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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매일 세월호 관련 기사를 읽었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어처구니없게 수장시킨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수백 명 꽃 같은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낸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선장과 선박직 직원들, 아이들을 선실 밖으로 나오도록 적극적 구조를 회피한 해양경찰, 이윤만을 추구한 탐욕스런 자본가와 그 자본의 탐욕에 날개를 달아주고 공생관계를 유지한 부패한 관료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참사의 근원적 배경으로 기업 이윤을 극대화시킨 신자유주의 경제사조라는 괴물이 한국사회에 착근돼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위계질서로 정치된 권위주의적인 교육풍토 또한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원인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엄마, 아빠 사랑한다고 문자메시지를, 살려달라고 카톡을 보냈던 아이들을 왜 우리는 살리지 못했을까? 검찰 1차 수사 발표대로 해경이 출동한 시각인 9시 30분에서 선체가 108도로 기운 10시 17분까지 47분간의 구조는 둘째 치고 단원고 학생의 최초 신고가 들어간 이후 9시 - 9시 30분, 그 30분 동안 배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체가 30도에서 60도까지 기우는 상황에서 황금 같은 그 시간에 왜 학생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전한 객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만 믿고 대기하였던가? 그런 점에서 며칠 전 54일 만에 슬프게도 시신이 돼 돌아온 유니나 선생님의 판단은 주목할 대목이다.

유니나 선생님 또한 여느 선생님들처럼 제자 사랑을 보여주었다. 배가 기울자 가장 안전한 5층에서 학생들이 머문 4층 선실로 내려갔다. 좌현이 먼저 기운 상황에서 유니나 선생님은 "객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따르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 "구명조끼를 입고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학급별로 한두 명 생존자밖에 없는 우현 쪽 뒤의 학급과 달리 좌현은 이미 바닷물이 출렁거리며 선실을 기웃거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유니나 선생님은 3층에도 학생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3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유니나 선생님이 담임인 2-1반의 생존자는 19명이다. 대부분 아이들은 "객실이 안전하다"는 선내방송을 믿고 선생님과 함께 대기하며 안내방송을 따랐을 것이다. 그래서 3층보다 더 안전한 4층에 있었는데도 학생들은 밖으로 나오질 못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로이터 통신은 "학생들 대다수가 객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그대로 따랐다가 희생됐다"며 "위계적인 한국사회에서 자란 학생들이 복종의 대가로 희생됐다"고 지적했다.

통탄할 일이지만 한국교육은 '가만히 있으라' 교육이 지배적이다. 지시와 통제를 잘 따르고 범생이처럼 순종적인 아이들을 잘 교육받은 표상으로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세월호 이전처럼 교육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교사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지시와 통제 중심의 강고한 교육의 기본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 우리들 삶의 공간부터 학교사회를 바꿔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입시현실, 주입식 교육만 탓하고 있을 순 없다. 

그래서 드리는 제안이다. 부당한 지시는 당연히 거부하자. 교사는 가치를 지향하는 교육활동의 나침반이다. 부당한 지시를 별다른 생각 없이 따른다면 그곳에 더 이상 교육은 없다. 성찰이 없는 교사의 교육활동에서 교육의 향기, 스승의 영혼을 느낄 수 없다. 무엇이 비교육적이고 불필요한 업무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교사들이 시대의 희망이 되려면 사색하고 토론해야 한다.

우선 한국 교육의 기본 프레임을 학생의 처지에서 혁신적으로 바꾸자.

첫째, 학생자치활동 주체인 학생회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교칙을 정하도록 하자. 학교가 엉망이 될 거라 두려워말고 혁신학교 사례를 통해서 배우자. 아이들을 생각하는 존재로,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로 키우자. 아이들 스스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행위이지 않는가.

둘째로, 학생회 중심으로 기념식을 기획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게 하자. 4.3 항쟁, 4.19 혁명, 5.18 광주항쟁, 6.10 시민항쟁, 11.3 학생의 날 행사를 학교의 중심적 교육활동으로 자리매김하자.

역사의식이 박제된 채, 교과서와 EBS교재 수십 권에 파묻혀 기능적 지식을 암기하는 것으로 고교시절을 보낸다면 불행한 시민을 양산할 뿐이다. 역사교육, 사회교육만큼 아이들에게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통제 중심의 교문지도를 폐지하자. 굳이 필요하다면 학생자치활동 차원에서 학생회 스스로 자율부를 두도록 하자. 비판적 의식과 성숙한 의식을 간직한 아이들로 키워낼 때 학생 자치 활동은 가장 교육적인 활동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침묵이 지배하는 교실, 복종과 순종을 요구받는 교실문화를 걷어내자. 교사는 아이들 생각을 피워내고 학교는 아이들 자치 역량을 길러서 사회로 내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단언컨대 세월호 이전처럼 아이들을 교육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 교사는 세월호 이전의 학교교육과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 그것만이 세월호 참사를,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제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신문에도 동시에 투고하였기에 게재될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권위주의 교육#통제와 순종#학생자치활동#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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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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