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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것

얼마 전 강의를 하러 갔는데, 색다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강의에 앞서 사회자가 강의 순서와 시간 안내를 마치고는 수강자들에게 위급한 경우 대피요령과 대피로에 대해서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같았으면 "뭘 이런 것을 하나?" 했을 법한 수강자들도 안내를 진지하게 들었고, 사회자 역시 요식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진지하게 안내를 하는 것이다.

근 이십여 년 동안 전국 여러 곳에서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강의하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며칠 뒤 직장 근처에 신장개업한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돈 좀 들인 듯한 깔끔한 인테리어 벽에 위난 시 대피 안내와 대피도가 떡하니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쩐지 미관상 그 벽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그 표지판이 당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과 대피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달라지기는 달라졌다. 공공건물들은 요즘 비상계단에 굳게 잠겨있던 자물쇠를 철거하고, 화재 시 자동 열림 문을 설치 중이다. 참사의 충격은 주변의 안전을 살피게 했고, 언제 또다시 망각의 강을 건널지는 모르지만, 시민 안전문화는 변화하고 있다.

여전한 것

그러나 기이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시민의 안전은 지상 과제가 된 것 같은데, 정작 시민의 다수인 노동자의 안전은 제자리걸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등에서 하청노동자의 어처구니없는 중대재해는 반복되고 철도의 정비 인력은 계속 줄고 있다.

역설적으로 공항의 경비와 소방 담당 노동자들은 모두 외주 하청 비정규노동자로 대체되고 있는데, 정작 이들은 필요할 때 안전과 소방의 권한을 행사할 수가 없다. 모든 권리는 원청인 공항 공사에 있는 것이다. 공공의 편리와 안위에 힘써야 할 공공부문 노동자는 인력감축, 민영화, 외주화, 예산감축 때문에 자신의 안위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119 구조대원의 헤어져 구멍 난 장갑은 공공의 안위를 수호하는 현장 노동자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태도와 세상 관심의 속절없음을 상징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생각해보니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 씨랜드 화재, 해병대 캠프 참사 등 모든 인재는 여지없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과 이에 결탁한 권력에 의한 참사가 아니었나. 일부 부패한 공무원과 천한 자본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온 나라 전체가 비용절감, 하청의 하청을 당연시하고, 기업 하기 좋은 우리 고장을 목이 쉴 때까지 외치고 있는데 일부의 문제라니? 아니 될 말씀이다. 이윤이 항상 우선이라는 반사회적인 천박한 탐욕이 영민한 현실인식으로 받아들여지고, 공동체의 안위보다 그들만의 리그를 걱정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호의호식하는데 어떻게 참사가 멈추고, 노동자의 건강과 삶이 안온할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마음으로 종이배를 접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마음으로 종이배를 접고 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달라진 것이 유지되고, 달라져야 할 것이 달라지는 길

많은 사람이 이런 인재를 잊지 않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잊히지 않기 위해 개인의 기억력과 정의감에만 의존할 수 없다. 구속과 죽음 등 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에도 광주항쟁이 잊히지 않고 역사 속에 살아 숨 쉬었고, 역사의 한 장으로 새겨진 것은 그때 사건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투영하여 부당한 권력에 맞서 투쟁하였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세월호의 희생자를 추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추모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이쯤에서 덮고 가자는 자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니 반성하자는 자들, 철저히 원인을 밝히고 유착의 고리를 끊자는 자들. 과연 누가 사건을 역사로 만들지는 자명하다. 과연 누가 달라진 것을 유지하고, 달라져야 할 것을 달라지게 할지 역시 자명하다. 문제는 이들이 승리할 때야 비로소 그렇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재광 기자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집행위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 7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세월호#안전#세월호 특별법#규제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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