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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를 정읍 나들목에서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40분쯤 들어가면 순창군 쌍치면사무소가 나온다. 여기서 추령천을 따라 나오는 운암교를 건너 들어가면 운암저수지가 보이는 운암마을이다. 국내 으뜸가는 복분자 생산지를 알려주듯 마을은 복분자밭 천지다.

이곳에 교회 하나가 있다. 그런데 특이하다. 교회 옆에는 알프스 산의 아담한 집을 통째로 옮긴 듯한 공간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랍다. 파스텔톤으로 단장한 실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습놀이 교구와 책들로 꾸며지고 있다. 그런데 책꽂이 높이가 아주 낮다. 아이들의 키에 맞춰 책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고안한 설계다.

전북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군내로 나가려면 차로 40분을 달려가야 한다. 주변엔 온통 산, 논, 밭인 오지마을이다. 그래서 다들 미쳤다고 했다. 도시에서 목회하면 편할 텐데 왜 자청해서 시골로 들어가느냐고. 그것도 하필이면 산간 오지마을에.

 눈 온후의 쌍치소망교회 전경.
눈 온후의 쌍치소망교회 전경. ⓒ 우성익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시골의 초미니 교회로 옮기겠다니 모두 손사래를 쳤다. 사실 가진 돈도 없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더 힘든 것은 열악한 교회환경이었다.

시내로 나가려면 몇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것쯤은 각오했다. 게다가 이 교회의 성도는 고작 3명. 새로 부임할 목사와 아내, 초등학생 아들과 10개월 된 어린 딸을 포함해야 7명이었다.

지난해 12월, 사라져 가는 시골을 지키겠다는 소명으로 충남 천안의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다 순창 쌍치에서 산골 목회를 시작한 우성익 목사(42).

산간마을의 추위는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보일러는 고장 났고 20년 이상 된 낡은 건물의 우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은 바로 텐트. 바닥에는 전기장판을 깔고 가족이 겨우내 텐트 생활을 하면서 이곳의 사정과 이곳에 보내신 소명을 고민했다.

바로 쌍치 소망교회다. 성도들을 채우기 쉽지 않았다. 항상 꼴찌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교회는 동네 아이들 놀이터 정도로 치부할 정도. 목회자 충원 역시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초임 목사들도 이 교회를 꺼렸다. 우 목사가 산골 마을에 와서 시작한 일은 마을주민 1백여 명의 집을 방문해 만나고 고민을 듣고 예배하는 일이었다.

우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시작했다. 사실 처음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교회에 대한 소문들은 좋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교회와 마을은 이미 단절되어 있었다.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이미 정화력을 잃은 마을 교회를 더 걱정했다. 마을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을의 아이들은 우 목사 가족에게 관심이 많았다. 동네 어귀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호기심 어린 인사를 건넸고, 우 목사의 출신(?)을 물어왔다. 이들은 우 목사 가족에게 항상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예수나 교회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나마 우 목사 가족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존재들이라 다행히 목사로서의 위신은 섰다.

동네 아이들이라고 해봤자 초등학생 11명에 유아 2명이 전부였다. 그들은 문화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없는 환경에서 지냈다. 그는 일단 전공을 살려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해보고 싶었다. 빠른 기간 내에 교회가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목회자로서의 첫 마음이라도 잃지 말고 새로 시작해보자는 배수진이었다.

"사실 면 소재지까지 나가더라도 단 한 곳의 학원도 없습니다. 부임 초기 저희에게 음악학원만 차린다면 아이들을 모아주겠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영리를 목적으로 이곳에 온 온 게 아니니까, 그냥 듣고 흘려버렸죠. 하지만 아이들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교육과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는 산간벽지의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죠."

우 목사는 대학 시절 성악을 전공했고, 아내 정이화씨 역시 음악을 전공했기에 악기부터 직접 기초부터 단계적으로 지도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이들에게 마을의 멋진 음악 선생님으로 통했다. 처음엔 '우리 아이들도 신경 좀 쓰라'며 타박했지만, 보다 못한 아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이제는 아내가 먼저 나서 음악 선생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악기와 노래, 이야기가 있는 대자연 속의 나눔 향연은 최근 들어 많은 아이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마을 어르신들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금방 감정이입이 되어 울고 웃으며 수시로 교회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지난 5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을의 13명 아이 모두가 교회를 나오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교회로 나오자 관심을 보인 어른들도 교회를 나오기 시작해 7명이던 성도는 21명으로 급성장(?)했다. 마을주민들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자 그는 아직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지 결정도 못 내린 상황에서 또 하나의 고민이 보태졌다.

