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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이 '글'이다. 나는 이제껏 글을 쓰면서 결과물에 100% 만족해본 적이 없다. 죽는 날까지 온전히 만족할만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글쓰기는 홀로 암벽을 등반하는 것과 같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마침표 하나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 찍어줄 수 없다. 글쓰기는 고독한 자기와의 투쟁이다.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이 쓴 <대통령의 글쓰기>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경험을 살려 글쓰기 노하우를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우선 '대통령'이라는 대단히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특별한 글쓰기 비법을 갖고 있을까 호기심이 생긴다. 특히 뛰어난 연설가이자 글쓰기 고수로 알려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주인공이라니 호기심은 더 커진다. 비슷한 점도 많지만 스타일 면에서 확연히 달랐던 두 사람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다가 대통령의 연설문이 구상단계에서부터 최종 마무리되어 국민앞에 공개되기까지의 긴박한 과정은 손에 땀을 쥐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글쓰기 책 출간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라고 했다. 이 책은 글쓰기 교본이면서,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회고록이기도 하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두 사람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훌륭한 리더는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

두 대통령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늘 생각, 생각, 생각을 했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했다. 그게 맞는지, 맞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고,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쪽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 여러 입장을 함께 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컸다. 그런 결과일가. 어떤 주제, 어느 대상에 대해서도 늘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이 있었다. (25쪽)

두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던 저자는 독서를 많이 하고 생각이 많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았다. 독서의 폭과 생각의 깊이는 글쓰기의 내공으로 이어진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생각하는 것이다'(27쪽)라고 했다. 독서는 글쓰기의 원천이고 사색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서평이라는 글쓰기를 즐겨 하는 나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 책에 대한 생각에 할애한다. 책의 내용을 곱씹어 생각하기를 반복하다보면 글의 얼개가 짜여진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글쓰는 노동에 몰입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강 전 비서관에게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교본, 글쓰기 강좌를 열 것을 지시할 정도로 글쓰기를 중요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설가이자 글쓰기의 고수였다. 두 사람은 연설비서관이 올리는 연설문을 글자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검토하고 지시했다. 비서관들에게 대통령은 모셔야 할 주군이면서,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정치적 리더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설득 여하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판가름 난다.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정치인에게 '글쓰기'는 없어서는 안 될 자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에토스(ethos, 인간적인 신뢰), 파토스(pathos, 감성적인 호소력), 로고스(logos, 논리적 정합성)가 필요하다고 했다. 두 대통령이 남긴 말에서 이 세가지를 한꺼번에 본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한다." (김대중 대통령)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

사람으로서 위엄 같은게 느껴진다. 군더더기는 없다. 더할 말도 없다. 짧고 긴 호흡은 있다. 명문이다. (281쪽)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의 글쓰기>는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게 해 준 책이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 물음은 일생의 화두가 될 듯 하다. 아마추어지만 대학시절부터 글쓰기 훈련을 받았고, 글쓰기 책자들도 여러권 읽었지만 쓰면 쓸수록 모르겠는 것 또한 '글쓰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섯번의 죽을 고비와 6년간의 수감 생활, 수십년 동안의 연금과 망명으로 고난 가득한 삶을 살았다. 사선을 넘나드는 극한 상황을 뛰어넘어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로 서기까지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하다는 수식어가 모자랄 정도다.

영화 '변호인'의 모델인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인권 변호사로 출발해 5공 청문회 스타, 부산에서의 연이은 낙선과 대통령 당선, 탄핵, 귀향과 서거에 이르기까지 도전과 응전의 삶을 살았다.

저자는 두 사람의 인생경험 자체가 두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나온 그들의 신념과 사상, 인격의 깊이는 글 속에서 깊은 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분명 글쓰기는 기술의 영역이 아닌 철학의 영역이다. 진짜 글쓰기의 노하우는 기술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실한 태도, 진정성에 있다. '좋은 앎'과 '좋은 삶'이 일치하는 순간 비로소 '좋은 글'이 탄생한다. '글'이란 결국 글을 쓴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책에서는 글의 얼개를 짜는 방법, 전개를 하는 방법, 제목을 다는 법, 퇴고 하는 법, 자료를 모으고 활용하는 법 등 대통령 연설문 작성의 노하우도 배울 수 있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가면 대통령 연설문 전문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연설문을 교재로 글쓰기 연습을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 메디치 / 강원국 지음 / 16,000원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메디치미디어(2014)


#김대중#노무현#대통령#연설문#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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