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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애들아. 땅을 그만큼 갈아주었으면 됐다. 이제 너희들의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거듭날 것이니 기쁘게 호미날을 맞아주었으면 한다. 하긴 네게 호미날을 들이대는 나라고 하여 별 다를 게 있겠니? 이렇게 죽을 등 살 등 열심히 해서 결국은 뒤에 올 누군가의 거름이 되겠지." (본문 중에서)

잡초 한 포기도 정성으로 돌보며, 뽑아서 기(氣)를 꺾어야 할 때에도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 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에게 잡초는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풀이 아니다.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절망의 나날을 보낼 때 그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잡초이야기가 있다. <야생초편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황대권씨의 이야기다. <고맙다 잡초야>는 그의 두 번째 야생초편지라고 할 수 있다. 교도소 출감 이후의 산속생활과 생태공동체를 이뤄가는 이야기를 썼다. 하늘, 땅, 사람의 천지인(天地人)사상을 근본으로 이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과 성찰하는지 담았다.

문명의 유혹에 빠져 자연에서 멀어진 인간

 <고맙다 잡초야>(황대권 지음 / 도솔 펴냄 / 2012.10 / 1만 3000원)
<고맙다 잡초야>(황대권 지음 / 도솔 펴냄 / 2012.10 / 1만 3000원) ⓒ 도솔
장작을 패서 피운 모닥불, 혹은 군불을 때는 아궁이를 바라보며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장작불 명상을 최고로 치는 그는, 숲에서 인도식으로 용변을 보거나 운전을 하면서도 명상에 빠져들 수 있다고 한다.

땡볕 아래에서 알몸으로 김매기를 하고, 햇볕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로 아픈 몸을 치유하는 명상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성관계 시의 오르가즘과 비슷한 느낌을 얻는단다. 일상적인 삶에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명상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있다. 마치 도인(道人) 같기도 하다.

그는 출소 후에 전남 영광의 산골로 내려가 생태공동체 운동센터를 만들고 생명평화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생태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인간중심주의의 반대라고 일침을 놓는다.

"사람들은 흉측하게 생긴 동물을 보고 진저리치면서 신이 왜 저런 걸 만들어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의아해한다. 반대로 쓸모 있는 동식물을 보면 이들이 모두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멋대로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인간이 만든 문명기술의 발전을 인류 전체의 발전으로 착각하는 것도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지구 전체의 생태계가 멸망하고 있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탐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인간만 사라지면 지구를 되살릴 수 있다'는 자조 섞인 말마저 나오겠는가.

산업화된 도시는 생태계 파괴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도시중심의 문명기술은 농경사회를 파괴하고 수탈했다. 함께 어울려 일하고 나눴던 공동체를 해체했다.

거대한 콘크리트로 둘러쳐진 도시감옥 안에 인간을 불러 모아, 가치 없는 노동의 대기자로 만들어 놓는다. 끝없는 물질 소비가 풍요로운 삶의 행복지수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지속가능한 삶이 아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야 할 자연을 갈취한 장물에 불과하다.

"말로 밥을 지을 수는 없다"

IMF 외환위기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운동'을 하던 사람 중에서도 농촌공동체를 회복하고 생태적인 삶을 살겠다며 귀농 대열에 여럿 뛰어 들었다. 이들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농촌 속으로 들어갔다.

해마다 귀농 인구가 늘고 있는 점도 도시에서의 삶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는 근거다. 하지만 반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농촌생활이 그만큼 만만치 않았음을 겪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여전히 도시의 것을 찾고 있는데 몸만 옮겨갔으니 견딜 수가 없다.

저자는 귀농인이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도 여러 상황에 맞춰 조언을 해준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혁명은 귀농이고, 나약한 지식인에게 농촌과 흙은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현장이라고 말한다. 도시처럼 '관념'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는 농촌에서 '경험'이 없으면 굶는 수밖에 없다. 그는 효율성만을 따지는 나약함을 안타까워한다. 실제로 하고 또 하다보면 묘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며 중국 속담 "말로 밥을 지을 수는 없다"는 조언을 한다.

"단 돈 몇 천 원이면 마트에 가서 한 순간에 끝낼 일을 며칠을 두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현실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귀농은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화 이전에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먹고사는 게 으레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마음에 그어놓은 경계선만 살짝 넘으면 얼마든지 '편한' 삶이 가능한 시대인지라 특별한 철학이나 의지가 없으면 끊임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본문 중에서)

만약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고 생태와 평화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개인 위주의 삶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고맙다 잡초야>를 통해서 공감(共感)할 것이 많다. 그 결실을 맺기 위해서 집착하지 않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어떤 대가를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말로 내가 했지만 내가 했다는 의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의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지혜를 따라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고맙다 잡초야>(황대권 지음 / 도솔 펴냄 / 2012.10 / 1만 3000원)



고맙다 잡초야 - 야생초 편지 두 번째 이야기

황대권 글.그림, 도솔(2012)


#고맙다 잡초야#무주상보시#귀농#잡초#황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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