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봉산로터리에 가면 개업한 지 보름이 지난 꽃집이 있다. 그 꽃집 주인은 30대 총각사장 소현두씨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꽃집의 총각은 멋져요"가 어울리는 남자 소현두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7년의 인고 세월이 꽃집 열게 해그가 지난달 초순쯤에 자신의 꽃집을 개업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7여년 세월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그가 7년 전 친구 소개로 우연히 시작한 꽃집의 일꾼 역할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현두씨는 안성의 한 꽃집에서 그 집 사장의 손발이 되어 머슴처럼 열심히 일했다. 농장에 직접 트럭을 몰고 가 물건을 떼어오는 것도, 거래처를 관리하는 것도, 무거운 화분을 옮기고 정리하는 것도, 회계장부를 관리하는 것도 대부분 현두씨가 맡았다. 배달이 밀리거나 일이 많을 땐,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해야 했던 이유? 그가 모신 사장이 시각장애인(시력이 약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장은 그를 신뢰했고, 그는 사장이 신뢰할 만큼 성실히 했다는 이야기다. 사장은 꽃을 직접 다루어 팔고, 나머지 일은 그가 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 시절엔 개인적인 시간을 잠깐 낼 틈도 없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그만두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얼마나 바빴으면 데이트는 고사하고, 아가씨를 만날 시간조차 없었을까.
하지만 3년이 넘어가면서 길이 보였다. '그래, 나도 꽃집을 한 번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한 건 사장이 해야 할 중요한 일(물건 거래, 거래처 관리, 고객 관리, 금전 관리 등)을 현두씨가 처리하면서 부터다. 꽃집 사장의 수족노릇을 하던 현두씨는 거기를 그만두면서 "정말 죄송했다"라는 말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궂은일 함께 하는 부모님이 있어 든든해요"그렇게 시작한 현두씨의 꽃집. 이렇게 30대 총각의 몸으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건 그의 부모님의 조력이 컸다. 그가 시작한 꽃집의 궂은일은 그의 부모가 함께 해주고 있다.
그의 아버지 소강영씨는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연다. 새벽잠이 적은 아버지는 빠를 때는 새벽 4시에도 열고, 5시~6시에도 연다. 문을 열고, 물을 뿌리고, 준비를 하는 것도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한다.
현두씨의 꽃집의 가구(진열장, 작업대 등)들도 대부분 아버지가 직접 만든 거다. 돈을 들여 사면 금방 해결 될 일이지만, 그의 아버지는 나무를 사서 일일이 제작한다. 아들과 의사소통을 해 아들의 필요에 맞게끔 맞춤형으로 가구를 제작한다. 아들이 꽃 파는 것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 화분정리, 꽃 배달 등도 함께 해준다.
그럼 현두씨의 어머니 정순영씨는 뭘 할까. 현두씨에 따르면 "제 어머니는 저보다 더 꽃을 잘 파셔요"란다. "싹싹하고 대인관계가 좋은 어머니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말발(?)로 손님으로 하여금 꽃을 사가게 만드시더라"며 현두씨가 웃는다.
신용을 생명으로 여기는 이유, 따로 있었네.처음부터 돈이 있어 시작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꽃이 가게에 가득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필요한 꽃들을 하나둘 채워 나갔다. 배달차량도 없어서 처음엔 고생했다. 0.5t 중고트럭을 구입하고서야 본격적으로 배달에 나설 수 있었다.
현두씨는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이라고 강조했다. 거래처에 물건을 떼오면 현장에서 바로 결재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외상구입은 없다. 물건도 자신의 능력에 맞게 구입한다. 그래서 가게에 처음부터 꽃들이 가득하지 않았던 거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잖아요. 이렇게 신용을 중요시 하는 것은 혹시 이 사업이 어려움에 처해 망할 위기에 놓이게 되더라도, 거래처로부터 도움 받을만한 신용을 쌓아놓기 위해서죠."어라, 이 총각사장 좀 보소. 어찌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 '사람보험'을 드는 혜안까지 갖췄다. "그렇게 바로바로 현장결재를 하고 나면, 현금회전을 위해 더 열심히 뛰게 되더라"는 이 총각사장을 누가 말릴까.
그는 "꽃집도 엄연히 서비스 직종이다, 최대한 손님 편에 서서 일하려고 한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 당장 이익이 조금 덜 남더라도 물건은 제대로 된 것을 공급하려고 한다. 오죽하면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들아, 그래서 남겠냐. 실속 좀 차려라"고 했을까.
"제게 장사철학이 있다면, '내가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 손님에게 서비스하자. 손님에겐 당장의 이익보다 진정성으로 다가가자. 그래야 오래 간다'는 거죠."
인터뷰를 마칠 무렵, 현두씨의 아버지가 말해줬다. "우리 집 가훈이 '정직과 겸손'인디, 내가 볼 때 아들은 '정직'은 된 거 같은 디, 젊어서 그런가 '겸손'이 아직 부족혀"라며 아들을 보고 웃었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를 되 뇌이며 꽃집을 빠져나왔다. '현두씨의 꽃집이 잘돼서 그의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좋은 사람만나 얼른 장가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확 드는 건 왜일까.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3일 안성 봉산로터리에 있는 소현두씨의 꽃집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