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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흥분이 샘솟는다. 문자가 없었던 원시사회에서도, 공상과학소설의 내용이 현실이 되어가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개념이 근대 사회학의 거장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집단적 환희(Collective effervescence)'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휘감는 광기와도 같은 열정! 수십 년 전 마을회관에 모여 흑백 테레비로 김일의 박치기를 보면서, 그리고 불과 며칠 전 영동대로에서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면서 느꼈던 바로 그것이다. 뒤르켐은 이 집단적 감정이 개인을 공동체에 결속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 감정을 처음 느낀 것은 한 종교집회에서였다. 무대 위의 밴드가 공연을 하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저마다 손을 높이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방방 뛰더니 급기야는 거의 통곡을 하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외쳐댔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그저 서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몇 번 쌓이고 나서는 차츰 마음이 동했고, 언제부턴가 나도 그들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소리 높여 기도하고 있었다.

신앙생활을 몇 년 정도 열심히 하다 문득 회의가 들었다. "여기서는 내가 겪는 고민에 대한 이성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앙을 버리게 됐다. '형제자매'들과 순식간에 멀어졌다. 함께 노래하고 박수를 치며 예배가 끝나면 서로의 땀을 닦아주던 이들이다. 같이 환희하지 않고서는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걸까, 가끔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가 겪었던 신입생 환영회는 종교집회의 열기를 방불케 했다. 매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환영회의 하이라이트는 신입생들에게 술을 말 그대로 '바가지로' 먹인 뒤 구토를 하게 하는 특유의 의식이다. 이 자리에서는 원시사회 성인식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정형화된 의식을 통해 구성원들은 하나됨을 느끼고, 노래와 춤 등이 집단적 환희를 이끌어낸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매년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변명은 대개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또는 "우리끼리 즐기는 것이 대체 왜 문제냐" 정도에 그친다.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환희가 단순한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잠시 한 눈이라도 팔라치면 환희는 금세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광기(狂氣)'가 된다. 작은 목소리들은 집단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 거리응원이 우려스러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포츠를 즐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지난 두 달여 간 대한민국을 침통하게 했던 참사의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에, 응원전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는지 다행히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된 듯하다.

열광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이지 우리 모두 같다. 하지만 조심스러워야 한다. 환희에 휩싸인 상태에서는 본질을 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성이 아닌 감정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는 논리적인 비판도, 합리적인 토론도 불가능하다. 모두가 고무되어 한 목소리로 외치는 와중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구성원은 '찍힌다'.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나온 집회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 집단적 환희는 공동체 통합에 기여하는 동시에 타자(他者)를 배척할 수 있기에 위험하다.


#공동체#환희#종교#응원#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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