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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의 최대 현안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일자리'라는 답이 1등을 차지할 것 같다. 대졸자 취업률이 56%에 불과한 상황이니, 20대의 태반이 백수(이태백)라는 말은 곧 현실이다.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에 불과하다. 대학에는 70~80%가 진학하지만 좋은 일자리는 제한돼 있으니, 청년들의 취업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과 3000명을 뽑을 뿐인 국가직 9급 공무원시험에는 무려 20만 명 가까이 응시하고 있다. 삼성의 입사 예비시험(SSAT)에도 13만 명이 원서를 넣었다. 이러니 청년 취업은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부모 세대들에게도 가장 큰 걱정거리다.

반면, 부모 세대는 어떻게든 더 오래 일을 하려고 한다. 50세만 넘으면 번듯한 직장에서 밀려나도록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자녀를 독립시킬 때까지 남아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에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정년연장법)이 개정돼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민간기업도 60세 정년을 보장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나라의 고령 세대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70대 고용률은 OECD 평균의 2.5배인 32.7%로 1위이다. 75세 이상 고용률은 더 놀랍다. 17.3%로 OECD 평균의 3.3배나 될 정도다. 이른바 좋은 일자리는 50대 중반에 떠났지만, 그 뒤로도 10~20년을 나쁜 근로조건 하에서 더 일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청년세대, 서로를 인질로 잡고 있는 노동시장

이처럼 50~60대 베이비붐 세대는 부실한 노후안전망 때문에 어떻게든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려고 하고, 반면 청년 세대는 제한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은 자녀의 보다 나은 취업경쟁력을 위해 스펙 쌓기 비용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고, 또 그 때문에 더욱 더 오래 버는 데 묶여 있다.

자녀의 불안정한 처지 때문에 자신이라도 더 안정적인 일을 가져야 한다는 모순이다. 그럴수록 청년들에게 돌아갈 좋은 일자리는 부족하게 된다. 더구나 임금 체계는 오래 있을수록 많이 받는 연공급 중심이어서 청년들의 고용조건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하다. 돌고 돌아 서로를 인질로 잡고 있는 셈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많은 분들이 '일자리를 더 만들면 된다'고 한다. 이른바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를 늘리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살리면 전체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좋은 이야기지만, 이미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단계에서는 설령 성장이 되더라도 일자리를 늘리는 건 쉽지 않다.

또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서, '일자리를 나눠 써야 된다'는 분들도 있다. 보다 현실성이 높기는 하지만, 문제는 '나쁜 일자리'만 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인구 규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해법이 없다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대신 10여 년만 지나면 저출산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노동시장 참여가 무리 없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체념론'을 내놓기도 한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도성장 시대의 노동시장 구조로는 더 이상 청년과 부모의 일자리가 공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가 계속 확장되는 단계에서는 설령 문제점이 있더라도 그럭저럭 덮어가며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자리의 절대량이 늘어나기 어렵고, 더구나 좋은 일자리는 더 제한된 상태다. 고령화 시대에 맞는 노동시장, 저출산 시대에 맞는 노동시장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노동시장을 '세대친화적'으로 바꾸고 연금·복지로 '사회적 효도' 구축해야

연공급 중심을 성과급 체계로 바꿔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년 연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임금 피크제'는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늘어나는 수명 속에서 인생 이모작 일자리를 위한 평생학습체계가 내실화돼야 한다.

나쁜 일자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도 해결해야 될 급선무다. 괜찮은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동시장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 놓여 있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기득권적 지위와 지나친 연공급 체계를 바꾸지 않고는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회적으로 무익한 스펙경쟁에 골몰하는 것보다 노동시장의 구조를 세대친화적으로 바꾸는 일이 더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다. 튼튼한 연금과 복지라는 '사회적 효도' 체계 구축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덧붙이는 글 |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이 기사를 쓴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환경부 차관 등을 지냈으며 <부동산은 끝났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세대전쟁#일자리#김수현#사회적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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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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