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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부-해수부 엇박자, '대책본부만 양산' 초동대처 실패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23일이 지나도록 정부는 단 1명의 실종자도 구하지 못했다. 오히려 구조자는 176명에서 174명으로 줄었다. 정부의 초기대응이 총체적으로 부실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침몰 직후 사고 접수와 전파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고, 구조할 수 있는 황금시간대인 '골든타임'(48시간)을 놓친 정부 당국의 부실한 초동대처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초동대처에 실패한 청와대는 심지어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말로 국민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겼다. 안전을 강조했던 '박근혜 호'에서 안전은 실종됐다. 정부 초기대응 실패와 갈팡질팡 지휘체계, 오락가락 정부발표, 더딘 구조작업, 구난업체 언딘의 알박기 의혹은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켰다.

안전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건 정부는 사고 직후 제 기능을 못하고 허둥지둥했다. 이번 사고에서 관료조직은 형식주의에 얽매여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고 혼선과 혼란만 가중시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고접수 후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꾸려졌고,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모으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이마저도 부정확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난안전대책 총괄을 맡은 안전행정부는 실전에 무능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정부는 우왕좌왕하며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안전'을 강조하며 올해 2월 바꾼 재난대응체계의 허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대규모 재난 발생 시 안행부가 재난관리 총괄·조정 기능을 맡아 각 부처를 지휘하게 하는 쪽으로 재난안전관리 법체계를 만들었지만,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 안행부와 해양수산부는 따로 놀았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재난 발생 시 안행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해 재난관리를 총괄케 했다. 이 법은 올해 2월 7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법 시행을 앞두고 '조직의 지휘·명령 체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펴낸 '이슈와 쟁점-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장관이 같은 지위의 다른 장관을 지휘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대규모 재난 발생 때 중대본 본부장인 안행부 장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에 속한 각 정부 부처들을 지휘하도록 했는데, 이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 당시 방재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안행부로 재난 총괄 기능을 이전하면서 소방방재청의 전문 인력은 흡수하지 않아 '준비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행정직 공무원이 다수인 안행부 간부들만으로는 재난 대처 경험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낮아 사고 초기 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우려는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현실화됐다. 중대본을 책임지는 안행부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 상 해양사고 때 주관부처로 정해진 해양수산부 사이에 엇박자가 드러나면서 지휘체계에 혼선이 빚어졌고, 중대본에서 총괄기능을 해야 하는 안행부는 무기력하기만 했고 이는 초동대처 실패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부처별로 각종 '대책본부'만 양산했다. 서울에는 안행부가 중대본을 설치했고, 세종시에서는 해수부와 교육부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렸다. 또 해수부 외청인 해양경찰청은 인천과 목포에 지방사고수습본부를, 해경 산하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세웠다. 대책본부만 많았지 실효성은 없었다.

정부가 혼선을 빚고 대책본부만 양산하는 사이 구조는 더뎠고, 세월호 탑승자 가족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사고 발생 이튿날 그제서야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를 전남 진도군청에 직접 꾸렸다.

정부, 상설기구로 '국가안전처' 검토... '옥상옥' 우려

정부 스스로 안행부에 재난안전에 대한 총괄조정 기능을 부여했지만, 결국 정부가 먼저 이를 부정한 꼴이 됐다. 때문에 이번 참사를 계기로 재난 발생시 시 대응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이번 참사를 계기로 별도의 재난관리 부처인 가칭 '국가안전처'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 때 "지휘체계에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총리실이 직접 관장하면서 부처 간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가칭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후 박 대통령은 참사 34일째인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담화에서 "해경의 수사와 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 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해양 안전의 전문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안전행정부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안행부의 핵심기능인 안전과 인사, 조직 기능을 분리해 안전업무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통합하고 인사조직 기능도 신설되는 총리 소속의 행정혁신처로 이관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해수부에 대해서도 "해양교통 관제센터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통합하고 해수부는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업 보호 및 진흥에 전념토록 해 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내는 책임행정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국가안전처라는 거대조직이 탄생을 앞둔 셈이다.

