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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아래 뷰민라)라는 음악 공연이 취소됐단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진 이때, 국민정서에 반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가수 김C는 '음악은 흥만을 위한 것 아니다'라며 자신의 트위터에 아쉬움을 담은 쓴소리를 남겼다(관련기사 : 김C '음악은 흥만을 위한 것 아니다').

'뷰민라'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크고 작은 행사나 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뷰민라'는 널리 알려진 사례에 속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지역의 공연·행사·축제들도 많다. 이 경우 행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유명 가수들도 그러할진대, 하루하루 힘겹게 벌어야 하는 무명 예술인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일 수 있다.

나는 풍물을 직업으로 하는 풍물꾼이다. 크고 작은 행사나 공연을 하기도 하고, 학교나 문화센터·주민센터 등지에서 강습을 하기도 한다. 풍물꾼들에게 4월과 5월은 제일 바쁜 시기다. 여러 행사나 축제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사 마당이나 무대에서의 여러 공연이나 길놀이가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생계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가난한 예술인들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시기인 셈이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이 시기에 일을 벌이고 지역 축제에서 일을 따내기 위해 애쓴다.

문화예술, 반드시 여흥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신나는 풍물놀이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흥거운 분위기를 이끌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땐 늘 뭇매를 맞기도 한다.
신나는 풍물놀이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흥거운 분위기를 이끌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땐 늘 뭇매를 맞기도 한다. ⓒ 이진욱

세월호 침몰 사고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내가 지역에서 참여 또는 관여하고 있는 공연만 세 건이 취소 또는 연기됐다. 주변 사람들이 관여하고 있는 것까지 세자면 더 많아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국에 어디 팔자 좋게 축제 타령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예술인으로서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김C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화예술은 반드시 즐거운 여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풍물과 더불어 살았다. 즐겁고 한가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삶이 고되고 힘들 때도 모여서 서로를 달래려고 풍물을 쳤다. 농사를 지을 때 힘들지 말라고 풍물을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모내기와 김매기를 했다. 어떤 지역 이름이 들어간 'OO농요' '△△김매기노래' '□□들노래' 등이 그 예다. 이중 다수는 무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우리 민족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풍물을 치며 고됨을 달래고 힘을 보탰다. 2005년 11월 전남 영광에서.
우리 민족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풍물을 치며 고됨을 달래고 힘을 보탰다. 2005년 11월 전남 영광에서. ⓒ 이진욱

모내기·김매기가 즐거운 여흥일 수 있을까. 농사일은 고된 노동이다. 우리는 그동안 고됨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힘을 보태기 위해 풍물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우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초상집에서도 시끄럽게 판을 벌였다. 망자의 가는 길을 달래고 산 자의 슬픔을 달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망자가 생전에 익히 알고 지냈던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시 삶에 대한 기운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인 진도 씻김굿이 바로 이 예다. 이는 초상이 치러지는 망자의 집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행해진다. 발인이 있기 전날은 거의 온 종일 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힘을 보태기 위한 음악

 망자의 가는 길을 달래주고 산 자들을 위로하는 진도 씻김굿. 하루종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006년 1월 진도에서.
망자의 가는 길을 달래주고 산 자들을 위로하는 진도 씻김굿. 하루종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006년 1월 진도에서. ⓒ 이진욱

솔직히 나는 풍물인으로서 이런 자리에 참석해 보고 싶다. 누군가의 마지막 가는 길에 원 없이 풍물을 치며 한을 달래고 산 자의 희망을 북돋울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이겠는가. 또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월호의 희생자가 모셔진 분향소나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기운을 보탤 수 있는 판을 열 수 있다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상황에 들리는 이야기는 "시끄럽다" 아니면 "지금 같은 판국에…" 등과 같은 것이다.

풍물인들, 아니 예술인들은 사실 태생적으로 핍박된 삶을 살아왔다. 수백 년 전의 동네 놀이패나 남사당패 등도 천인이라며 손가락질 받았다. 겉으로는 손뼉 치고 즐기면서도 그들을 직접 대하는 자리에서는 철저히 무시했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문화예술을 대하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관련기사 : "노래 1곡에 30원...이대로면 대중음악 말라죽어").

내가 하는 풍물의 경우는 특히 이와 같은 선입견이 심하다. 심한 경우 종교적인 편견까지 더해지기도 한다. 가끔 "무슨 미신 굿판을 벌이고 있느냐"는 말까지 듣곤 한다. 어떤 학교에서 밴드를 초청하고 앰프를 크게 틀고 축제를 하면 아무 말 없던 동네 주민들도 풍물 소리가 들리면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종종 있다. 아파트 이웃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는 것에는 관대하던 누군가는 꽹과리·장구 소리가 나면 민원을 제기한다.

 내가 강연하는 한 주민센터에서 온 문자메시지. 풍물소리가 시끄럽다고 누군가 민원 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강연하는 한 주민센터에서 온 문자메시지. 풍물소리가 시끄럽다고 누군가 민원 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 이진욱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자. 문화예술은 기쁜 자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슬픔을 달래고 힘을 북돋우기도 한다. 풍물도 그런 역할을 한다. 축제나 행사를 취소할 게 아니라 성격을 조금 바꾸면 될 일이다. 국민정서가 정말 아니라고 한다면 취소가 아닌 연기라도 하면 좀 덜 아쉬울 것이다.

주변에 실력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많다. 하지만 제대로 대우받는 문화예술인은 많지 않다. 내가 아는 가까운 예술인들도 대부분 생활이 어렵다. 생활고보다 더 힘든 것은 이러한 예술에 대한 편견들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팔자 좋은 이들이 소일거리로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인식을 담은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고 예술을 함께 공유하며, 나아가 우리 모두가 예술의 창작자가 되는 그 날. 그런 날이 먼 훗날이라도 좋으니 꼭 오기를 바란다.


#세월호#풍물#축제#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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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을 하고 학교수업도 하며, 공공운수노조 방과후학교강사지부 (http://asteacher.ner)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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