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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밤을 잊은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가슴에 품고 음악을 들었다. 볼펜을 꾹꾹 늘러가며 노래 가사를 받아쓰고, 가슴 졸이며 녹음을 하고, 마음에 오래오래 담아 두었다. 요즘은 클릭과 스킵을 하면서 음악을 빠르게 구하고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다 쓰면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쉽게 소비한다. 한때는 소녀였고 지금도 소녀라고 믿고 싶은 우리는 [올드걸의 음악다방]에서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마음 깊숙한 곳에 소장했던 노래를 꺼내 듣고, 누군가는 새로 알게 된 노래를 즐겼으면 좋겠다... 기자말

 올드걸의음악다방
올드걸의음악다방 ⓒ 반지윤

안녕. 잘 지내니? 아까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데 저쪽에서 먹구름이 마구 몰려와 당장에라도 비가 쏟아지려는 거야. 굉장했지. 여의도 하늘이 온통 까맸으니까. 그런데 그 사이로 63빌딩이 '짜잔' 하고 보이지 뭐야. 63빌딩을 본 순간 바로 이 노래가 생각났어. 기억나니?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신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내가 김현식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들은 것도, 신촌블루스를 알게 된 것도 다 네 덕분이었지. 당시 넌 구파발 삼송리를 지나 시외버스 내려 먼지 풀풀 시골 길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는 지구레코드사에 다녔고, 촌스런 우리는 "영문과 수재가 웬 음반회사냐?"며 의아해했었지.

너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된 건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신촌블루스의 콘서트에 초대받고서야. 63빌딩이라면 수족관과 뷔페지, 콘서트장도 있었나. 신촌블루스는 또 누구야. 웬 촌스러운 이름! 이건 정말 대단한 무지였지. 그날은 한마디로, 굉장했어. 로비를 가득 돌아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입장을 앞두고 속닥속닥 정신없이 이야기에 열중하고 살짝씩 몸을 흔들기도 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흥분된 열기가 터질듯하더라고. 두 시간 동안 낯선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었어. 

나는 밴드 신촌블루스는 잘 몰랐지만, 그 콘서트에는 유명한 가수와 그들이 부르는 노래로 가득했지. 거기에 기타 치고 노래하는 이정선이 있었어. 맑은 목소리에 기타입문자들을 위한 교본으로도 유명한 그 이정선 말이야.

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로 알아본 건 김현식이었어. 회사원같이 평범한 모습에 거친 목소리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 제끼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다니. 바람과 비와 골목길 그리고 당신을 연이어 부르는 모습은 꾸밈없는 날 것 그대로였지. 경이로웠어. 편안하기도 하고. 초대가수로 이문세가 등장했을 땐 어찌나 반갑던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는 전혀 몰랐어. 거친 들국화의 포효하는 파마머리는 알았어도 가느다랗고 긴 생머리를 아래로 하염없이 늘어뜨리고 리듬에만 몰두하는 기타리스트를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어. 기타를 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른 몸을 기타가 지탱해 주는 것 같더라고. 너의 귀띔도 있었지만 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그의 솜씨는 굉장했어. 관객도 잊고 무대도 잊은 것 마냥 몰두한 그 모습. 연주자도, 무대도, 관객도 없이 음(音)들만 떠다니는 듯 소리만으로 가득한 공간. 그래, 그건 꿈같아. 그래서일까? 시간이 가도 그날 기억은 선명해.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은 김현식을 생각해. 그리곤 말해. 그는 떠났지만, 노래는 여전히 흐른다고. 그러나 나에게 그는 '초대'를 의미해.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날 낯선 세계에서 날 것과 만난 장면이 떠올라 언제나 설레. 별 일 없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잘 아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말이야.


#올드걸의음악다방#김현식#비처럼 음악처럼#63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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