는 거죠."(97쪽)

"성수기가 딱 끝나니까 출근하는 길에 문자가 온 거예요. 이제 나오지 말라고. 충격이었죠. 한 달도 못 채웠는데 3명이 동시에 잘렸어요. 제가 책이랑 휴대전화 충전기를 사무실에 두고 와서, 마지막으로 인사도 할 겸 제 물건 찾으러 가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오지 말래요. 택배로 붙여 주겠다고. 미안했나 보죠. 그렇게 짐작은 돼도 기분은 많이 안 좋았어요. 배신당한 느낌? 일회용품이 된 것 같은 기분? 내쳐진 기분이 뭔지 알겠더라고요."(100쪽)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났다. 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그 대상이 애매했다. 대다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이 죄가 되어 노동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 알바생들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온갖 욕설과 '일회용품이 된 것 같은' 굴욕을 선사한 장본인이, 그들이 운 나쁘게 만난 악덕 사업주나 '진상 고객'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어느 식당을 가도 똑같아서 빙빙 돌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쁜 인간이 문제일까? 나쁜 사회 구조가 문제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다가 결국 화가 도달한 곳은 나 자신이었다. 감상이 작용한 탓만은 아니었다. 책을 읽다가 그럴 만한 근거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대한민국 헌법이었다.

대한민국헌법 제 32조 ①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②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200쪽)

'연소자'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떠졌다가, 이내 그만 맥이 탁 풀렸다. 그 연소자에 해당하는 수많은 십 대 청소년들이 내가 매일같이 학교에서 만나고 있는 제자들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는 가정 폭력에 못 견디어 집을 뛰쳐나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극한 지점까지 가버린 탈가정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가 '연소자'로서 홀로서기를 감행하고 있는 동안 나는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헌법 조항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헌법에도 보장된 연소자의 노동의 권리에 대해 그들의 선생인 나도, 국가도 몰라라 하는 상황이라면 밑바닥 노동 현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십 대 알바 청소년들의 존엄이 스스로 지키고 싶다고 지켜지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또한, 어른 국민이 어린 국민을 착취하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거나 방치된다면, 한 세대가 흐른 뒤에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다시 어린 국민을 착취하는 끔찍한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으리라는 무서운 예감이었다.  

청소년 주인공 이야기, 소설처럼 읽히기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기획하고 '교육공동체 벗'이 만든 <십 대 밑바닥 노동>은 다소 직설적인 제목만큼이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절박한 현실적 문제들을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대안적 사고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미덕을 함께 지니고 있다. 숨 막히는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건강하고 알찬 삶을 가꾸고 일구려는 청소년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재밌게 읽히기도 한다. 
   
화려해서 더 처량한
호텔리어 혜정이의 하루

청소년들의 노동 현장과 학교 현장의 모습이 엇비슷해서였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일종의 기시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령, 이런 대목에서였다.

호텔 정보 제공 업체에서 토요일 오후 2시까지 ▽▽호텔로 오라는 문자가 왔다. 드디어 일을 하는구나 싶어 며칠 동안 기대하고 토요일에 갔는데 웬걸, 시작도 못하고 돌아왔다. 머리카락이 검은색이 아니라는 게 그 이유였다. 어떤 사람은 검은 색 구두를 신지 않았다고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학교에서 받았던 복장 검사를 여기서도 받게 될 줄이야.(26쪽)

그래도 혜정이는 포기하기 않고 다시 도전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원이 다 찼다는 이유로(오라고 문자는 보내놓고) 퇴짜를 맞는다. 세 번째로 도전하는 날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2시간 전에 호텔에 도착한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보호자 동의서를 제출했더니 유니폼을 갈아입고 몇 시까지 연회장에 모이란다. 유니폼까지 입었으니 이제 채용이 되었겠지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일을 호텔에서 하지만 직원이나 알바생 모집은 파견업체를 통해 간접 제공되는 이중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알바생이 너무 많잖아요. 우리가 당신 회사에 할당한 인원은 30명인데 지금 36명이 왔잖아요. 알아서 잘라요."

호텔 직원의 일갈에 혜정이는 간이 콩알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6명 안에 포함되지 않아 잘리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 유니폼까지 입었다가 집으로 돌아간 6명의 청소년들에게 누군가 미안하게 되었노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을까? 책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대신 이런 웃지 못할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6시까지 바닥에 줄 맞추어 앉아서 손님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루하다. 이럴 때는 수다가 최고지. 옆 사람에게 막 말을 걸려던 찰라, 갑자기 호텔 직원이 한 알바생한데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왜 이렇게 시끄러워. 여기 일하러 온 거지, 놀러 온 줄 알아? 저기 가서 벽 보고 서 있어!"

순간 조용해졌다. 혼이 난 알바생은 잠시 당황하다가 호텔 직원이 한 말이 농담이 아닌 것을 깨닫고는 벽을 향해 걸어갔다. '아, 뭐야 이게.' 답답한 마음에 옆에 앉은 알바생을 쳐다봤지만 똑 같은 일을 당할까 봐 말을 걸지 못했다. 결국 알바생은 대기 시간 내내 벽을 바라보고 서 있어야만 했다.(32쪽)

바로, 여기쯤에서였다. 내 기시감이 한 번 더 작동한 것은. 그러면서 이런 물음이 내 안에서 장난스럽게 솟구쳤다.

"저 호텔 직원은 저런 수법을 어디서 배웠지?"

물론 답은 학교였다. 알고 물어본 질문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장난스럽게 솟구친 물음은 이번에는 조금 덜 장난스러운 물음으로 배시시 새어 나왔다. '혜정이도 알바생이 아닌 호텔 직원이 되면 혹시 저런 식으로 알바생을 다루지 않을까?'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회적 학습효과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반성이 찾아온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너무 피상적으로만 만나온 것은 아닌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 것이었다. 부정적인 사회적 학습효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긍정적인 학습효과가 선행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과연 나는 그런 산교육을 해온 것인가? 다행히도 그 의구심이 반성으로, 반성은 다시 소박한 다짐으로 뒤바뀌는 과정을 겪게 되면서 이 부족한 독후감을 반성문을 대신해서 쓰게 된 것이다.          

<십 대 밑바닥 노동>을 학교 현장 교사들이 먼저 읽어보았으면 한다. 지면 관계상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사례들과 유익한 정보들을 학생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사회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도록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제안하고 싶다. 그런 최소한의 배려와 관심도 없이 왜 갑질의 부정한 요구와 횡포에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다.

덧붙이는 글 | <십 대 밑바닥 노동>/이수정·윤지영·배경내·림보·김성호·권혁태/교육공동체 벗/12,000



십 대 밑바닥 노동 -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 세계

이수정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2015)


#청소년 노동#십대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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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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