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 이사합니다. 무려 11년 만입니다. 여태 나이만 먹었지 돈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사는 집도 남의 집입니다. 하지만 내일 이사하는 집은 이제 '내 집'이 됩니다. 저는 지금 한 회사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33년 만에야 비로소 내 집을 장만하는 셈이죠. 그래서일까요... 청소 하러 어제 그 집에 가서 땀깨나 뺐지만 기분은 마치 나들이를 가는 봄 처녀인 양 낭창낭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비록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빌라긴 하지만 말이죠. 지난달까진 업무 형태가 '주야비(주간, 야간, 비근무)'의 반복이었습니다. 즉 하루는 주간근무, 이튿날은 야근, 야근을 마친 다음날엔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경비원들의 은어입니다.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 '의리'로 뭉친 동료들
저희들의 이구동성 '청원'으로 이번 달부턴 '주주야야비비'로 바뀌었습니다. 즉, 야근을 모두 마친 어제 아침부터 오늘까지 쉬어도 된다는 거죠. 내일도 아내가 수술 후유증으로 꼼짝을 못 하는 바람에 다른 직원에게 대근(대신 근무)을 부탁해 놓았습니다. 이사도 해야 하고요.
따라서 내일까지 휴일이지요. 다른 직업과 달리 경비원은 다른 동료가 대근을 해주지 않으면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습니다. 원초적 숙명을 안은 '노예'랄까요. 하지만 평소 제가 의리를 유지해 온 덕분인지 부탁만 하면 다들 흔쾌히 대근을 해주네요. (이 기사를 빌어 우리 경비원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와 늘 교대 하는 경비원은 요즘 무려 1시간이나 일찍 출근해 바꿔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 동료가 더욱 고마운 건 물론이지요. 인지상정이겠지만 10시간을 일하는 주간과 달리, 14시간 근무하는 야근의 경우, 1시간만 일찍 교대해줘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경비원 일을 해 보신 분들은 익히 아는 상식이지요. 사흘 전에도 그 동료는 평소의 교대시간인 오전 7시 대신 오전 6시 5분에 출근해 저와 교대를 해줬습니다.
"어휴~ 너무 일찍 나오셨네요?" "아닙니다, 홍 형은 늘 그렇게 한 시간 일찍 나오시잖아요? 그러니 저도 의리를 지켜야죠." 그 말에 저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지요.
"맞아요 하하. 남자는 역시 의리 빼면 시체니까요. 아무튼 의리가 살아있어 고맙네요!" 최근 들어 새삼 각광을 받고 있는 '의리'. 이 말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습니다. 앞으로도 동료들과 의리를 지키며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