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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책 표지. ⓒ 문학동네

짜증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치인. 구제불능의 심각한 짜증 유발자들이다. 온갖 유치한 방식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직장 상사. 뒷담화나 은따(은근한 따돌림)로 '엿먹일' 수 있으니 저 높은 곳에 있는 정치인들보다는 그나마 낫다. 양말을 뒤집은 채로 아무 데나 벗어 놓거나, 화장실 치약을 중간께부터 짜 쓰는 배우자도 짜증 종결자 중의 하나다.

소리, 냄새, 물건 등 모든 것이 짜증을 유발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짜증은 삶의 일부분이다. 피할 수도 없고, 그 어디에나 존재한다. 저자는 그것이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약올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눈앞에 당면한 일에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고 말한다. 평온과 침착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무시 못할 적이다.

구급차나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보자. 저자에 따르면, 사이렌 장치는 태생적으로 짜증을 최대한 유발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해 만들어낸 것이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도 운전자가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구급차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짜증을 유발하지 않는 사이렌 소리는 사이렌 자격이 없다.

요새는 사이렌 소리가 불러 일으키는 짜증에 면역이 생긴 운전자들이 많다. 자동차의 우수한 방음 장치 덕에 사이렌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낮은 웅웅(rumble) 소리를 내는 '럼블러' 사이렌 장치를 쓰면 좋다고 한다.

럼블러가 내는 소리는 들린다기보다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낮은 주파수대에 있다. 몸을 진저리치게 만드는 진동에 가까운 이 강력한 저음은 자동차 창문과 백미러를 흔들리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럼블러는 구급차를 보고도 좀처럼 비키지 않는 차 때문에 고심하던, 미국 플로리다 고속도로 순찰대의 요청으로 탄생했다.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의 과학전문기자인 조 팰카와 플로라 리히트만이 공저로 쓴 책이다. '우리의 신경을 긁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짜증 유발 요인들의 과학적 기제와 원인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사례 한 가지를 보자.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랜돌프 블레이크는 특정한 주파수가 본질적으로 짜증을 유발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기분 좋은 소리에서 기분 나쁜 소리까지 순위 목록을 정했다.

블레이크의 목록에 따르면, 전체 16개 항목 중 기분 좋은 소리 1, 2위는 종소리와 자전거 타이어 돌아가는 소리였다. 가장 기분 나쁜 소리는 정원 가꾸는 도구로 슬레이트를 긁는 소리, 곧 손톱으로 칠판을 긁을 때 나는 소리였다. 이 악명 높은 소리를 떠올려 보라. 강한 진저리와 함께 몸에 소름이 돋거나, 위아래 치아 사이를 갑자기 굳세게 닫아 무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대체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는 우리에게 왜 이런 원초적(!)인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까.

블레이크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에 대한 보편적인 혐오 반응이 영장류의 경고가 심각한 상황을 의미하던 오랜 옛날부터 진화과정을 통해 전해 내려오지 않았나 의문을 품었다. …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진화적으로 우리의 두뇌에 각인되어 있는 원시적 공포를 일깨운다는 주장에 학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블레이크는 "대부분 무시했다"고 말했다. …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2006년, 이 논문은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 블레이크와 논문의 공저자들은 과학계의 가장 이상한 발견에 수여되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받았다. (83쪽)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나 스컹크가 내뿜는 냄새, 눈앞에서 앵앵거리는 파리와 같은 성가신 벌레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하게 짜증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짜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짜증의 상대성 원리라고 불릴 만한 사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짜증의 상대성 원리

저자는 배우자를 '내 인생의 사랑'인 동시에 '내가 아는 가장 짜증나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의 모순을 일깨운다. 저자가 인용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사회학자 다이앤 펨리의 연구는 흥미롭다. 그는 사람들의 관계 패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연애를 시작할 때 매력적으로 보였던 자질이나 태도가 오랜 시간 관계가 지속되면서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펨리는 이 문제를 이른바 '치명적인 매력'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긍정적인 특징도 짜증 유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커플은, 배우자가 할 때는 짜증이 나서 미칠 것 같은 그 행동을 아무 관계 없는 다른 사람이 하면 비교적 쉽게 무시한다.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연방 야프 중에 있는 이팔루크 섬 주민들도 짜증의 상대성 원리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저자에 의하면, 이팔루크 섬은 지리·지형적으로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어 짜증 유발 요소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데 이곳 주민들은 놀랍게도 짜증이 금기시되는 사회 문화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팔루크 주민들은, 미국인이라면 미친 듯이 짜증냈을 상황에서도 전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저자는 인류학자 캐서린 루츠의 말을 인용해 이 문제를 설명한다.

루츠는 감정이란 문화에 따라 형성된다는 설명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감정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루츠는 이것이 감정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이 아니라고 믿는다. 루츠는 우리가 양육되는 방식,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부여되는 기대에 따라 감정이 설정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감정은 개인적인 특징이라기보다는 공동체,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속성이라고 본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감정은 홀로 떨어져서 일어나지 않는다. (250쪽)

저자는 짜증에 대해서 두 가지 극단적인 대응 방법이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전력을 다해 짜증에 맞서 싸우는 것과,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초월한 상태가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앵앵거리는 파리 소리나 지독한 하수구 냄새는 피해 버리면 그만이다. 연인이나 배우자의 못 말리는 습관은, 헤어지거나 죽고 나면 추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개의치 않으면 된다.

하지만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정치인이나, 유치하게 권위적인 직장 상사가 만들어내는 짜증에는 전력을 다해 맞서 싸우는 것이 옳다. 그들을 무시하면서 뒷담화나 하고 경멸하기만 해서는 그 위선과 가식, 부당한 권위를 결코 없애지 못하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일단 전력을 다해 짜증에 맞서 싸우는 행동을 취하고 나면 더 이상 짜증스럽지 않게 된다고.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조 팰카·플로라 리히트만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4. 5. 2. / 355쪽 / 15,000원)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 - 우리의 신경을 긁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

조 팰카 & 플로라 리히트만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2014)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조 팰카. 플로라 리히트만 지음#구계원 옮김#문학동네#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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