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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괴담> 책표지.
<의료괴담> 책표지. ⓒ 글통
영리병원 도입 논쟁을 주제로 한 텔레비전 토론에서였다. 도입 찬성론자가 "우리나라는 영리병원이 금지되어 있고, 의료서비스 경쟁이 없다. 그 때문에 의료의 질이 낮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이 엠디앤더슨 같은 미국 병원에 가서 암수술을 받지 않느냐? 엠디앤더슨 같은 좋은 병원을 만들려면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국의 엠디앤더슨 병원은 비영리병원이다.

이 책에서,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면서 비영리병원의 성과를 이용하는 무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는 내용이다.

'주사보다 무서운 영리병원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의료괴담>은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김철신 정책이사와 공저자인 홍기표 선생 사이의 대담이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원격의료와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정책을 뼈대로 한 의료개혁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의료민영화'와 '의료괴담'이라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그 과정에서 싹튼 것 같다.

지난 3년간 영리병원 반대의 최선봉에 섰던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정책이사로 일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 때론 충격적이고 때론 가슴 아픈 의료 현장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어김없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통제 없이 폭주하는 의료상업화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려주는 경고등 말이다. 끊임없이 깜빡이던 그 경고등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서문'에서)

이 책의 부제는 '주사보다 무서운 영리병원'이다. 언뜻 자극적인 비유나 과장으로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표현이 결코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오히려 '주사' 이상의 훨씬 더 강력한 표현이 붙어야 하는 게 아닌가고 생각하기 쉽다. 왜 그럴까. 저자가 영리병원의 천국으로 빗대고 있는 미국의 예를 통해 그 이유를 알아보자.

미국괴담, 치과에 가면 신용불량자 된다?

'미국괴담'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몇 가지 예부터 보자. 2009년 미국의학저널에 의하면 미국민 전체 가계 파산 중 62.1%가 의료비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치과에 가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미국괴담이 나온 배경일 것이다.

괴담이 아니라 실제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은 의료보험 특히 치과의료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1억명에 달합니다. 의료비도 매우 비쌉니다. 미국민의 40퍼센트가 비용 때문에 치과치료를 미룬 적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고액의 치료비 때문에 난감해 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17쪽)

이럴 때 영리병원 측이 제시하는 해법이 돈 없는 환자들을 위한 특별신용카드라고 한다. 문제는 이 카드가 '약탈적 대출'이라는 점. 30%가 넘는 연체 이자를 적용하고 있어서 사채이자와 다름 없는 조건으로 대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테러사 페리토(87·여) 할머니의 사례는 더욱 경악스럽다. 페리토 할머니는 치아 두 개를 뽑으려고 병원에 갔다가 60개 항목에 걸친 치료비 7835달러(우리 돈으로 약 800만 원)을 요구받았다. 돈이 없는 할머니는 병원이 소개한 신용카드를 발급해 결제했다. 이후 할머니는 이 카드대금 때문에 신용불량의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지엠(GM)이 의료비로 위기에 빠졌다는 미국괴담도 놀랍다. 이 책은 신용평가사인 제이피(JP) 모건 보고서를 인용해 지엠이 1985년부터 15년간 노조원들과 퇴직자들의 연금과 건강보험을 지원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총 1030억 달러, 우리 돈 115조 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기술 투자 등이 지연되어 일본이나 유럽 차와의 경쟁에서 밀림으로써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 내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대조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공공병원 22%, 자선병원 등 비영리병원 60%, 영리병원 18% 등으로 다양한 형태의 병원이 공존한다. 영리 병원과 비영리 병원간 대비 분석의 최적 국가여서 실제로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연구 결과는 한결같이 영리병원의 불합리성과 폐해를 보여준다.

로즈노라는 연구자가 행한 결과를 인용해 보자. 그는 1980년부터 2001년까지 20여년에 걸쳐 미국의 영리 및 비영리병원의 의료서비스 성과를 의료의 질, 접근도, 비용대비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비교한 149개의 연구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모든 평가 항목에서 영리병원보다 비영리병원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석에서 주목할 점은 비영리병원의 비용 효율성이 영리병원보다 높았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 비용이 낮아진다'는 영리병원 찬성 측의 주된 논지가 실증분석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에 소개된, 미국의 'US News & World Report'가 매년 발표하는 '좋은 병원 랭킹'의 1~20위 목록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 목록에 영리병원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들어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이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증조사와 각종 통계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영리병원의 나라라는 미국은 의료비 지출 대비 국민 건강 지표나 의료 서비스도 형편 없다. 미국의 의료비 지출은 오이시디 국가 중 1위로 지디피의 17%에 달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의료비를 적게 쓰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국민 건강은 더 좋지 못하다고 한다.

가령 대표적인 건강지표인 '영아사망률'은 미국이 6.5명/천 명(2008년)으로, 의료비가 7.1%인 우리나라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기대수명은 78.2세(2009년)으로, 우리나라의 80.4세(2009년), 오이시디 평균 79.5세(오이시디 평균 의료비는 9.9%)보다 낮다고 한다. 저자는 미국민 5천만 명(전체의 6분의 1 정도) 정도가 공적·민간보험 여하를 불문하고 의료보험 자체가 없다는 점도 미국 의료 정책의 맹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나라 병원 대다수가 높은 수익을 올리는 데 열중하는 점을 들어 새삼스럽게 무슨 의료민영화 반대니 영리병원 도입 저지니 하는 말을 하냐며 의아해한다. 실제로 영리병원이나 비영리병원 모두 의료행위에서 돈, 곧 수익을 취하는 데 관심을 둔다. 그런 점에서 둘 모두 '영리'가 붙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왜 후자에만 앞에 '비(非)'자가 붙을까.