하지만 국가안전처 설립을 놓고 찬반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같은 임시 조직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는 만큼 상설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반대 측은 국가안전처역시 현장과 동떨어진 '옥상옥(屋上屋)' 기구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가동했지만 이는 임시조직이고,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근거해 안행부가 총괄 조정케 한 '중앙재난대책본부' 또한 임시조직이라 상설조직이 필요하다는 게 주된 요지다.

반면 국가안전처 설치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은 현장성이 떨어진 옥상옥이라는 것이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현장 중심의 대응체계를 마련하기 보단, 상위 부서의 '책상' 늘리기에만 바빴는데 이번에도 그 연장선이라는 비판이며, 나아가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국가안전처'를 만들면 재난관리의 1차적 책임주체인 지방자치단체와 현장 지휘자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재난사고에 대한 대응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현장에서 직접 지휘해야 한다. 이를테면 민간 잠수사 투입 문제, 다이빙 벨 투입문제, 바지선 이용 문제도 현장 지휘자가 판단해 결정했으면 일산분란 했을 테지만, 총리실과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는 오히려 현장에서 혼란만 가중시켰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에 권한 강화해야

재난사고 발생 시 24시간 언제든지 초기 골든타임에 투입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공무원은 경찰관과 소방관이다. 이번 사고를 통해 현장 인력과 지휘관의 판단과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세월호 초기 수습 과정을 통해 이미 확인됐다.

하지만 소방관은 안행부 외청인 소방방재청과 지자체 이원화 된 지휘를 받고, 경찰관의 경우 육경은 안행부 외청인 경찰청의 지휘를 받고, 해경은 해수부 외청인 해양경찰청의 지휘를 받는다. 이번 초동대처에서 소방방재청과 소방본부와 안행부, 해수부의 엇박자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디펜스21 김종대 편집장은 "OECD 국가 중에 중앙조직으로 소방방재청을 둔 나라가 몇이나 됩니까? 또 우리나라 같은 경찰청도 찾아보기 어렵다. 소방이나 경찰이 지방자치 조직이지 우리같이 중앙조직으로 청을 갖고 있는 나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게다가 테러대책은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 재난안전대책은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국가비상사태는 안행부 비상관리국, 민방위사태는 안행부 민방위본부 등 갖가지 명칭으로 고위직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다. 각종 위기관리 법령만 50여개로 나뉘어져 있어 전문가조차 일목요연하게 그릴 수 없다."며 "중앙의 힘 센 자리가 팽창되는 동안 지방조직은 이 모든 업무를 1개부서가 다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뒤 "일하는 지방조직은 한 개인데 이를 통제하는 중앙조직은 수도 없이 많다. 중앙의 힘 센 기관이 난립하니까 소방이나 경찰, 군은 각자 상급기관을 상대하려 할뿐, 지방자치단체장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급기관장들은 현장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비전문가들"이라고 지적했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이기우 교수는 "만약 전남도지사가 현장을 장악하고 해경에 지시를 내리고 책임을 지도록 했더라면, 중앙정부가 멀리서 현장에 맞지도 않는 지휘를 하는 대신 현장에서 요구하는 물자와 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더라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대안으로 지자체의 권한 강화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방분권이 특히 요구되는 분야가 분초를 다투는 재난안전과 관련 된 경찰, 소방, 방재분야이다.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장성이 가장 중요하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자가 책임과 권한을 져야한다. 현장은 권한이 없으니 책임이 없고,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는 현장을 모르니 무능할 수밖에 없다. 재난구호체제자체가 무책임과 무능력을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안전처를 만든다고 하지만 현장을 움직이도록 하는 현장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야만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www.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월호#박근혜 #안전행정부#국가안전처#지방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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