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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놓고 공개적으로 '항명'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사의를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수용했다. 물의를 빚었고 그로 인해 사의를 표명했으니 당연한 조치로 해석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권의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수행하는 민정수석의 항명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이지만 더 큰 충격은 그것을 대하는 청와대 대응자세에 있다.

고위공직자의 노골적 항명, 왜 '진상규명' 없이 내보내나

사표냈지만... 수리 않고 '진상규명' 2013년 9월 13일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전격적으로 사표를 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공직기강'을 언급하며 수리하지 않았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3년 9월 16일자 1면
사표냈지만... 수리 않고 '진상규명'2013년 9월 13일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전격적으로 사표를 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공직기강'을 언급하며 수리하지 않았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3년 9월 16일자 1면 ⓒ 조선일보PDF

민정수석이 항명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들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 한다.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그 궁금증을 풀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은 최고 권력자이고, 다른 한 명은 비서실장 아닌가.

실제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김영한 전 수석처럼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계를 잠시 돌려 2013년 9월로 돌아가 보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과 접하게 된다. 당시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에 생채기를 냈다.

2013년 9월 6일자 <조선일보>는 '채동욱 혼외자' 문제를 특종으로 터트린다. 채 전 총장은 부인했지만 보수언론의 보도는 계속되었다. 같은 달 13일, 법무부에서 혼외자와 관련해 감찰에 착수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흐른 뒤 채 전 총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새가 둥지를 떠날 때는 둥지를 깨끗하게 하고 떠난다는 말이 있다"는 말을 남긴 채 대검청사를 떠났다.

인상적인 장면은 그 다음날 등장했다. 2013년 9월 14일, 모든 언론에서 '채 총장 사의표명'을 머리기사로 보도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진실 규명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사표수리 여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보름가량 지난 9월 27일, 법무부에서 진상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는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여러 진술과 정황 자료를 확보했다"며 "(청와대에)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8일,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지 보름 후에야 박근혜 대통령은 비로소 사표를 수리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다. 이번에는 정권과 각을 세웠던 검찰총장이 아닌 청와대에서 검찰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이 '항명'을 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리고 다음날 박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했다. 앞서 채동욱의 경우에 비춰 이해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했고, 직속상관인 비서실장이 출석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 사건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앞서 언급했던 '공직기강'을 정확히 훼손한 행위가 아닌가.

이 사건은 채동욱 전 총장의 '언론에 의해 11세로 주장되는 혼외자 존재 여부' 이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공직기강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그러나 사의를 표명한 다음날 그의 사표는 수리됐다. 괘씸했던 채 전 총장은 보름 동안 진상조사를 받았지만, 김영한 전 수석은 청와대 감찰은커녕 사표만 바로 수리됐을 뿐이다.

박 대통령, '꽃놀이패' 외면한 까닭은?

그가 항명한 이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김기춘 문건' 조사에서 완전히 배제됐기 때문에 항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1월 12일자 4면
그가 항명한 이유?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김기춘 문건' 조사에서 완전히 배제됐기 때문에 항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1월 12일자 4면 ⓒ 동아일보PDF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은 충격적이었지만 대반전의 기회는 충분했다. 여기서 대반전이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김기춘 실장이 사표수리를 건의했다손 치더라도, 박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한 후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지시했더라면 박 대통령의 선택은 돋보였을 것이다. 리더십 의혹도 상당부분 해소되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시했더라면 그는 출석할 수밖에 없었다. 대내외 압박도 컸을 것이고 대통령의 의중을 이해한 여당에서 '동행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불출석한다면 관련법에 의거, 고발도 가능했다. 박 대통령이 그의 국회 출석을 지시했더라면 그의 출석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에게는 '꽃놀이패'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참모들이 위 내용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회찬 전 의원 등은 실제로 김 전 수석에 대한 사표를 반려하고 국회에 출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SNS상에서 펴기도 했다. 야당의 총공세에 여러 가지 대응책을 생각했을 것이고 '사표반려 후 국회 출석'도 선택옵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이 박 대통령이나 김기춘 실장 입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우발적 행동이라 하더라도, 즉각적인 사표수리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불출석한 김영한 전 수석에 대해 야당에서는 '여야 합의만 하면 민간인 신분으로도 증인석에 세울 수 있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민간인 신분으로라도 부르겠다는데 사표 수리라니, 그리 급했던가. 해석이 어려운 대목이다.

결국 모든 일은 박근혜 뜻대로

김기춘 거취에 관심 집중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 직전에 터져나온 청와대발 항명사태로 인해 모든 관심은 김기춘 실장의 거취에 쏠리고 있다. 이를 보도한 <중앙일보> 1월 12일자 4면
김기춘 거취에 관심 집중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 직전에 터져나온 청와대발 항명사태로 인해 모든 관심은 김기춘 실장의 거취에 쏠리고 있다. 이를 보도한 <중앙일보> 1월 12일자 4면 ⓒ 중앙일보PDF

박근혜 정부는 몇 번의 위기를 잘 모면해 왔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파문도 결국 헤쳐 나왔다. 2014년 세월호 대참사를 겪었지만 매달리는 유가족을 외면하고도 지지율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 말 터져 나온 '정윤회 문건'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힘겹게 헤쳐 나오는가 싶었는데 2015년 초부터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파문이 권력 기반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다.

민정수석의 항명은 충격적이지만 앞선 두 사건(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참사) 대비 그 자체로 갖는 의미는 가볍다. 주목할 대목은 '항명'을 통해서 청와대의 권력 민낯이 그대로 국민들 앞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이번 항명은 공개적이었고, 노골적이었다는 대목에서 파장이 더 크다. 김기춘 실장이 부하직원들 앞에서 충(忠)을 강조한 게 엊그제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다른 선택은 생각도 하지 않은 것처럼 다음날 즉시 김영한 전 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국회 증언대에 서지 않게 됐다. 여야가 합의하면 민간인도 증언대에 세울 수 있으나, 여당이 합의해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김영한#김기춘#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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