 지난 5월 마을의 13명 아이 모두가 교회를 나오게 된 기적이 일어났다. 정이화씨가 아이들에게 악기를 지도하고 있다.
지난 5월 마을의 13명 아이 모두가 교회를 나오게 된 기적이 일어났다. 정이화씨가 아이들에게 악기를 지도하고 있다. ⓒ 우성익

6개월 전, 처음 이사를 들어설 때만 해도 여기에 도서관이 서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자'는 것, 딱 하나로 시작했다. 그저 복분자 농사짓는 문제가 주민들의 꿈이자 한이었던 이곳. 도대체 어떻게 시작했을까.

"13명의 마을 아이들을 보고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시내 도서관에서는 마음껏 책을 볼 수 있고, 서점만 가도 실컷 구경할 수 있지만 여기는 새 책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 구경하다가 마음에 쏙 드는 책이 있다면 한 권 사서 두고두고 볼 수도 있을 테고요. 이 일을 위해 적금을 해지하고 일사천리로 독서논술지도사와 한국어 교원, 미술치료상담사, 음악치료상담사 자격까지 취득했지요."

 ‘꿈·땅 도서관’이 지어지기 전의 폐축사.
‘꿈·땅 도서관’이 지어지기 전의 폐축사. ⓒ 우성익

꽃을 심고, 교회 옆 폐 축사가 있던 구석 자리에 터를 잡았다. 흙 위에서 꿈을 펼치라는 소망으로 150여 평을 마치 아무런 손도 대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꾸미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을 현실로 바꾸려 하니 제약이 너무나 많았다. 교회의 1년 예산이라고 해봐야 고작 700만 원이니, 이 돈으로는 교회 운영하기에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쪼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교육과 문화공간을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컨테이너가 떠올랐다. 컨테이너 하우스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조차도 마련 할 수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그때 기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있었다. 바로 호남신학대학교 강성렬 교수였다. 강 교수는 학교를 통해 컨테이너구매비용을 모금하여 주겠다고 선뜻 허락했다. 이어 시내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인 순창 제일교회에서는 축사철거와 화장실 지붕개량, 그리고 터다지기 사업을 약속했다. 전임지였던 천안 서부교회에서는 도서관 건축비용을 후원했다.

우 목사의 꿈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로 시작하려고 했던 작은 공간이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건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도서관 건립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협조를 구하기 위해 군청을 찾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사전지원은 힘들며, 개관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일단 갖추면 사후 허가를 내주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대신 관계기관에서 주지 않은 도움은 오히려 민간업체에서 이어졌다. 다스퍼슨스건축사 사무소에서는 설계는 물론 시공과 감리까지 맡았고 1500만 원에 이르는 부족한 건축비용까지 감당하기로 했다. 또, 도서관 집기류는 아모스아인스가구에서 도왔다. 이제 이 작은 도서관은 조건 없이 퍼부은 사랑의 흔적이 오롯이 모인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꿈·땅 도서관’이 지어져 가는 과정.
‘꿈·땅 도서관’이 지어져 가는 과정. ⓒ 우성익

"도서관의 이름은 '꿈·땅 도서관'입니다. '꿈이 있는 땅'의 줄인 말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산간벽지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 주려고 합니다. 도서관이 만들어지면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네요, 그동안 한글을 몰라 불편했던 어르신들에게 읽고 쓰게 되는 즐거움도 찾아드릴 생각이고 다문화 가족에게도 한글과 미술, 음악치료를 통해 행복한 삶을 꿈 꿀 기회도 드려야죠."

보통 사람들은 이미 있는 길,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고 싶어 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꿈이 있는 땅'을 헤쳐 나가기 위해 꿈을 꾸고 도전을 했으리라. 여기 초임목사 6개월 만에 자신만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희망을 우선시한 한 목사의 선택이 시골 마을에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수마을이 별거 있을까? 이런 게 바로 행복 가득한 믿음의 공동체가 아닐는지….

'꿈·땅 도서관'은 개관식은 오는 6월 27일 오후 2시에 쌍치 소망교회에서 열린다.

 많은 곳의 후원을 통해 사랑의 흔적이 오롯이 모인 ‘꿈·땅 도서관’이 오는 27일 쌍치 소망교회에서 열린다.
많은 곳의 후원을 통해 사랑의 흔적이 오롯이 모인 ‘꿈·땅 도서관’이 오는 27일 쌍치 소망교회에서 열린다. ⓒ 우성익

덧붙이는 글 | 쌍치소망교회는 전북 순창군 쌍치면 운암길 59-10(순창군 쌍치면 운암리 461-1)에 있습니다.



#교회#쌍치소망교회#꿈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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