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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엄마가 형우에게 전화했다.

"형우(가명)야, 오늘 선생님이 몇 번째로 불렀어?"
"다섯 번째요."

반가운 소식에 아이엄마는 신났다.

"정말? 와 잘했어. 형우 뭐 먹고 싶어?"
"치킨이요, 매운 치킨"
"그래 알았어. 엄마가 매운 치킨 사갈께. 이따가 봐."

선생님이 다섯 번째로 불렀단다. 다섯 번째!

수학 학습지와 줄넘기 1학년 아이 학급의 자리배정을, 수학점수와 줄넘기 한 숫자의 합계로 점수를 매기고, 높은 점수의 아이순서대로 원하는 자리를 준단다.
▲ 수학 학습지와 줄넘기 1학년 아이 학급의 자리배정을, 수학점수와 줄넘기 한 숫자의 합계로 점수를 매기고, 높은 점수의 아이순서대로 원하는 자리를 준단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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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우 학급에서 수업 자리배정을 다시 하는데 선생님이 불러주는 순서가 있다. 수학 점수와 줄넘기 합계를 내서 많은 숫자를 가진 사람부터 원하는 자리를 얻는단다. 결국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라는 것이다. 아이엄마는 하루 종일 그 전화만 기다렸다가 '다섯 번째'라는 소식에 마음이 환해진 것이다.

집에 오니 형우는 매운 치킨을 열심히 먹고 있다. 두 손으로 닭다리를 잡고 양념을 쪽쪽 빨아가며 먹는다. 아이엄마는 다시 물어봤다.

"형우야, 정말 선생님이 다섯 번째로 불러 준 거 맞아?"

먹고 있던 형우……. 듣는 둥 마는 둥.

"뭐가요?"
"오늘 선생님이 불러준 대로 자리 앉는 거였잖아."
"아, 전 맨 나중에 불렀어요."

오잉? 이건 뭔가? 다시 물었다.

"형우야, 다섯 번째로 불렀다며, 그거 아냐?"

그러자 형우 말한다.

"아, 그거요, 방과 후 교실 컴퓨터 반이요. 선생님이 이름을 다섯 번째로 불러줬어요."

헐! 속았다. 점수 합산해서 다섯 번째라면 그래도 상위권으로 볼 수 있어 내심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고 방과 후 컴퓨터 반 자리 배정이었다니! 게다가 정작 학급 자리 배정에선 맨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렸단다!

이십여 년 전, 이미연 누나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역시 성적은 행복을 가르는 기준이란 말인가! 형우의 말은 듣고 나서 아이엄마와 나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직은 창피함을 잘 모르는 때이긴 하지만 서서히 성적의 순서에 대해 비교 당함을 알게 되는 시기가 오면 아이 속은 어쩌려나?

'그…그럼, 꼴찌란 말인가? 꼴찌?'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동시 두 번 쓰고, 받아쓰기 연습하고는 태연히 내 무릎에 누워있는 형우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 짠하면서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이래서 학부모들이 그 난리를 피우는구나!

학업만능주의와 취업전쟁의 연장선에 있는 첫 문틈

초보 학부모인 나는 신문지상이나 뉴스에서 보았던 극성스런 학부모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선행학습에 고액 과외를 받고, 학원과 학습지에 끼어 살아야 하나 싶었다.

애들이 저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나중에 오히려 학업에 대한 더 큰 부담과  반항감 혹은 너무 일찍 사회의 계급 서열화를 배우는게 아닐까해서 말이다. 그런데 형우가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나도 모르게 다른 부모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읽고 쓰기가 잘 안 돼 집에서 매일매일 아이를 득달하고 있고, 수학이 안 되니 이름 있다는 학원을 수소문해서 소수정예반에 애를 맡기고 있었다. 이제는 영어도 준비를 해야 할 듯 싶다.

요즘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아이들 과제도 확인하고 준비물이며 학사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엄마는 반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하며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 공통된 주제는 역시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하는가 이다. 그리고 각종 학원과 학습지로 인한 경제적인 부분을 어떻게 상쇄시켜가며 공부를 계속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도 많다.

이래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줄어들 지 않는가 보다. 나와 아이엄마는 아이들이 학교 들어가기 전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주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다짐했건만, 막상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너무 뒤쳐진다 생각하니 막연한 마음에 아이를 학업 스트레스에 내몰고 있었다. 아이가 방과 후 학습과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여섯시 반 정도다. 씻기고 밥 먹이고 나서 과제물 확인하고 수업 일정도 보고, 받아쓰기며 수학숙제며 동시 쓰고 외우기 등등 하고나면 거의 아홉시다.

안쓰러운 마음에 누워있는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도대체 교육이 뭐기에 이리 힘들게 배워야 할까? 학교 입학시에 나누어 준 소개문에는 '이 시대에 맞는 인성교육',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를 키운다는데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이제 8살 초등학교 1학년인데 성적순대로 자리를 앉아야 하며 그 창피함을 피하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소수정예반과 학습지에 빠져 있는 것이 정상은 아닐진대 말이다.

주위에 어느 선배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지 말라하며 조언을 해 준다.

'애들이니 아직 무시하고 실컷 뛰어놀게 해라. 조금 크면 다 따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은 평생 비교당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업 때문에 나중에 정상적인 사회 진입이 어려워질까 걱정이다. 솔직히 난 아직 정답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성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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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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