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 지금 반성하고 있는 겁니까? 어떻게 그렇게 얼굴을 뻔뻔하게 들고 있습니까." "어떻게 애를 그렇게 때려! (피해자) 부모는 생각해봤어요?" 방청석에서 나온 울분에 찬 목소리가 피고인들에게 내리 꽂혔다. 법정 오른편에 앉아 헌병에게 둘러싸인 하아무개 병장과 이아무개 병장, 지아무개 상병 등 피고인 6명은 굳은 표정으로 제각각 고개를 푹 숙이거나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5일 오전 10시께, 경기 양주시 제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건 4차 공판(재판장 이명주 대령)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에서 국방부 검찰단은 피고 이아무개 병장에 대해 강제추행과 가혹행위 혐의를 추가했다. 윤 일병 집단구타 사건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뒤늦게 혐의를 더한 것이다.
군 검찰 측은 "이 병장은 지난 4월 6일 오전 10시경 생활관에서 대답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가래침을 뱉어 피해자 윤 일병이 핥아먹도록 했다"며 "윤 일병의 손에 안티푸라민을 짠 뒤 스스로 자신의 성기에 바르도록 해, 가혹행위 및 강제추행을 했다"고 말했다.
군 검찰은 이어 재판을 상급부대인 3군 사령부로 이관하는 한편, 집단구타로 윤 일병을 숨지게 한 선임병 4명에게 살인죄를 적용할지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권동선 28사단 정훈공보참모는 "살인죄 부분은 국방부 검찰단에서 추가 수사와 기록 검토 후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10시 5분께 시작된 재판은 10여분간 짧게 진행된 뒤 끝났다.
"아들 잃은 엄마는 어떻게 살지..." 이날 재판은 법정을 가득 메운 시민 80여 명으로 인해 잠시 휴정되기도 했다. 일부 시민은 방청석이 부족해 법정 뒤편과 복도에 선 채로 재판을 봐야 했다. 군인권센터와 함께 법원을 찾은 법정감시단 시민들은 재판이 끝난 후 가해자로 지목된 피고인들을 향해 날선 비판을 던졌다.
이들은 "어떻게 얼굴을 저렇게 뻔뻔하게 들고 있나"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나" "진짜 잘못하신 거예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구타 및 가혹행위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아무개 병장은 피고인석에 앉아 내내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옆에 앉은 하아무개 병장은 울먹이는 표정을 짓다가 끝내 고개를 떨궜다. 피해자 윤 일병의 유족은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법정감시단에는 주로 자녀를 최근 군대에 보냈거나 곧 보낼 예정인 부모들이 참여했다. 자녀를 군대에서 잃은 어머니도 있었다. 2011년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의료사고로 아들 노우빈(당시 21세) 일병을 잃은 공아무개씨는 재판 후 법원 앞에서 "높은 사람 아들이 죽으면 모를까, 나같이 힘없는 사람들 아이가 죽으면 나라가 안 바뀐다"며 눈물을 흘렸다.
공씨는 "우리 아들도 살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았는데 병원 한 번 못 가고 죽었다"며 "(윤 일병의)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힘 없는 사람들이) 사람다운 대접도 못 받는 이 나라가 정말 싫다"며 흐느꼈다(관련기사
: "애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군대가 바뀔까요"). 공씨 손에는 '원통한 세상에 눈물이 난다, 윤 일병 어머니를 지켜주세요'라 쓰인 쪽지가 들려있었다.
이후 시민들은 보라색 풍선과 리본, 윤 일병에게 보내는 쪽지를 28사단 부대 입구 정문에 붙이고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윤 일병. 아들아, 좀 더 반항하지 왜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니, 그 곳에서는 편히 쉬어라"라고 쪽지를 쓴 강아무개(49)씨는 "군대에 있는 내 아들이건 남의 아들이건,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고인 이 병장, 하 병장, 이 상병, 지 상병은 상해치사와 공동폭행 및 폭행 등 혐의로 지난 5월 2일 기소됐다. 다음 재판 기일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은 재판 후 브리핑에서 "사단장과 6군단장이 성추행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가해자들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본다, 살인죄가 (혐의에) 추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