저자에 따르면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과 달리 외부 투자자의 투자와, 투자 수익에 대한 배당을 받아갈 수 있다. 병원 수익을 외부로 빼돌릴 수 있는 구조라는 말이다. 반면에 비영리병원은 번 돈을 고유목적사업, 즉 의료업에만 재투자해야 한다.

그렇다면 많은 이가 삼성이나 현대 소유로 알고 있는 삼성의료원과 아산병원은 어떻게 봐야 하나. 저자는 이를 소유 구조를 통해 설명한다. 삼성의료원과 아산병원은 삼성이나 현대 소유가 아니라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아산사회복지재단 소유다. 이들은 사회공헌을 위해 설립된 공익재단이나 비영리법인이다. 삼성의료원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삼성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영리병원과 민간병원을 헷갈려하는 사람도 많다. 저자는 이들을 돈벌이의 여부가 아니라 돈벌이의 목적이 무엇인가의 차원에서 달리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리병원은 돈을 벌어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으로 돌려주는 데 목적이 있는 반면에 민간병원은 번 돈을 의료 영역에 재투자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 한 마디로 영리법인은 제3자가 개입해서 이익을 뽑아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환자(국민)의 건강권이 영리병원 시스템이냐 비영리병원(민간병원) 시스템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영리법인이 의료행위를 해도 좋다고 허용하는 것은 국가가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철학을 갖는다는 얘기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철학은 몇 가지 논거를 통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영리병원간 경쟁체제를 도입해 투자를 늘리면 의료비가 싸진다는 것, 영리병원 허용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것 등이 그것들이다.

먼저 의료비 문제.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영리병원 허용이 의료비 폭등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미국에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의료비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건강보험(메디케어) 환자의 경우 영리병원의 환자 1인당 의료비가 비영리병원에 비해 20% 가량 높게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자가 인용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등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 병원 중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면 연 1조5천억 원,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가 1퍼센트 늘면 연 1070억 원의 의료비 부담 증가가 전망된다고 발표했다.

저자는 의료 상업화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주장도 시장주의자들의 막연한 논리라고 비판한다. 영리병원은 일종의 주식회사병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병원의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가령 인건비 비중이 전체 매출의 9% 정도를 차지하는 제조업체와 달리 병원은 인건비 비중이 42.9%에서 48.4%까지 이를 정도로 높은 직종이기 때문이다. 

의료민영화의 폐해는 이것만이 아니다. 저자는 사회역학의 권위자인 마이클 마멋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워싱턴 도심의 흑인과 반대쪽의 부유한 지역에 사는 백인 사이에 20년의 평균 수명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마멋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교외의 부유한 지역에서 워싱턴 도심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1.6km 이동할 때마다 평균수명이 1년 6개월씩 감소한다. 지역에 따라 소득격차도 뚜렷하고 건강불평등도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졸이상으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중졸이하의 저학력자들의 사망률이 8.1배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괴담'은 미국만의 이야기 아니다... 한국괴담도

'미충족의료'라는 말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스스로 고통을 느끼지만 병원에 못가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국민 중 36.7(2012)%가 '치과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못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중 35.7%는 치료를 못 받는 이유가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이러한 미충족 의료가 늘어날 것이 뻔하다.

글머리에 소개한 '괴담'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2개면 되는 임플란트를 9개나 심은 한국괴담의 예를 소개한다. 이 사례는 국내의 대표적인 '기업형사무장 병원'이었던 R치과네트워크에서 실제 발생한 일로 MBC <PD수첩>에서도 폭로된 일이라고 한다. 틀니 유지용 임플란트 2개로도 충분한 상황에서 병원 말을 듣고 9개의 임플란트를 심은 그 환자는 가뜩이나 약한 아래턱이 부러질 위험이 높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드름도 관리하는 대한민국 기획재정부!'로 소개되는 한국괴담은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의료민영화의 바람을 실감하게 한다. 저자는 정부가 의료민영화가 가져올 국민 건강권 위협보다 의료를 산업화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보건의료를 보건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의 주요 대상으로 간주한 것을 그 예로 든다.

기재부는 국민건강과 안전을 위한 여러 가지 의료제도를 단지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라고만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의료법이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을 삭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영리병원의 허용, 환자유인 활성화, 민간의료보험활성화 등등이 그것입니다.

최근에는 의료행위의 성격조차 기재부가 나서는 지경입니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의료행위'가 아닌 '미용․성형행위'에는 부가가치세를 내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 많은 전문가들이 '여드름은 피부질환'이므로 '미용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는데도 기획재정부는 여드름 치료를 '미용행위'로 판정해서 부가세 부과 항목에 편입시켰습니다. (32~33쪽)

정부는 세월호 침몰과 같은 큰 사고나 정부의 무리한 정책 집행 때문에 많은 국민이 비판하고 반대할 때마다 괴담이니 유언비어니 하는 말을 즐겨 쓴다. 공권력을 이용해 괴담이나 유언비어 유포자를 색출한 뒤 잘 모르는 국민들을 선동한 게 아니냐며 을러대기도 한다. 

그런데 괴담이나 유언비어가 횡행하는 까닭이 단지 국민들의 무지 때문일까. 괴담이나 유언비어의 한가운데에 사고 수습에 임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괴담으로 떠도는 이야기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제 사실에 터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제시된 많은 사례가 그 생생한 증거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무엇이 괴담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결국 국민들이 판단하고 선택할 문제다. 이 책이 그러한 선택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의료괴담-주사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김철신․홍기표 지음 / 글통 / 2014. 3. 31. / 215쪽 / 12,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의료괴담 - 주사보다 무서운 영리병원 이야기

김철신.홍기표 지음, 글통(2014)


#<의료괴담>#김철신, 홍기표#영리병원#의료상업화#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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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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