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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유럽, 그 가운데서도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나 야수파, 입체주의 등 다양한 사조의 미술이 '벨 에포크'라는 이름 아래 활짝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세계대전은 세계의 패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아가도록 만든 도화선으로 작용하였다.

 

가만 보면 정치-경제적인 패권만 미국으로 옮겨진 게 아니다. 문화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미국은 유럽에서 옮겨진 예술가들 덕으로 수혜를 입게 된다. 이는 히틀러의 나치즘을 피해 프랑스에 모여 있던 많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미국에서 문화의 꽃을 피운 덕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대전은 예술가의 탄압을 불러일으켰지만 히틀러의 탄압은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문화의 자양분을 꽃피울 수 있는, 반대로 유럽은 문화적 토양을 미국에게 일부 양보할 수밖에 없는 역설로 바뀐 셈이다.

 

전후 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른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미술 사조를 팝 아트로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기존의 미술 사조라면 당연히 배척할 만한 대중문화적인 시선을 미술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면서 팝아트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20세기, 위대한 화가들>은 인상주의부터 현대의 팝아트에 이르기까지의 폭넓은 사조를 아우르는 전시다. 한 시대의 문화적 사조만 읽는 전시가 아니라 시대가 변천하면서 미술도 어떤 흐름으로 방향키를 틀었는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공식적인 석상에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얼굴 없는 예술가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뱅크시의 작품 하나를 보자. 전경은 평화 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경찰이다. 무력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혹은 치안을 위협하는 폭력을 가라앉히기 위해 전경은 보통 경찰과는 달리 진압봉이나 총, 방패를 들고 등장한다. 한데 그의 얼굴을 살펴보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작품 가운데 하나인 뱅크시의 '날고 있는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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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위대한 화가들작품 가운데 하나인 뱅크시의 '날고 있는 경찰관 ' ⓒ 프랑스 오페라갤러리그룹

한껏 무장한 채 공권력을 행사할 준비를 잔뜩 하고 있는 전경의 폭력적인 이미지를 상쇄하는 평화로운 얼굴도 모자라서 등에는 천사의 날개까지 달았다. 뱅크시는 '날고 있는 경찰관'이라는 작품을 통해 영국이 테러의 위협을 막기 위해 전투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오작동'이라는 점을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폭력을 막기 위해 공권력이라는 다른 이름의 폭력을 끌어들이고 강화하는 것을 웃는 얼굴과 천사의 날개로 희화하고 풍자하는 것이다. 공권력이라는 폭력을 폭력의 이미지로 비판하는 게 아니라 전경과 맞지 않는 평화로운 이미지를 끌어들여 반어법적으로 영리하게 비판한다.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에 전시 중인 작품 가운데 하나인 키스 헤링의 ‘빨강, 노랑, 파랑 #6’
20세기, 위대한 화가들에 전시 중인 작품 가운데 하나인 키스 헤링의 ‘빨강, 노랑, 파랑 #6’ ⓒ 프랑스 오페라갤러리그룹

관객이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를 바꿔놓는 게 뱅크시만 가능하다고 하면 <20세기, 위대한 화가들>의 다른 전시품들이 섭섭할 터. 키스 헤링의 '빨강, 노랑, 파랑 #6'를 보면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각품 '성 테레사의 황홀경'을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원작인 '성 테레사의 황홀경'에서 떠오르는 엄숙주의는 키스 헤링의 작품 가운데서는 도무지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키스 헤링이 재해석한 성 테레사는 가슴에서 흰색 액체를 뿜어대기 바쁘다. 테레사라는 성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발칙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베르니니의 원작에 있는 날개 달린 천사는 '빨강, 노랑, 파랑 #6' 오른쪽에서 테레사의 물줄기를 받아내는 파란 형체나 성 테레사의 왼쪽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존재, 혹은 성 테레사가 앉아 있는 찌그러진 붉은 남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단 두 작품만 보더라도 기존의 미술 사조와는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재해석하거나 정반대의 시각으로 읽을 수가 있지 않은가. 미술을 바라봄에 있어 고전적인 시각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품을 사유할 수 있는, 시각의 폭을 키울 수 있는 전시가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전시회가 아닌가 싶다.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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