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맛깔난 밥상은 가슴을 뛰게 한다. 가슴 뛰게 하는 음식들을 먹고 나면 행복감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다.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이 죄다 입에 맞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실은 한두 가지만 맛있어도 밥 한 공기 먹는 데야 별 문제가 없다. 맛집 하면 다들 근사하겠거니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나는 '맛돌이'라는 닉네임으로 수 년째 다음 블로그에 매일 맛집 탐방기를 쓰고 있다. 맛보고 느낀 그대로 솔직담백한 글을 쓰려고 애쓴다. 하지만 홍보성 블로그와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독자들이 내 글을 그런 부류의 글과 싸잡아 볼 때는 매우 속상하다.
물론 신뢰도를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야겠지만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그럴 필요성까지는 아직 못 느낀다. 그저 맛보고 '이 음식 맛 진짜 괜찮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면 소개하곤 한다.
오늘 선보일 음식은 좀 특이하면서도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음식들이다. 우리 곁에서 자꾸만 사라져가는 이 음식이 오래오래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담고 있다. 이 여름철에 먹으면 정말 행복한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옛날 지역 유지나 군수가 먹었다는 벌교장의 '대갱이무침'
정말 못생겼지만 그 맛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대갱이무침이다. 옛날에는 지역 유지나 군수 정도는 되어야 맛볼 수 있었다는 대갱이는 한때 일본으로 죄다 수출해 서민들이 맛보기 힘들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장에 가면 맛볼 수 있는 이색별미 대갱이의 본이름은 '개소겡'이다. 장어를 닮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험상궂다.
"남자들에게 장어보다 좋아요. 옛날엔 돈 많은 사람들만 먹었어요."옛날에는 지체 높은 양반들만 먹었다는 귀한 이 녀석 한 묶음(1만 원)을 사들고 동막식당을 찾았다. 장꾼들에게 밥과 술을 파는 아주 자그마한 식당이다. 벌교장에서 대갱이를 구입해 이곳 주인아주머니 조덕심씨에게 부탁하면 실비로 요리를 해준다. 막걸리 한 병에 2천 원, 양념 값은 5천 원이면 충분하다.
아주머니가 대갱이를 방망이로 북어 패듯 두들겨 뼈를 발라내고 구워내 갖은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냈다. 막걸리 한잔이 곁들여지니 금상첨화다. 밥반찬으로 인기지만 술안주로 내놓으면 자꾸만 손을 바쁘게 하는 이 녀석의 매력 정말 아무도 못 말린다.
야들야들한 감칠맛... 입맛 사로잡는 구례장의 '수구레선지국밥'
다음 전남 구례군 구례장터의 수구레선지국밥이다. 낯선 이름의 이 음식은 사실 따지고 보면 별미음식이다. 구례장에 가면 장옥 초입의 한 식당에서 주인아주머니 박경화씨가 가마솥에 국밥을 끓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당긴다. 좀 별난 식재료인 수구레에 대해 묻자 아주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소코뚜레부터 목과 가슴 부위의 껍질과 살 사이에 있는 부분입니다. 껍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도 아닌 특수부위지요. 질긴 고기예요."소의 살과 껍데기 사이의 층인 수구레는 콜라겐 덩어리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야들야들한 감칠맛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요리방법과 도축기술의 발달로, 예전에 다 버려졌던 게 별미 식재료로 떠오르고 있다.
수구레선지국밥은 제피(초피)와 음식궁합이 참 잘 어울린다. 제피를 넣어 먹어야 수구레선지국밥의 참 맛을 제대로 즐길 수가 있다. 해독작용이 뛰어난데다 불면증에 좋다는 산초가루는 혓바닥을 톡 쏘는 독특한 향이 특징이다. 구례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음식이다. 이곳은 몇 해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 <1박 2일>과 <한국인의 밥상>에 소개되어 이제 구례장의 명소가 되었다.
힘 펄펄 갯장어... "여름철 보양식으로 진짜 끝내줘요"
"입맛 없고 나른한 여름철, 원기 북돋우는 데 사실 이만한 게 없죠." 전남 여수시 경도 풍경횟집의 주인장 조성열씨가 갯장어를 손질한다. 스무 살 시절에 갯장어(하모)잡이 배를 탔다는 그는 갯장어 손질의 달인이다. 공중파 방송의 <생활의 달인>에도 출연했다. 갯장어와 함께한 세월이 올해로 36년째다.
힘이 펄펄 넘치는 갯장어다. 집나간 입맛까지 찾아준다는 갯장어는 여름철에 회나 샤브샤브로 즐겨먹는다. 회는 고소한 단맛의 풍미와 식감이 좋으며 특제 육수에 3~4초 정도 살짝 데쳐먹는 샤브샤브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육수에 손질한 하모를 넣을 때는 껍질 부분이 아래로 향하도록 데쳐내야 살이 부서지지 않는다.
갯장어의 머리와 뼈를 푹 고아낸 국물에 대추, 마늘, 녹각, 인삼, 양파 등을 넣어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샤브샤브로 데쳐 먹는다. 이곳 육수에 불린 쌀이나 라면 사리를 넣어 끓여내면 맛깔난 후식까지 해결된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갯장어를 '해만'이라고 하며 "악창(고치기 힘든 부스럼)과 옴, 누창(피부에 잔구멍이 생기어 고름이 나는 부스럼)을 치료하는 데 뱀장어와 같은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입은 돼지같이 길고 이빨은 개(犬)처럼 고르지 못하다"며 '견아려'라는 이름으로 소개돼 있다. 이는 뭍의 보양음식인 개고기와 바다의 갯장어를 동일시하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에 떨어지는 건 남편의 월급이라지만 그래도 올여름에는 다들 보양식 챙겨먹고 '파이팅' 해보자. 정성 가득한 이러한 음식들이 기를 충전해준다. 또한 이렇듯 좋은 음식을 먹으면 이 여름이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