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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 406호 대법정에서는 약 10분 짜리 CCTV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복면을 쓴 남자와 다른 남자가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 끝에 뒤엉켜 화면 좌측 아래쪽으로 사라졌다. 약 1분 40초 후 복면을 쓴 남자가 혼자 다시 화면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 들고있는 손도끼가 선명했다.

지난 3월 3일 새벽 0시40분경 강서구 재력가로 알려진 송아무개씨가 살해당하는 장면이었다. 법정 안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영상에 고정됐지만, 오직 한 명만 애써 고개를 숙여 외면했다. 그는 영상이 재생되는 내내 오열했다. 화면에서 복면을 쓴 남자, 송씨를 살해한 팽아무개씨였다.

재력가를 청부 살해한 혐의(살인교사)로 구속 기소된 김형식(44) 서울시의회 의원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됐다(형사합의 11부. 재판장 박정수). 10년 지기라는 두 친구가 나란히 법정에 섰다. 두 사람은 모두 옅은 녹색 수의를 입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은 피고인석에 앉았고, 다른 한 명은 증인석에 앉았다. 둘은 친구였지만, 증인석에 앉은 팽씨는 김 의원이 시켜서 송씨를 살해했다고 주장했고, 피고인석에 앉은 김 의원은 팽씨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했다.

두 친구 : CCTV 영상에 오열한 팽씨-무죄 주장하는 김 의원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7월 3일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를 나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7월 3일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를 나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다. ⓒ 연합뉴스

검시보고서에 의하면 팽씨는 손도끼의 등으로 송씨를 15번 내리쳤다. 검사가 팽씨에게 물었다. 왜 손도끼의 날이 아니라 등으로 내리쳤냐고. 팽씨는 "마음 속에는 그러면(살인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라고 답했다.

검사는 팽씨에게 왜 열쇠를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금고에 가지 않았고, 송씨의 지갑과 손가방에 있던 120만 원을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팽씨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차용증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며 "정신이 없어서 차용증만 찾았다"고 진술했다. 그가 말하는 차용증은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살해당한 송씨로부터 5억2천만 원을 받고 써줬다는 문서다.

팽씨는 일관되게 자신의 범행은 김 의원의 부탁을 받고 벌인 일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2012년 4월 경 첫 모의를 한 이후 김 의원이 자주 자신에게 송씨 살해를 부탁했다면서 "처음엔 차용증을 찾아오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차용증도 필요 없고 죽이기만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팽씨의 증언을 핵심 진술 증거로 전면에 내세운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로 ▲ 두 사람의 통화가 대포폰과 공중 전화로만 이루어졌다는 점 ▲ 각종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내용 ▲ 범행의 결정적 시기에 집중된 통화와 메시지 교환 시기 ▲ 김 의원이 체포된 이후 팽씨에게 전달한 쪽지 3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검찰의 논거에도 약점은 있었다. 물증으로 내세운 증거들은 살인을 직접적으로 지시했다고 보기에는 조금씩 부족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11월 4일 팽씨가 김 의원에게 "애들은 10일 들어오는 걸로 확정됐고, 오면 바로 작업할거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검찰은 여기서 '애들'이 살인청부업자를, '작업'은 살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의미일 수 있다.

또 그해 9월 19일 보냈다는 "오늘 안되면 내일 할꺼고, 내일 안되면 모레 할꺼고, 어떻게든 할꺼니까 초조해하지 마라"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런 메시지의 대부분이 김 의원이 팽씨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반대로 팽씨가 김 의원에게 보낸 것들이다.

검찰의 약점

 지난 7월 3일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수천억 원대 자산을 지닌 재력가를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고 있는 팽아무개씨가 서울 강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3일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수천억 원대 자산을 지닌 재력가를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고 있는 팽아무개씨가 서울 강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팽씨가 김 의원에게 보낸 메시지 중에는 정반대로 해석되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범행 이후 중국으로 도피한 이후인 지난 3월 20일 김 의원에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친구란 놈이 친구를 이용하고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다, 절대 나를 용서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팽씨는 살인교사 은폐를 위해 김 의원의 지시로 거짓 내용을 남긴 것이라고 말했고, 검찰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런 약점을 김 의원 측은 적극 파고들었다. 정훈탁 변호사는 "팽씨가 부모와 자식, 친구에게 썼던 (김 의원에게 유리한 내용의) 유서와 같은 메모를, 김 의원이 쓰라고 해서 썼다는 주장을 검찰은 그냥 다 믿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 측은 살인교사라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무엇보다 정 변호사는 검찰이 추측하는 김 의원의 살해 동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송씨 소유 토지의 용도변경을 대가로 5억2천만 원을 받았다가 용도변경이 어렵게 되면서 압박을 받다가 살해를 교사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정 변호사는 문제의 빌딩 부지는 용도변경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증축이나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는 상태라고 반박했다.

또한 "김 의원은 5억2천만 원을 받은 바 없다"면서 "송씨의 통장에도 그런 돈의 흐름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범죄의 동기도 없고, 범죄의 대가도 없으며, 팽씨의 거짓말만 난무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검찰 조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던 김 의원 측은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과연 누구 말이 진실일까. 시의원을 하는 친구가 백수와도 같은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이용해 살인을 교사한 사건인가, 아니면 돈가방을 노린 강도를 벌였다가 피해자가 사망하자 친구를 끌어들여 형량을 줄이려는 사기인가. 그 판단은 12명의 국민배심원단에게 달려있다.

이번 국민참여재판은 이날부터 오는 27일까지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 6일간 집중심리로 열린다.


#김형식#살인#살인교사#강서구 재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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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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